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젊음? 그거 없어도 돼요 –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이 전하는 간절한 울림
글 입력 2021.02.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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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엄마는 꼭 연예계로 진출하세요.” 엄마는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고, 항상 멋있는 모습을 유지하고자 체력 관리에도 힘쓰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엄마를 보면 보통 40대 초반이라고 여기는데, 실제로는 50대 중반에 들어선 동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엄마는 대중에게 감정을 표출하는 직업에 어울리는 인문학적 감수성과 지성을 고루 갖추었다. 이 정도면 예능인에게 필요한 끼와 재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기에, 나는 항상 엄마에게 연예계로 진출하라고 권한다.


그중에서도 배우. 나는 우리 엄마가 배우로 데뷔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나이가 50대에 접어든 이후로 하루가 빠르게 늙는 것이 느껴진다면서, 자신처럼 나이 든 중년을 누가 배우로 쓰겠냐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를 건넸고, 엄마와 함께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평균 나이 55세의 여성들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늦깎이 배우로서 데뷔를 준비한다. 그 무대는? 바로 연극 무대다.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연극은, 화려한 기술에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한 장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대에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나에게 공연장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이끄는 신비로운 공간이었고,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제4의 벽’을 두고 가상의 세계를 관망하는 행위가 너무나 설레고 즐거웠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를 읽을 때 연극과 관계를 맺는 인간의 감성과 경험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중년 여성들의 연극 도전기’와 같은 좁은 시각의 이야기를 넘어 ‘한 개인이 배우로서 타인과 소통하며 무대에 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성장기’로서 읽혔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가진 ‘중년’, ‘여성’, ‘아마추어’와 같은 수식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며 결국 무언가를 해내는 과정은 우리 모두로부터 통찰과 공감을 이끌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jpg

 

 

솔직히 경솔했다.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평균 나이 55세’라는 함정에 빠져, 연기 경험이 없는 중년 여성들의 가능성을 마음대로 재단할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필자들이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하고 공연을 올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이는 오만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배우의 모습은 미디어에 의해 관념화된 그 무언가에 불과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으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누군가의 절실함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었다.

 

그만큼 이 책을 쓴 7명의 이야기는 가볍지 않다. 그들은 살림과 육아를 해내며 가족을 보살피거나, 보통의 학교와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일생을 보냈지만, 여태껏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굴하기 위해 연극이라는 공통의 지향점을 갖고 도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결심에서 비롯된 ‘배우 성장기’는 생각보다 더욱 굳세고 치열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연극을 목표로 정한 것일까?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1명의 연출가와 6명의 배우는 각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고 담담하게 풀어낸다. 나는 그들의 재치 있는 글솜씨에 한 번 놀랐고, 일상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판을 벌이는 포부에 두 번 놀랐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7명의 자취를 훑어가다 보면,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이 전하는 간절한 울림이 절로 느껴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 이들은 진정한 배우가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해 분투했구나.’


 

연극을 향한 나의 오랜 기다림과 뜨거운 갈망 끝에 연극과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이 연애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세상이 내 연기에 대해 뭐라도 한마디 하는 날, 난 희열 속에서 진정한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83p.

 

 

6명의 배우인 김영희, 마기원, 윤현정, 정호정, 최상옥, 최정주. 그리고 연출가 안은영. 이들은 각자의 경험과 특색을 살려 그들만이 연기할 수 있는 연극을 창조한다. 바로 창작극 <강 여사의 선택>이다.


총 3막으로 이루어진 이 연극에서는 중년 여성인 박영순, 늙음 앞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선 두 명의 강 여사, 그리고 그들 주변을 지키는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등이 등장한다. 외면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연극에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연극 무대의 찬란한 순간은 단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책 위의 활자에서 넘실대며 나를 관객석으로 초대한다. 무척이나 경이로운 순간이다.

 


강여사의 선택.jpg

연극 <강 여사의 선택>(서울시50플러스재단)

 

 

책을 가만히 읽다 보면 이들이 연극을 대하는 자세에는 책임감이 물씬 담겨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6명의 배우는 캐릭터를 대본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배역 속 인물과 대화하며 소통한다.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 동화하기 위해 지속해서 자문하고, 캐릭터에게 깊이 있는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찾는다. 첫 연습부터 시작하여 무대에 오른 후 커튼콜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남긴 노력과 발자취는 연극이라는 예술의 존재 가치를 여실히 증명한다.


특히 연출가인 안은영은 모든 인물 속에서 중심을 잡는 지도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연극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조정한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해내기 위해 진정으로 깊이 고민했다는 것은, 각 장의 도입부마다 나오는 ‘안은영의 연출 노트’를 읽음으로 알 수 있다. 경청과 사색으로 다져져 감성과 이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그녀만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연극이 관객의 마음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도록 다듬는 연출가의 재능, 그리고 사명을 오롯이 느끼게 된다.


안은영 연출가에게는 꼭 이루고 싶은 희망이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50+ 세대로 구성된 전문 극단을 만든 후 유료 관객 앞에서, 대학로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한 번도 대학로에서 50세 이상의 배우들이 주가 되는 극을 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백 세 시대라는데, 2030 세대만 배우가 되어 공연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중년도 ‘신인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설 수 있다. 안 될 이유는 전혀 없다.


다시 우리 엄마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엄마가 배우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순전히 나에게서 비롯된 희망은 아니다. 엄마에게도 분명 두근거림이 있다. 하지만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고 두껍기에 엄마에게 배우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은 적잖이 클 것이다.


얼마 전에는 ‘20년 후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노후 대책을 세워야겠다’라면서 한숨을 내쉬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엄마는 100세까지 건강히 사실 텐데, 아직 인생 반밖에 오지 않았어요’라는 대답을 건넸지만, ‘노후’라는 단어에서 오는 어두운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중년의 삶이 정말 재밌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이 책의 인물들은 그렇게 고민할 시간에 얼른 시작하라고 외친다. 조명은 당신을 비추고 있고, 세상은 곧 등장할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워 숨느냐고 묻는다.


 

거기 망설이고 있는 당신도 이리 와요. 생각은 그만하고.

 

231p.

 

 

그렇다. 미래가 두려워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갖는 고민이 아닌가. 일단 해보고 아니면 돌아와도 된다. 결국은 밑져야 본전이라면, 무언가를 향한 도전과 시도는 절대로 성급하지 않다. 그러니까 엄마!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차근차근 새로운 일을 시작해봐요. 젊음? 그거 없어도 돼요. 이제부터 우리도 우리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보여주자고요.

 

 

 

이남기.jpg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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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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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ram 비투에스
    • 이렇게 온마음 다해 책을 만나시고 리뷰를 올리시고!
      출간 후. 지금까지 제가 만난 최고의 리뷰입니다
      고맙고 반갑고... 이남기 에디터님이 제 귓가에 바람소리처럼
      들려주신 귀한 리뷰, 6인의 배우님들에게도 전해드렸습니다.
      님의 어머님께 전해주세요, 연극의 세계로 아니 표현예술의 세계로
      얼마든지 들어오실 수 있는 나이시라고요. 건강만 하시면 된다고요.
      언젠가... 저희 공연 때 초매하고 싶습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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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남기
    • Baram 비투에스작가님, 이남기입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최고의 리뷰'라는 말씀 한 마디가 어찌나 제 마음을 울리는지, 정말 기쁩니다. 제 어머님께도 작가님의 소중한 댓글 전해드렸습니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공연 보러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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