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관은 생존자의 쉼터였구나 -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

글 입력 2021.01.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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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가볍게 떠올려 보아도 역사 속 망조의 상황에 부닥쳐 있던 국가(백제 말, 고려 말 등)의 왕들에 관한 기록에서 좋은 말은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대개는 분쟁이 끝나고 나서야 펜을 쥘 여유가 생기게 된다. 패자는 주목받기 힘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하여 패자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는 바로 이와 결을 비슷하게 하는 저자의 의구심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물론 ‘사라진 작품’을 ‘패자’에 비유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자주 현재까지 보존되어있는 작품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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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사라진 작품’들이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너무 매력적이었기에 사라지기 쉬웠던 것이 아닐까? 삼국시대에 가장 자주 뺏고 빼앗겼던 지역이, 가장 매력적인 땅이었던 오늘날의 서울이었듯이 말이다.


사실 필자부터 역시 사라진 작품들에 관하여서는 큰 관심을 기울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자의 지적은 정확했고,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생각보다 많은 작품들이 의외의 사고를 겪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저자는 당시에 발생했던 사건사고들을 드라마처럼 서술하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기 쉽게 도와준다. 나아가 신화나 우화와 같이 사실적이지만은 않은 서술을 소개할 때는, 저자의 해석도 조금씩 첨가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지금부터는 필자가 책에서 읽은 부분 중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소개하는 이야기들에 구미가 당긴다면, 이 책을 꺼내 들어 읽어보자.

 

 

 

이게 사라질 뻔했다고?



저자는 사라진 작품들의 ‘사라짐’의 유형에 따라 장을 달리하여 소개한다. 크게 아홉 갈래의 손실로 나누는데, ‘도난’, ‘전쟁’, ‘사고’, ‘성상파괴와 반달리즘’, ‘신의 손길(자연재해)’, ‘일시적인 작품’, ‘소유자가 파괴한 작품’, ‘매몰과 발굴’, ‘사라졌거나 존재하지 않았거나(신화적 서술)’가 그것이다. 새롭고 놀라운 일화들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책의 내용을 통틀어서 필자를 가장 놀라게 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시녀들"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에 관한 일화였다. 필자가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상위 10위를 꼽자면 의심의 여지 없이 들어갈 작품이다.

 

 

[크기변환]1877px-Las_Meninas,_by_Diego_Velázquez,_from_Prado_in_Google_Earth.jpg

디에고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

 

 

그런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가, 불에 타버릴 위기에 처했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책의 세 번째 ‘사라짐 유형’이었던 ‘사고’에서 주인공으로서 서술되는 사건은 바로 ‘알카사르 궁전 화재’ 사건이다. 1734년에 일어났던 이 화재는, 벨라스케스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예술가의 작품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일은, "라스 메니나스"는 그림에 아주 헌신적이었던 누군가에 의해, 불에 붙기 직전 캔버스에서 오려졌고, 창문 밖으로 던져져 구출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저자의 서술을 읽으며 그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정말 좋아하는 입장에서, 몇 없는 그의 작품들이 더 몇 없게 불탔었다니, 하며 한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게 지금 없다고?



한편, 미술사를 공부하며 사진으로도 자료가 첨부되어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끔 ‘어디엔가는 있겠지’하고 넘겼던 작품들이 사실은 현재 실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들도 접하게 되었다. 조금의 배신감이 섞인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크기변환]Gustave_Courbet_-_The_Stonebreakers_-_WGA05457.jpg

귀스타브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

 

 

사실주의 회화로 유명한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은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한두 번 정도 듣고 봤을 만큼 미술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 주시오. 그러면 아름다운 천사를 그려 드리리라.”와 같은 말을 했다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쿠르베는 사실주의의 태도를 관철하며 그가 본 것을 그에게 보이는 대로 그렸다. 쿠르베의 태도를 필자에게 한 마디로 서술해 보라고 한다면, ‘얄짤없다’라고 할 것이다.


이토록 흥미로운 쿠르베의 대표작인 "돌 깨는 사람들"이 사실은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당황스러웠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보존되어있을 것을 당연시 여겼기 때문이다.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존하고 있던 드레스덴의 고전회화관이 세계 2차대전 중 폭격당함에 따라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걸 없애버렸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을 없애버렸다니, 싶은 예술가들의 행동도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마 미켈란젤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그림을 보았을 때에 누구나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는 엄청난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 연습, 그러니까 ‘드로잉’은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의 드로잉을 주기적으로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툴르즈 로트렉, 에곤 쉴레, 이중섭 등 많은 위대한 화가들의 드로잉은, 비록 그저 연습장의 한쪽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전 시대를 망라하는 거장인 미켈란젤로의 드로잉들이 남아있었다면, 사람들은 한 점 한 점 고이 보관하려 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이 부분을 서술하며 인용한 조르조 바사리의 구절이 정말 인상 깊었다.

 

 

나는 그가 죽기 전에 한 짓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그린 엄청난 양의 데셍, 스케치, 밑그림을 태웠다. 아무도 그가 수고를 감내하고 천재성을 시험한 방법을 볼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완벽하게 보일 것이다.

 

- 조르조 바사리 “위대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삶”, 본문 208쪽 재인용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위대하다. 하지만 그 위대함은, 그의 피나는 노력이 확인되지 않음을 통하여 신적인 것으로까지 보이기도 할 것이다. 과정 없는 뛰어난 결과는 경이로워 보일 뿐이다. 미켈란젤로가 그것을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그는 그 자신의 압도적인 천재성을 선보였다.


이와 비슷하게 모네 역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시를 앞두고 본인의 그림 15점을 파기했다고 한다. 또한, 말레비치와 피카소, 밀레, 고야 등의 화가들은 한 번 그렸던 그림 위에 그림을 덧입혀 그렸고, 이는 이후 X선 기술이 등장하며 밝혀졌다고 한다.


위의 경우들과 대비되는 것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원고에 관한 일화도 수록되어 있었다. 카프카는 유언장에 자신이 발표하지 않은 글을 모두 불태우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카프카의 유저遺著 관리자였던 그의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가 카프카의 “이 허무주의적인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카프카에게는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고 세상에는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서술한다. 정말 그런 일이었다. 예술가들이, ‘그들 자신’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세상에 보였다면 분명히 위대하게 여겨졌을 작품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더라면.


*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책이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미술사에 흥미가 없다면 많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책이다. 반면 필자와 같이 미술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라진’ 작품들을 다루다 보니 저자는 고대/중세/근세/현대를 넘나들며 작품을 가져온다. 따라서 기본적인, 때로는 심화적인 세계사(특히 유럽사) 지식, 그리스도교 지식,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이해 등이 선행되면 책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을 듯했다. 필자 역시 부족한 부분인지라, 더 많은 공부를 한 이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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