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유토피아를 추억하며

졸업에 관한 생각들
글 입력 2021.01.2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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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12, 총 12년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중 유일하게 아쉬웠던 때는 고등학교를 떠날 때였다. 첫 연애의 환상이 없었던 아이는 대학의 캠퍼스라이프 환상도 없었다. 그저 영원히 학생에 머무르고 싶었고 앞으로 내던져질 성인의 사회라는 새로운 경계에서의 적응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마주칠 일은 마주하게 되듯이 나는 졸업을 하였고 대학이라는 세상에 발을 들였다. 그곳은 어른들이 늘 말하던 ‘대학만 가면……’속 신세계처럼 정말 새로웠다. 그러나 신세계가 꼭 아름다움을 보장하지 않듯 이 세계 또한 그리 봄빛만은 아니었다.

 

꼭 사춘기 때가 떠올랐다. 다만의 차이라면, 철이 들어버렸다는 점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겪는다는 중2병이 아니었다. 아무도 이해하고 넘어가주지 않는다. 저 나이 때는 다 저렇지, 하고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인상을 팍 쓰고 앉아있거나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의 말에 삐죽거릴 수도 없다. 그냥, 평온했다. 학교생활 이야기, 사람들과의 관계, 시험과 과제의 부담. 그저 그런 당연스러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너도 힘들지 나도 힘들지……그래 다들 힘들지. 아무렇지 않게 웃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혼자 상상해보곤 했다. 너도 너만의 고충이 있겠지, 다들 말하지 않는 것뿐이지.

 

힘든 날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날들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운 것 또한 사실이다. 당장의 불행에 지지 않는 법과 결국은 이기리라는 확신을 배웠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겪을 가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굳이 겪어야 했다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볼 뿐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버리고 잊고 싶은 것 또한 아니다. 결국 지금의 나라는 사람의 구성에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시간이었으니까.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나는 애증을 배웠다.

 

막상 학교를 떠날 때가 다가오니 그 애증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애(愛)가 더욱이 말이다. 헤어진 연인을 추억하면 온갖 미화된 기억들로 더욱 힘들어 하듯 학교에 대한 나의 기억도 미화된 것이 틀림없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 학교를 떠나기 싫을리가, 절대로, 절대.

 

사실은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떠나기가 싫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에도, 대학교에 첫 OT때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떠나기가 싫다. 어쩌면 나는 그냥 쿨하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던 일들과 순간들을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까짓 추억들과 그까짓 사람들, 또 새로운 일들을 마주할 텐데 과거에 얽매기인 왜 매여? 바보같이.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고통과 눈물 속에서도 날 버티게 해주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을 등진다는 것은 마치 나에게 있어 더 이상 버틸 빛을 남겨두지 않겠다는 선고 같았다.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 전까지 버텨야 할 텐데, 아직도 나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일까.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기억의 조각들은 마치 모래 속 둥글려진 유리알처럼 반짝거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지만, 수 많은 일상 속에 섞여 드는 순간 그들은 은은히 빛나며 추억이라는 해변을 밝혀주었다. 늦은 시간의 열람실, 자주 가던 식당, 만취해 바닥에 뒹굴던 친구들, 스친 인연들까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중 가장, 그리고 여전히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풍경은 바로 지하철이다. 정확히는 지하철 2호선의 당산역과 합정역 사이를 지나가는 당산대교의 그 풍경을 사랑했다. 늘 북적 이는 지하철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그 만큼 그 안에서의 시간은 막막함과 고단함이 늘 교차했다. 조금만 스쳐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러나 지하철이 더 이상 지하에 머무르지 않을 때마다 나는 늘 창 밖만을 응시했다. 그렇게 바라볼 때면 나는 더 이상 한국에 있지 않았다. 풍경들은 마치 홍콩, 시드니, 뉴욕, 도쿄처럼 느껴졌다. 낡은 상가들과 줄지어선 아파트, 건물 외벽에 반사되어 보이는 지하철의 모습, 유난히 천천히 지나가던 구간 속 늘 같은 지붕 위에서 마주치던 고양이들. 매일 같으면서도 조금씩 바뀌는 풍경은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러나 지하철이 당 산역에 도착해 잠시간 정차한 뒤 다시 출발하는 그 반동에 몸이 흔들릴 때면 나는 가장 설레기 시작했다. 내가 2호선에 올라타던 사당의 문 방향, 즉 지하철의 운행방향에서 오른쪽에는 내가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도시의 풍경이 나타났다.

 

나는 마치 유토피아가 정말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상상한 적도 있었다. 도대체 이 아름다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하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칸칸이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 눈 앞에는 널따란 도로에 가득한 차들이 나타났다가 곧 바로 한강이 가득 차 올랐다. 한강 앞에는 국회의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조화는 마치 어느 유화 그림의 한 장면 같았다. 맑은 날 한강에 반짝이는 윤슬과 물빛의 국회의사당 돔, 그리고 유유히 떠다니는 요트는 잠시나마 마음 속 짐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한동안은 한강이 유난히 반짝이면 운이 좋은 날이라는 혼자만의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밤의 당산대교는 정말 잘 꾸며진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아름답게 물드는 일몰부터 점점 깊어진 한강은 까맣게 어른거리며 도시의 잔상만을 담아낸다. 야경은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반짝거리고 조명을 받은 국회의사당은 그리스의 신전처럼 신성하게 느껴졌다. 풍경 하나가 뭐라고, 그 순간만큼은 그곳과 나 둘만 존재하는 것을 느끼며 큰 위로를 받았다. 그 몇 초를 완벽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당산대교를 지날 때 들을 노래를 전 역에서 미리 선곡 하기도 했다. 오직 그 구간을 위해 지하철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닐 날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졸업을 해도 나는 여전히 그곳을 지나갈 수 있다.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말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그곳이 그 때와 같은 장소로 느껴지진 못할 것이란 묘한 예감 때문이다. 그 때의 감정은 그 때의 나만이 느낄 수 있고, 그 때의 나는 그 곳에만 있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 속의 그 곳에만 말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참 아름답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 놓을 수도 없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생생하다. 누군가와 함께 했더라도 그 시간을 온전히 나와 같은 형태로 기억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어쩌면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다 함께 칭송하고 모두가 인정할 때 더욱 가치 있어질 텐데, 나만이 칭송하고 나만이 그리워하는 아름다움은 정말 아름답긴한걸까. 어쩌면 나의 오만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떠나고 싶지 않다. 또 그럼에도, 나는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먹어야 한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질 때 가장 완벽함을 알듯이 나의 고군분투함을 이젠 보내주리라. 새로운 마음을 다잡아보리라. 그리고 다시 한번, 후회는 없었다고 말하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 날이 오면 나는 또 다시 지하철에 오를 것이다. 여전히 오늘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그 풍경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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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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