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의 속삭임] #1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글 입력 2021.01.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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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필진_큐레이션의 속삭임[썸네일]_#1필리포브루넬레스키.png

Filippo Brunelleschi

 

 

필리포 브루넬레스키(1377~1446)

 

1377년 피렌체에서 출생하였다. 15세기 이탈리아의 건축가로서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창시자 중 한명이다.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커다란 돔 건축으로 유명하다. 특히 고대 로마의 건축인 판테온의 가구(架構) 기술을 착안 및 도입하여 전통을 중요시하면서도 새로운 구성미를 만들어내었으며 피렌체에 새로운 미술을 기운을 북돋는 데 일조하였다. 또한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미술 원근법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5세기를 기점으로 예술계에 커다란 꽃을 피워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단을 당당히 이끌었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금속 세공인이자 조각가, 더 나아가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다채로이 펼친 그는 풀리지 않았던 돔의 비밀을 발견한 시대의 인물이다. 비밀을 발견하기까지 다양한 시도와 노고를 견딘 위대한 수행자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본받고 싶은 그 인물은 피렌체 세례당의 대문을 장식할 청동 부조 공모전에 참여해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와의 대결에서 쓴맛을 보기도 했으나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아 심사위원으로부터 공동작업을 제안받았고,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달콤한 제안을 포기한 채 자신만의 길을 찾아 로마에서의 과감한 새 출발을 위한 끈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선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한 공부를 눈과 귀, 손으로 익혀나갔고 문명의 폐허를 겪고 있던 고대 로마제국의 산실을 새로이 결집하였다. 그 결과 몇십 년간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돔 건축을 이루어내었다.

 

한 번에 꺼지지 않을 기나긴 열정을 몸속에 지닌 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 그 자체였던 그를 꽤 긴 시간이 흐른, 약 6세기 후인 2021년에 마주해 인터뷰하였다면 과연 어떠한 질문을 건넸을까? 본 연재 글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의 만남을 상상하여 쓴 가상의 문답과 서술로써, 필자 나름의 큐레이션을 자처한 세기의 인터뷰라 정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Scene 1_ 인터뷰의 서막

 

 

공간a.PNG

 

 

긴장인지 설렘인지도 모를 미묘한 감정으로 인해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이곳,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 A에서 미술계의 한 거장을 만나 뵙기로 했다. 사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분간되지 않는 이 상황이 낯설기만 하지만, 인터뷰이에게 건넬 질문 리스트부터 옷의 착장까지. 만반의 준비가 끝난 상태로 나는 기다림을 자처하고 있었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겨를도 없이 상상치도 못한 이와의 대면과 브루넬레스키로부터 행해질 인터뷰의 만족스러운 결과를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특히나 그는 까탈스러운, 다혈질의 성격으로 유명했기에 말이다.

 

나 자신을 상기시키는 다짐을 한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약속한 인터뷰 시간을 조금 남겨둔 시점에 그가 도착했다. 위풍당당한 발걸음에 결코 유순하다고 볼 수 없는 인상,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굳은 신념 같은 게 느껴지는 자유로운 영혼 같달까. 풍겨오는 겉모습에는 아티스트인가 싶다가도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다 보면 남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가 느껴지는 듯했다. (말로는 결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첫인상이 산만한 공간을 스쳐감과 동시에, 곧바로 정신을 차려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조심스레 착석해 인터뷰를 시작하려 했다. 첫 질문을 전하기에 앞서 인터뷰에 활기를 북돋고 인터뷰이에 대한 관심의 척도를 표명하려 최선을 다해 그의 업적과 이외의 가치를 나열했다. 부단히 애쓴 탓인지, 다행히 좋게 봐주신 것 같았다. 그러한 일련의 상황이 뒷받침해준 덕에 차분히 심호흡을 한 뒤 영광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

 

*

 

앞서 언급했듯, 필자가 두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업적과 선명한 발자취는 전 세계의 많은 이들로 하여금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의 중심지였던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에 얽혀있는 기베르티와의 불꽃 튀는 대결, 그 과정에 있어 구약성서 '이삭의 희생'을 주제로 독창적인 부조상을 제작해냈으나 최종 승자의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운명.

 

훗날의 성취를 위한, 꽤 쓰렸던 필연의 운명을 겪고 로마로 유학을 떠나 고대 건축을 공부함으로써 예술 전반에 대한 지식을 익히고, 긴 시간이 흐른 후 피렌체로 돌아와 유럽 최초의 보육원인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와 파치가 예배당 등을 설립한 것에 이어 역사적인 두오모의 돔을 구축해낸 이. 발자취만 보아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그는, 또 한편으론 방랑자와 같은 다사다난한 삶을 꿋꿋이 살아내왔던 사람이다.

