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 찬란한 순간이여! -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글 입력 2021.02.0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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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연극은 부모님과 함께 대학로 소극장에서 관객 소통형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이었다. 극의 제목이 무엇인지, 내용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어깨 맞대며 앉아 있는 작은 극장의 관객들 앞에서 표정까지 생생히 보일 정도로 연기에 열중하던 배우만이 기억날 뿐이다.

 

그 뒤로 대학로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그보다도 연극과 뮤지컬에 대한 남모를 감정이 샘솟았다. 비록 현재는 소극장보다 넓은 아트센터, 아티움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극들이 훨씬 더 많지만, 여전히 나에게 극장은 비좁고 관객과 배우가 소통하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어느 날은 관객 참여형 연극을 관람했는데 한 배우분께서 나에게 즉석에서 질문을 던졌다. 어린 나이여서 부모님 뒤에 숨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사실 가슴 속은 그 중년 여성 배우분의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는 중년 배우들이 연극과 함께 살아오며 느낀 감정,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에세이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오로지 연극이었다. 비록 그 분야를 선택하게 된 배경은 모두 달랐지만 결국 모두 연극을 선택한 것에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 연기하기 참 잘했죠? 우리,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나 봐요. 그래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겠죠?

 

-193p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포기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중년이라는 단어는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 마치 찬란함과 꿈, 도전이라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부담감.

 

그러나 평균 나이 55세, 첫 무대에 오른 늦깍이 배우들은 중년이라는 삶 속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 무대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 아닌, 닫혀 있던 막이 다시 올라가는 시기가 그들의 중년이었다.

 

 

"늦기 전에 중년을 사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오늘의 커튼콜이 인생 전환점을 돌아서려는 내 발걸음에 큰 힘을 실어준다. 오 커튼 콜, 찬란한 순간이여!"

 

-203p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오십을 상상해보았다. 삶은 마치 연극과 같은 것이 아닐까. 커튼콜이 무대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몇 번이고 새 무대에 오르면 수많은 커튼콜을 받을 수 있다. 인생에서 환호를 받는 순간은 몇십 번이든, 몇천 번이든 내 행복과 열정만 따라준다면 언제든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실 나는 '남들과 같은 시기에 같은 길을 걷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 학업도, 대학도, 취업 준비도 남들보다 이르거나 늦춰지는 것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따라서 요즘의 나는 나만의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한다. 내 안에 존재하는 삶의 원동력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설령 그 불빛을 찾지 못해 중년의 나이에 이르더라도 끝없이 무대에 오르기 위한 연습을 할 것이다. 이제 노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다는 그녀들의 당당한 이야기처럼.

 

 

**

  
김영희 - 내일모레면 예순이 되는 이팔청춘. 어린 나이에 경제적 가장 역할을 짊어지느라 잃어버렸던 호기심과 자유분방함이 갱년기와 함께 대폭발 중이다. 머리 터지게 '나'를 찾는 중에도 불굴의 의지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현재는 논술 과외 선생으로 활약 중. 연극에 발을 내디디며 예술 감수성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몸 연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중이다. 연극판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좋아서 오래도록 함께 수작하고 싶단다. 오늘도 시적(詩的)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마기원 - 하얀 얼굴과 긴 목선, 영락없는 여배우의 실루엣에 속으면 안 된다. 그는 언제나 반전을 안겨준다. 화려한 스펙을 떨쳐낸 채 동두천에서 새벽 출근하는 요양보호사로, 고단한 몸 이끌고 연극연습장으로 달려 나오는 건, 역할을 맡아 무대조명을 받는 것보다 동료 배우들 만나는 재미가 더 좋아서란다. 하지만 아나운서 뺨치고도 남을 목소리와 발성, 명확한 감정표현으로 무대 중심을 꿰찼다. 전직 영어 강사로서 뒤풀이 때 주사를 영어로 하는 엉뚱 발랄 캐릭터.
 
안은영 - 숨길 수 없는 예술가 기질이 있는 건지 대단히 예민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기다려주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다. 특히, 누군가의 눈이 밝아지고 삶이 달라지는 순간, 황홀해 한다. 10여 년 전의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재활 중에 첫 책 『참 쉬운 시 1 - 무명본색』을 펴냈다. 무모하게 도전하고 꿈을 현실화하는 재주 덕분인지, 54세에 치유적 글쓰기 강사, 표현력UP훈련 강사, 연극연출가, 극작가, 초단편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자로 출연했다.
 
윤현정 - 소싯적에 미스코리아 감이란 소리 좀 들었던 여자. 지금은 외모의 망가짐을 불사하는 연기파 배우로 무대에서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일상에선 우아한 화법과 태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랫동안 가정살림꾼으로만 살다가 쉰 살 다 돼서 연극과 표현의 세계를 만나, 숨어있던 코믹 본능과 미적 감각이 튀어나오는 중이다. 공연 시 의상 및 분장 스텝으로도 활약한다. 1년여의 글쓰기 작업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보여준 그는 이제 두 번째 도약을 꿈꾼다.
 
정호정 - 드러내길 꺼리면서도 조명이나 카메라 앞에선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NG 없이, 탁월한 생활연기까지 얄미울 정도로 소화해내는 여우과 배우. 하지만 남모르게 엄청난 땀을 흘리는 노력형 여우. 돌직구를 입에 달고 사는데도 주변의 환대와 호감을 퍼담는 예측불허 돌아이 캐릭터. 상상 불가의 독서량을 쌓아온 그는 글쓰기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여행 에세이와 역사 동화책을 집필 중이다. 천식, 공황장애, 우울증을 앓았지만, 연극을 하면서부터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최상옥 -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해낸다. 그것도 동시에 여러 가지를 용광로 급 열정으로. 치매 시어머니를 10년 넘게 모신 후로는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덕분에 등단 시인, 심리상담사, 치매 가족 전문강사, 사회적기업 직원, 보드게임 강사, 늦깎이 배우 등으로 불리며 펄펄 날아다닌다. 틈틈이 그림동화를 쓰고 산과 들로 놀러 다니는 에너자이저. 나이 오십 넘어 만난 연극무대를 열렬히 사랑한다.
 
최정주 - 나이 가늠이 안 되는 외모에 상쾌한 웃음, 세련된 패션 감각까지 갖춘 멋쟁이 중년. 늘 주변을 챙기는 배려의 아이콘이자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두려움 없는 맏언니. 스무 살 이후 20년은 간호사로 또 20년은 전업주부로 지냈다. 이젠 노래, 춤, 악기연주, 운동, 연기, 여행을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누리는 중이다. 연극을 향한 애정으로 누구보다 먼저 대본 암기를 완료하고 연습실엔 일찍 도착한다. 참별난극단 B2S 단장인 그는 배우 송강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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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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