[Review]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나요 : wi-fi를 닮은 듯, 닮지 않은 '와이바이why-bye'

스마트폰에만 wi-fi가 필요한가요? 아니요.
글 입력 2021.02.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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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서울의 텁텁하지만 시원한 밤공기를 맡으며, 친구와 걸어 나왔다. 실제 우리가 직접적으로 겪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동시에 느꼈는지 텐션 높은 친구와 나는 연극의 줄거리를 검토하며 잠시 숙연해졌다.

 

 

와이바이3.jpg

 

 

<와이바이>는 두루미 저수지 앞 작은 농장이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다 떠나, 양계장을 운영하며 농사를 짓는 용일은 늘 일손이 모자란다. 그렇게 사장 용일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다. 이 마을에는 나일, 마리아, 칸, 이리띤까지 4명의 노동자로 집 떠나 타지로 일하러 들어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젊은 나이에 외국인 노동자로 환경에 적응하며, 고향에 있는 그리운 가족들을 생각하고 악착같이 돈을 벌고 버틴다. 그리고 또 다른 등장인물 사장 용일의 딸 베이비는 취업 준비생으로 자신의 집 양계장에서 잠시 머물러 내려온다. 굉장히 티 나게 어색해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을 알뜰살뜰 챙기며 양계장의 휑했던 분위기를 북적북적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또한 용일의 부인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따듯한 마음씨를 갖고 있어, 부인 덕분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양계장에 있는 조그마한 평상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타지에 있는 가족들과 언제든 연라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주어진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으면 세상의 소식도, 가족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평상에 붙어있는 공유기가 잘 터지도록 매번 애절하게 쳐다보는데, 사장 용일은 공짜로 쓰지 못하게 한다.

 

공유기를 함께 쓴다고 돈을 더 지불하는 시스템도 아닌데, 1시간 일해야만 10분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규칙을 정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빡빡하게 군다.

 

**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밥 값을 해야지만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 그래야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세상의 차가운 이치를 잘 아는 사장 용일은 잠깐의 여유를 통해, 가족들과 연락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빽빽하고 냉정한 오늘날의 현실을 계속 외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잘 구슬려서 사장 용일을 포장하자면, 아무 노력 없이 손에 대가가 쉽게 들리면 발전이 없다는 애정 어린 마음을 돌려 표현한 말을 던진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소수의 약자들을 위해 공짜가 있으면 어떠하랴.

 

(용일의) 여유가 없던 시절, 힘든 노동일을 하며 대우받지 못했던 일을 생각하며 지금 내 눈앞에 똑같이 처량한 그들을 위해 넓은 아량을 열어줄 수 있는 건, 똑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량 따윈 저리 가라 행동하는 그를 보며 딸 베이비는 속이 좁다며, 아빠에게 한 마디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며 아빠 용일은 좋은 말만 해주는 게 도움 되는 게 절대 아니라며, 공유기를 출장에 들고 가며 쓰지 못하도록 막아버리기도 한다.

 

 

평상.jpg

하얀 '원'의 띠 안에서만 wi-fi가 터지는 양계장의 평상,

공유기는 왼쪽 끝에 붙어있다.

 

 

오늘날 당연시되어있는 와이파이의 부재로 인해, 양계장의 분위기는 정신 없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와이파이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이 자리에서 이들의 원활한 소통이 오고 간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각자의 사정을 점차 알아가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타지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 가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각자 작고 큰 소중한 꿈이 있었다. 누군가는 글을 쓰는 작가를 원했고, 베이비처럼 꿈에 방황하고 있을 때 언제든 집에 찾아와 안식처를 내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부모가 되고 싶어 했다.

 

용식의 아내. 즉 베이비의 엄마는 해보고 싶은 건 내빼지 못하고 다 해보라며, 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딸의 휘몰아치는 현실에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부모로서 단단한 기둥이 되어준다.