 

브루넬레스키에게는 예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노련한 손놀림과 창의력뿐만 아니라 그 무엇과도 뒤바꿀 수 없는 성실함과 쉴 틈 없는 열의를 지니고 있었다. 운명에 의해 기대에 부합되지 않은 첫 단추가 끼워졌음에도, 그것을 실패가 아닌 잘못 꿰어진 단추를 다시 꿰기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써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예술가에서 더 나아가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어쩌면 번아웃을 자주 겪곤 하는 필자의 성향 때문에 확실한 도움이 될만한 인생 상담을 받아보고 싶은 바람으로부터 비롯된 형식을 주도해나간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Scene 2_ 인터뷰, 혹은 인생 상담

 

 

공간a._002.png

 

 

우선, 브루넬레스키가 로마로 향한 15세기를 기점으로 인터뷰, 혹은 인생 상담을 시작했다. (지금 고백하건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평범하고 공식적으로 보고할 인터뷰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를 만난 순간만큼은 조금은 색다른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다. 민감할 것도 같았지만 많은 것을 끄집어낼, 준비된 리스트에 없는 질문을 하려 마음먹었다.)

 

사실 고향을 벗어난 로마 여정의 전후 상황은 그에게 암흑기나 다름없는 시기였을 것이다. 오늘날은 물론이고 당대에도 수많은 사람이 인정하리만큼 탁월한 조각가의 정신을 지닌 천재 예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던 그 대결에서 인정해야만 하는 결과를 맞닥뜨려야 했기에 말이다.

 

그런데도 좌절하지 않고 이윽고 로마 여정을 통해 암흑기를 인생의 전환기이자 황금기로 180도 변화시켜 모두를 놀라게 한 사람에게 어쩌면, 다시는 떠올리기 싫을 그 순간을 다시금 상기시킬 질문을 건넸다. 로마로 떠나던 그 순간의 감정과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

 

Q.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하던 그 순간의 감정과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요?

 

형식적인 이야기만을 주고받다 조금 더 세부적인 질문이 더해지자 브루넬레스키의 당황한 기색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수 세기가 흐른 뒤라 그랬는지 그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떨쳐버리려는 제스처를 취하며 구체적인 기억을 되살려 답해주려는 태도로 질문을 마주하였다. 그리고선 찬찬히 입을 뗐다.

 

브루넬레스키 역시 15세기 당대를 본인이 처했던 암흑기이자 황금기의 도래가 이루어질 과도기의 순간이라 표현했다. 로마로 떠나기 전, 기베르티와의 대결에서 최종 탈락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극심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고 했다. 그 감정은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하던 그 순간까지 이어졌고, 일생의 원동력이 될 만큼 강렬한 용솟음의 전율이 온몸을 지배했다고도 덧붙여 말했다.

 

그 '지배적인 전율'은 제국의 영광을 잃은 채 문명의 폐허로 자리하고 있던 고대 로마를 속속히 탐방하며 파헤치게 만들었고, 접해보지 않았던 건축과 구축 기술을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속가능한 마음가짐으로 로마의 유물을 조사하다 판테온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립시켜 건축 설계의 또 다른 공식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영감을 얻기까지 그곳에서의 생활은 타이트하게 짜여진 시간표대로, 쳇바퀴 굴리듯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탐색과 연구를 반복했다고 했다.

 

 

판테온.PNG

Pantheon

 

 

그의 대답을 듣다 보니 정리된 문장으로만 봐왔던 브루넬레스키의 업적과 반대로, 그가 겪어온 노고와 더불어 그곳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상반된 성향을 띠고 있음을 깨달았다.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을 흔히들 말할 때, 자존심과 고집 세고 성격이 불같다고들 했는데 그는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 보였다.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던 지난 고대 로마의 유적이 지닌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적용 가능한 요소를 발굴해내어 밀고 나갔던 믿음과 고집. 그게 바로 예술의 역사적인 기반을 보다 탄탄하고 정교하게 쌓아 올렸던 것이다.

 

안 좋게 말하면 고집, 좋게 말하면 그 누구도 꺾지 못할 굳은 신념을 지녔던 그는 자신을 잘 모르는 여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온갖 잡음보다도 자신의 시선과 발 디디고 있었던 로마의 살아있는 유적을 헛되이 내버려 두지 않았다. 본인의 시선과 발디딤에 의심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주류에 등을 돌린 채 비주류라 여겨졌던 로마의 지난 과거를 예술의 산실로 설정하지도 않았을 게 분명해 보였다. 작업과 목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게 가능했다고 브루넬레스키는 말했다. 질문에 답하는 그의 표정에서, 로마에서의 기억이 마치 달콤함과 쓴맛이 공존하는 다채로움 같아 보였다.

