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7세기의 마녀사냥은 과연 끝이 났을까? : 진리의 발견 [도서]

글 입력 2021.02.0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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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뛰어넘는 연결고리


 

835페이지에 달하는 양장본 책을 읽기는 또 처음이었다. 손가락 두마디에 달하는 두께는 전공 교재를 연상시켰다. 차례를 훑어보니 요하네스 케플러, 마리아 미첼.. 등을 포함해 11명의 인물이 소개되어 있었지만 내 눈에 익숙하게 와닿은 이름은 영국의 생물학자였던 찰스 다윈과 미국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 정도. 나머지 9명은 생소했다.

 

11명이 어떻게 얽힌 관계일까 궁금해져서 프롤로그를 들여다봤더니, '아름다움'과 '상호성'이 눈에 띄었다.

 

즉 인간은 특정 순간에 아름다움에 홀리게 되고, (아름다움의 대상은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천문학이 될 수도 있고 해양 생물일 수도 있다) 아름다움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연구한다. 그리고 몇 십 년 혹은 몇 세기 뒤의 인물이 등장해 과거의 연구를 토대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 11명은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아니지만, 각자 어떤 주제에 몰두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고, 시대를 뛰어넘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이 책은 딱딱한 전기문학이 아니다. 유기체처럼 호흡하며 인물들을 조명한다. 사상과 사상 사이, 학문과 학문 사이, 특정 시대와 특정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 선구자의 내면세계와 그들이 문화라는 동굴 벽에 남긴 자취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독특한 전기다.

 

하지만 이 연결고리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본인의 지론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공격을 항상 받아내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다음에 소개할 '케플러 어머니 마녀사냥'이 있다. 17세기 천문학 혁명의 핵심 인물이었던 그의 가족이 왜 마녀사냥을 당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는 과연 이 시기의 대중들과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케플러의 꿈


 

케플러의 삶이라는 광범위한 내용을 살피기에 앞서서 우리는 그 시대가 어떤 분위기를 띠고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1. 당시 교회는 오늘날의 대중매체와 같은 존재

2.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다는 천동설을 믿었다

 


이런 시대에서 케플러는 지동설에 푹 빠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가 중심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고, 이를 강경하게 주장했다간 케플러나 케플러의 주변 인물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핍박받기 쉽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우주의 중심에서 지구가 고정된 중심점이라는 사실이 잘못된 건 아닐까?’ 라는 자신의 주장을 완곡하게 전달하는 책인 <꿈>을 쓴다. (<꿈 Somnium> 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최초의 SF소설이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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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케플러의 <꿈>

 

 

 

당시 사람들은 <꿈>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지동설을 당연한 진리로 믿는 21세기의 우리들에게 <꿈>은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겠지만, 케플러가 살던 17세기에는 그러지 못했다.

 

미지의 것이 사람들의 앞에 있을 때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은 종종 우리에게 불안감을 주기 때문에, 상식과 이성이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할 때에는 마법과 요술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의 메커니즘을 통해, <꿈>을 보고난 후 케플러의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그의 어머니를 마녀로 몬다. 그래서 케플러는 어머니가 마녀로 고발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6년 동안 이어진 어머니의 재판에 헌신적으로 매달렸다.

 

<꿈>은 본문과 맞먹는 분량의 각주로 유명하다. 223개에 달하는 주석은 그의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에게 행했다고 주장되는 초자연적이고 악마적인 행위 뒤에 숨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원인을 찾아내려 한 케플러의 노력이었다.

 

이렇게 케플러는 상식적인 직관의 착각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진실의 돛을 올리기 위해 선구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이성의 눈을 뜨지 못했고 답답한 건 케플러 본인 뿐이었다. 그러니 1630년 11월 15일에 케플러가 눈을 감을 때 그는 얼마나 갑갑했을지.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최초로 인간의 자만심에 도전장을 내민 위대한 사상이다. 그 후 몇 세기에 걸쳐 세계 질서가 여러 차례 새롭게 편성되는 동안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도전은 진화론부터 시민권, 동성결혼까지 수없이 많은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이 모든 도전에 사회는 케플러의 고향 주민들이 보인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진리의 발견>에 등장하는 네 세기에 걸친 역사적인 인물들이 시대에 불화하는 삶을 살았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놀라운 성취를 쌓았으나 당시 대중들의 의견과 대치되면 이러한 업적을 무시당하고 빼앗기기도 하고, 너무나도 허무하게 바다에 잠겨버리기도 한다. 이들의 삶을 통해 독자들은 사회적 중력과 관성의 틀을 벗어나는 삶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불완전한 이 세계를 어떻게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었는지를 볼 수 있다.

 

지동설을 믿지 않는데에 그치지 않고 이를 주장한 학자의 어머니를 되레 마녀로 몰았던 17세기 사람들과 우리는 과연 얼만큼 달라졌을까? 주제가 트럼프든 브렉시트든 과학, 성별 나아가 현실 그 자체든 양쪽 진영은 서로 합의하지도 않고 타협하지도 않는 요즘.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고 합의할 생각도 없는 것 같은데. 우리는 과연 케플러 시대 사람들과 다르게 지성을 겸비한 사람들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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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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