 

연극은 소극장에서 운영되고 있었고 나는 뒤쪽에서 모든 관객과 배우들의 작은 행동반경이 모조리 다 보일 정도로 시야가 넓었는데, 갑자기 나 홀로 고요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대사는 흘러나오고 있고 배우들은 전반부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에너지가 고조화되고 있는데, 잠시 그것들이 제대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연극의 집중력을 잃고 우리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간략하게 나를 정리하자면, 2일 전에 조교실에 휴학을 하겠다고 연락한 23살 휴학생이다. 2018년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휴학 계획이 전혀 없었다. 친한 동기들이 잠시 쉬어갈 거라고 말하는 계획 안에, 휘둘리지 않고 기필코 빨리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멋있는 커리어 우먼이 될 거라는 나만의 화려한 그림이 있었다. 그런데 23살인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준비하며 정리가 되지 않아 쉬어 가야만 했다.

 

다행히도 베이비처럼 하고 싶은 일은 있는 기준에서 엎어졌다가 다시 서고, 또 다시 눕여지기도 하는 굴곡을 보이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희미하지만 확실해서 더 두려워졌고 걱정은 첩첩산중처럼 쌓아 올라와져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압박을 넣은 적이 없다.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지원을 해주겠다. 너의 지원군은 바로 아빠이고, 엄마다.

 

사실, 철없게도 나는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에게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내가 넘치게 받고 있는 이 사랑과 애정. 그리고 넘치는 자원과 부족할 것 없는 환경은 그 어떤 베네핏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에, 해야만 하는 일에 두려워할 필요도 겁낼 필요도 없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피가 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위로를 받고 심경을 토로하고 그렇게 얻은 힘으로 다시 밖으로 나가 부딪혀볼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피고용자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고용자 용일이 이런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용일 또한 젊은 시절, 제대로 하루 쉬어보지도 못하면서 일만 하고 무시당해 자수성가한 운 좋은 케이스지만, 그런 경험들을 잘 녹여 노동자들에게 건네줬다면 연극이 끝나고 나서의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은 조금 더 덜어졌을까.

 

모두가 강자의 줄에 서서 약자들을 보살필 순 없지만, 작은 마음이라도 있으면 베이비의 엄마 은희처럼 될 수 있다. 내가 세상의 부조리함에 당한 만큼 똑같이 약자에게 퍼붓는 핀잔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보듬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다.

 

흔히 요즘 사람들이 즐비하게 외치는 말이 있다. “착하게 살면 손해다.” 어느 정도는 타당한 말이기도 하다. 먹기 살기 바쁘니까, 내 몸뚱이 하나 챙기기도 어려운데 옆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그걸 누가 알아주냐고 한다. 너무 맞는 말이라 많이 안타깝다. 이 원인의 근원은 어쩌면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손해’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 아닐까.

 

살면서 우리 모두는 개인으로 살 수 없고, 여러 공동체를 이루며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를 간과하고 편하게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내 옆 사람이 행복해지면, 그 사람은 세상 살아가는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그 전율이 자신에게도 전해지길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때로는 혼자이고 싶지만, 어느새 사람을 찾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만 퍼질 수 있는 온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남에게 가져도 되지 않을 관심을 자발적으로 가져서 손해를 받는 현상도 일어나지만, 이는 매우 미개한 일이다. 도와줘서 얻는 기쁨과 행복이 더 큰 건 확실하다.

 

wi-fi 존에 몰려드는 양계장의 장소(평상)과 같이 시끌벅적하며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예전 시대의 아파트에서 사는 주민들처럼 공깃밥을 나눠먹는 온기 넘치는 삶을 원한다. 시대가 더 이상 이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의 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지만, 사람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물렁물렁하게 지금 환경에 맞춰 최대한의 감정을 교류하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세상과 사람에게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 훨씬 많은 행복 가치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왜 WHY, BYE 해야 하는가. 가까운 가족과 더불어 지인, 친구. 또 죽는 날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외롭게 혼자 두고 싶지 않다. 오지랖처럼 느껴져도 북적북적하게 떠들고 인사이트를 공유할 수 있는 WI-FI 같은 신호 높은 관계망의 연결을 원한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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