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치와 이야기가 만났을 때 [도서/문학]

<차분하고 급진적인> 2020 장혜영 국회의원 의정보고서
글 입력 2021.01.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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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보고.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의회의 정치를 보고하는 것이다. 즉, 국회의원이 자신을 뽑아준 시민들에게 공약의 이행 상황과 의정 활동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의정보고는 국회의원의 직무활동이자 책무이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매해 한 두 차례씩 의정보고서를 발행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정치활동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의정보고서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어떤 구의회의원이 주기적으로 보냈던 MMS 중 하나가 모바일 형태의 의정보고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오는 우편물 뭉텅이 사이에 섞여서 식탁 한 켠에 올려져 있던 걸 못 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그런 내가 장혜영 국회의원의 의정보고서를 우편으로 신청했다. 의정보고서 제작에 장혜영 후원회의 후원회장인 이슬아 작가가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장혜영 의원은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의정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의원으로서의 공적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 대신, 보는 사람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형식을 취했다. 글을 쓰는 사람과 나누는 대담으로 풀어낸 의정보고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정치를 해야겠다는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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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고 1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이 소책자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의정보고서는 장혜영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쓴 첫 글인 ‘공개정치선언문’을 시작으로 선언문에 담긴 세 가지 약속을 어떻게 이행하였는지 구체적이고 차분한 어조로 풀어낸다.

 

그 세 가지 약속은 첫 번째 지금 당장 변화를 만들겠다는 것, 두 번째 그 누구라도 평등하게 존엄을 누릴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 마지막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정치 이상으로 더 많은 책임과 권력을 가지고 변화를 일으키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변화는 미룰 수 있을지 모릅니다. 법과 제도는 미룰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변화를 미뤄야 할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미룰 수가 없습니다. 지금 벼랑 끝에 서서 하루하루를 견디다 못해 떨어져나가는 사람들의 삶은 미룰 수가 없습니다. 무참한 불평등 앞에 꺼질듯이 흔들리는 곳곳의 촛불같은 삶에는 ‘나중’이 없습니다.

 

- 공개정치선언문 중 일부 p. 08

 


그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는 정치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영화를 제작하고 책을 내는 등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시도들을 해왔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떤 한계에 직면했다. 시민 개인으로 이룰 수 있는 변화 그 이상의, 대의권력을 통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려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 신념은 그의 의정활동을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로 자리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분명한 변화


 

이 신념을 바탕으로 장혜영 의원이 당선 후 6개월 간 했던 의정활동은 이렇다. 국회의 청소노동자들과의 오찬으로 그들의 애로사항을 귀담아 듣고, 국회 내 수어통역사 상시 배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연령 제한 폐지, 현충원 경사로 설치, 차별금지법 발의,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캠페인 등이다.

 

 

장혜영: 어떤 분들은 이렇게 작은 것을 가지고 대단한 정치를 해낸 양 유세를 떤다고 비웃기도 하셨는데요. 저는 그렇게 폄하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게 작은 변화일 수는 있지만 분명한 변화거든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게 사실 이런 부분이잖아요?

 

이슬아: 어차피 안 바뀐다는 것.

 

장혜영: 바로 그거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촉구하면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요.

 

p. 46-47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데도 긴 절차와 이해관계로 개선이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장 의원의 말처럼 사람들은 이 지지부진함에 피로감을 느낀다. 아무리 외쳐도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란 불신. 장 의원 역시 이 답답함 때문에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고 그래서 공개정치선언문의 첫 번째 약속으로 지금 당장 변화를 일으키는 정치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대단치 않아 보이지만 불편함을 주던 것들은 거대하고 무거운 담론보다 더 바꾸기 어렵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에 더 깊이, 익숙하게 자리해 있는 불편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그는 약속한 대로 이런 불편을 해소하며 사소해 보이지만 분명한 변화를 계속해서 이뤄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예술로서의 정치”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마도 그 중 시민들이 가장 지쳐있는 것은 두 개의 거대 정당이 서로를 깎아 내리며 공생하는 생태계일 것이다. 현안에 대한 본질보다 어느 정당의 누군가의 치부를 드러내 그 사실관계를 증명하는데 시간을 소비해버리는 행태 말이다.


 

여러분이 독재와 싸웠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가 아닙니까? 우리가 불평등에 저항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미래를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민들이 인간답게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 정치,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 2020년 정기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 중 p. 85

 

 

이런 우리나라 정치의 딜레마 안에서 장 의원이 외치는 정치의 정의는 이렇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예술로서의 정치”. 권위를 가지고 사회의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정치의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역사는 절대적인 가치 하에 무언가를 분배하는 단순한 논리로 세워지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객관화 될 수 없는 무형의 가치, 신념에 따른 투쟁으로 이어져왔다.

 

사회에 산재한 각 분야와 관련된 현안들을 정책화하는 국회에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치는 정치를 함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기도 하다. 정치는 절대적인 무언가로 설명될 수 없는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자기 정치의 원칙을 세운다면 지금 우리가 지쳐있는 정치 성향과 진영논리에 따른 딜레마에 휩쓸리는 대신 사회 문제의 본질을 해결해나가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상적인 정치를 위해 도전하는 장 의원의 행보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치를 넘어선 태도에 관한 이야기



 

이슬아: 장혜영 의원님은 굉장히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요청하시네요.

 

장혜영: 그래야 회피하기 어려우니까요. 정치는 말로 집을 짓는 일이에요.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나중에 하는 말을 구속하기 때문에 쌓이면 쌓일수록 회피하기 어렵죠. 그러니까 말 한마디를 하거나 반대로 이끌어낼 때는 이 말이 단순히 그냥 공기중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의 국정감사 속기록에 영원히 남아서 이 다음에 이어질 수많은 정치활동의 토대가 된다는 점을 늘 의식해요. 벽돌을 쌓는 기분으로 말한다고나 할까요.

 

p. 38-39

 


장 의원이 공개정치선언문에서 언급한 세 가지 약속,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정치의 정의, 의원 활동 기간 중 이뤄낸 결과들, 의정보고서 속 그의 생각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내뱉는 말과 그에게 주어진 권력의 무게를 아는 사람. 그의 태도와 말하는 방식, 약속한 것을 결과로 이뤄내는 행동력은 정치 성향을 떠나 존엄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했다.

 

그리고 한 국회의원의 의정보고서를 읽고 이런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야기였다. 기존의 의정보고서의 형식 대신 이야기를 선택한 장혜영 의원의 시도에서 시민에게 가 닿고자 하는 그의 노력과 사려깊음을 보았다. 시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의정보고서는 의정활동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만 정치에 대한 신념에 기반해 서술한 그의 이야기엔 단순히 성과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울림이 있었다. 이야기의 서사가 만들어내는 맥락, 그것이 주는 감동이 이 소책자에도 분명 담겨있었다.

 

이것은 특정 정당을, 정치 성향을 드러내고 지지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로 정치라는 단어에 씌워진 수많은 프레임을 단숨에 지워버릴 순 없다. 하지만 존엄과 평등이라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소책자에 담긴 이야기에는 의정보고서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우편 신청은 끝났지만 장혜영 국회의원의 2020 의정보고서 전문은 장혜영 국회의원 홈페이지에서도 pdf 파일로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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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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