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박적 글쓰기 [사람]

적당한 세기의 압박감은 적절한 긴장감으로 글을 쓰게 만들어준다.
글 입력 2021.02.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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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는 글이 좋다. 깊이 생각하고 다듬어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은 할수록 실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글은 쓸수록 생각이 쌓이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실수하지 않으려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전하고자 하는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느낀 감정을 명료하게 서술하기 위해 충분히 생각하고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주제를 선택하는 것부터 단어를 고르고 완성하기까지 고민을 거듭하는데, 자신 있는 주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주제를 잡고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관련된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떠오르는데 이를 정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주제와 연관이 있어 보이면서도 앞의 내용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 몇 번이고 수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글의 맥락에 어울리지 않으니 빼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글의 통일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깎으며 지워지는 문장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고 수많은 생각을 해서 나온 단어, 문장, 문단인데 여러 이유로 지워야 한다는 사실에 속상하기도 하다.

 

넘치는 문장 속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른 문장들이 내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완성본에 오르지 못하고 아직도 종이 밑에 자리한 날 것의 생각들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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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글을 더 잘 쓰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강박적 글쓰기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나열할 때 문법은 고려하지 않고 쭉 쓴다. 여기에서 다듬어서 내보내면 글이 완성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사전을 찾아보고 글쓰기 책을 다시 읽어보고 “반복되는 단어의 사용과 ‘-것 같다’는 모호한 표현, 겹문장의 나열을 지양해야 한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날 것의 생각들이 점차 무뎌진다. 나중에는 글쓰기에 지켜야 하는 수칙들을 하나씩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강박적으로 그런 표현을 피하려 하다 보니 글이 길어지고 내용이 어색해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강박적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강박]이라는 단어부터 글 전체에 이상이 없는지 노트북 화면에 한글 파일과 웹사이트를 반씩 띄워서 검색하고 검사한다. 그래서 홈페이지 검색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사전’,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 ‘국립국어원 맞춤법 검사기’ 등이 뜬다. 자주 찾는 사이트에 즐겨찾기 목록으로 별 표시가 되어있을 정도이다. 하나의 글을 쓰고 다듬는데 필요한 사이트들이 화면을 켜자마자 반겨주는 기분은 참 복합적이다. 어쨌든 도움을 주니 고맙기도 하면서 매번 의지하고 있으니 울적하기도 하다.


처음에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하기 위해서 검색하던 것이 나중에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서 유의어나 반의어로 찾았다. 과장해서 말하면 언어 퇴화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파파고 번역기를 사용하면서 이전처럼 영어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아 아는 단어도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문장에 끼울 단어의 느낌은 아는데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사전을 검색할 때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 편리해서 사용했던 것이 독이 되어버렸다.


특히 SNS를 이용할 때 큰 문제가 된다. SNS의 장점은 실시간 양방향 소통인데 글을 하나 올릴 때도 멈칫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어가 맞나? 띄어쓰기가 맞나? 문장 호응이 괜찮나? 여러 번 생각한다.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수정하고 다시 복사해서 검사하고 업로드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어조가 달라지는데, 처음에 생각했던 말은 사라지고 국어 지문으로 나올 것 같은 정적인 문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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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강박적으로 글을 쓰고 검토하는 덕분에 실수가 줄었다. 가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만큼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문장의 마무리도 더욱 확실해진 느낌이다.

 

예전에 쓴 글들을 살펴보면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불완전하고 추상적인 서술어가 눈에 띈다. 반면에 요즘 작성한 글을 읽어보면 조금 뿌듯함이 느껴질 정도로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강박적인 글쓰기로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정성을 들여 쓴 글이라 몇 번을 다시 찾아 읽는다.


적당한 세기의 압박감은 적절한 긴장감으로 글을 쓰게 만들어준다. [강박]이라는 어감이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의식적으로 생각함으로써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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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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