 

브루넬레스키는 한마디를 더 건넸다. 확고한 의지, 그리고 자신하는 실력에 더해 이루고 싶은 간절한 염원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밀어붙이라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물론 자신이 감당해야 하겠지만, 그 끝은 아무도 알지 못하니 눈치 보지 말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가 그렇게 세월을, 예술계 내에서의 입지를 버텨왔기에 해줄 수 있는 말이었지 싶었다. 브루넬레스키의 속마음을 여과 없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

 

Q.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커다란 돔을 설계할 당시 의견에 대한 반대도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었나요?

 

그의 진심 어린 답변을 듣고 맘속 깊이 공감하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로마 유학을 마치고 피렌체로 돌아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돔을 세우지 못하고 있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 설계를 해낸 브루넬레스키의 위대한 업적에 관한 질문이었다. 돔 설계의 공모에서 사람들을 설득했던 그때의 기억과 반대와 비판의 의견을 들었었던 당시에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나갔는지에 관한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의 판테온 돔을 연구한 결과로 돔 설계의 직책을 맡으려 설득하는 과정에 있어 달걀의 아랫면을 반쯤 깨 세움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원리를 납득시키게끔 노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던 것이, 그의 방식을 도용할 여지가 충분히 염려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만약 돔의 원리를 비유를 통해 말하지 않았으면,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현존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갔다.

 

"이것 보시오. 내 건축모형도 당신들에게 보여주고 나면 그제야 너도, 나도 할 수 있다며 달려들 것이 아니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뽑기 전에는 내 건축안을 보여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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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그의 비유를 듣고 비난 섞인 조롱과 우려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브루넬레스키 본인은 자신이 지을 돔처럼 더 견고해졌고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내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얽매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고 한다. 개인의 힘과 잠재력이 우선의 가치로 부상했던 르네상스 시기, 그러한 시대의 초석을 다지고 고전의 이상을 새로이 부활하게끔 한 인물이 바로 본인을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고 아꼈던 브루넬레스키였던 것이다.

 

르네상스와 브루넬레스키가 참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이 르네상스라는 꽃으로 다시 태어난 것 마냥 그 둘은 비슷한 생김새를 띠고 있었다. 로마로 향했을 때, 그 후에 다시 돌아와 피렌체에서의 작업을 시작하고 끝마칠 때마다 그는 주변으로부터 찬사와 함께 그것과 비견할만한 고통의 목소리를 감내해야만 했으나 브루넬레스키가 행했던 마인드 컨트롤의 방식은 전무후무한 돔 건축을 가능케 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뒤바꾼 한 예술가의 노력과 힘이 전 지역, 더 나아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에 더하여 16년간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이 완성된 그 당시를 회상하며 전율을 느낀 듯해 보였다. 까탈스럽고 다혈질의 성격으로 유명했던 그였지만, 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 할수록 얼굴에 조그마한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헤링본 방식으로 벽돌을 튼튼하게 쌓아 올리고 겉과 속 지붕을 분리하는 방법을 혁신적으로 착안해냄으로써 예술계뿐만 아니라 피렌체의 오랜 상징을 이끌어온 훌륭한 랜드마크를 건설한 당사자니 당연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보는 나조차도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Scene 3_ 풀리지 않는 돔의 비밀을 발견한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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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볼 게 더 많았지만 이미 인터뷰 전에 인터뷰 같은 형식적인 대화를 많이 나눴던지라 마무리를 해야 했다. 두 가지의 질문만으로 여분의 시간을 다 써버린 것이었다. 브루넬레스키에게 듣는 인터뷰, 혹은 인생 상담에 더하여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진 공간 A가 긴장됐던 나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었던 까닭도 한몫했던 것 같다.

 

아쉬워하는 표정이 그에게도 읽혔던 것인지 인터뷰를 마치기 전, 브루넬레스키는 한 가지 조언을 전했다. 자신의 예술적 발자취를 상기하고 인터뷰의 순간을 되새기며 그것으로부터 창출된 메시지를 필자의 삶에 적용함으로써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본인을 다시 만날 날이 또 오지 않겠냐는 장난 섞인 농담과 함께. 나는 진지한 웃음으로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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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바라보고 있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그와의 인터뷰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다. 시간이 예상보다 바삐 움직여 당황스러웠지만, 브루넬레스키와의 대화는 선명한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그 메시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마구 내뿜게 해주었다. 번아웃을 자주 느꼈던 나에게 브루넬레스키의 가치관은 너무나 멋지고 황홀한 날개 같았다. 그 날개를 타고 어디든지, 어떻게든 날아갈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도전하기를 망설이고 갈망하는 자들에게 유효한 도전정신의 원형을 선물한다. 어떤 이는 쓸모없는 허영심과 자만이라 말하지만, 브루넬레스키는 달랐다. 그는 삶의 태도를 통해, 르네상스를 처음으로 주도한 건축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외쳤다. 6세기 전과 6세기가 흐른 오늘날에도 똑같이 그는 말한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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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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