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식(美食)'을 돕는 식당들 : 카레와 치킨 버거 [공간]

글 입력 2021.01.0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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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美食)' 맛있을 미에 먹을 식.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이는 내 삶의 낙중 하나이자 일종의 취미이며 때때로는 미지에 대한 모험이고 도전이다.

 

'식(食)'이 갖는 의미는 개개인에게 꽤나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한 끼를, 홀로 먹더라도 무엇 하나 대충 않고 잘 차려진 식탁에 앉아 즐기는 것으로 삶의 윤택을 느끼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반면, 누군가에겐 단순히 생명 부지를 위한 그저 번거로운 수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몇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언젠가 배낭여행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중년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부산스럽게 음식을 내오고 또 금세 치워버리는 종업원들을 보며 그들은 언짢은 듯 ‘이탈리아에 오게 된다면 이렇게 식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간을 성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기에 여태 기억에 남을 만큼 다소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렇듯, 누군가에겐 식(食)이 성스러운 의식과 같은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전에 여느 때와 같이 데이트를 앞두고 애인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애인은 잠시 대답을 망설이더니 사실 본인은 어디에서 무얼 먹는지보단 누구랑 먹는지가 보다 중요한 것 같다며 그렇기에 상대가 너라면 뭐든 좋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 역시 퍽 기억에 남는 대화였는데, 이전까지 식사에 있어 상대의 중요성을 의식적으로 고찰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첫 문단을 다시 말하자면, 먹는 행위는 내게 있어서 삶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인 동시에 목적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값비싼 식자재가 들어간 고급요리를 먹는 것만이 미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입맛에 맛있고 단순한 포만감이 아닌, 나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면 그게 바로 미식이 아닐까. 오늘은, 내 미식을 도왔던 두 곳을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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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서울 성북구 성북로 62 

평일 12:00 - 20:00 브레이크타임 15:00 ~ 17:00 

토요일 12:00 - 18:00

일요일 월요일 휴무

한정메뉴, 인스타그램 확인

 

어제는 절기상 1년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소한(小寒)이었다. 요즘 같은 한파엔 아무리 동여맨다 한들 틈으로 파고드는 찬기는 못내 괴롭기만 하다. 이런 날이면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는, 목구멍부터 식도를 찬찬히 타고 내려가는 온기를 느끼고자 국물이 자작한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우리 한국인의 영원한 소울 메이트 국밥도 좋지만, 이색적인 풍미로 가득한 따수운 카레는 어떨지.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성북동의 간판 없는 카레 집 ‘카레’.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면 간판이 없어 자칫 지나칠 수도 있지만, 작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한 존재감에 ‘이 집이 그 집이구나’ 하며 쉬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담한 식당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늘 긴 웨이팅으로 북적이지만, 사장님의 접객은 능숙하고도 차분하다. 메뉴는 시그니처이자 유일한 고정 메뉴 No. 1 시금치 카레와 약 2주마다 변경되는 한정 메뉴로 구성되어있다.

 

시금치 카레, 처음엔 솔직히 썩 내키지 않았다. ‘시금치는 김밥에 들어있을 때나 먹는 나물이지 카레에 굳이 시금치를 넣는다고? 난 고기 들어간 게 좋아.’라던 나 자신, 이럴 때마다 내가 편협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편견을 깨부술 만큼 시금치 카레의 첫입은 말이 필요 없었다. 한껏 확장된 동공의 크기가 모든 걸 설명하는 듯했다.

 

시금치 카레지만 시금치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었고 흔히 아는 시금치의 맛도 나지 않았다. 대신, 곱고 짙은 녹색빛을 띄는 카레는 크림 수프처럼 부드러웠고 코를 갖다 대면 고소한 풍미가 잔잔하게 올라왔다. 다른 카레들과 달리 향신료가 강하게 느껴지진 않아 항신료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편히 먹을 수 있다. 일본식으로 진하게 볶은 다량의 양파를 베이스로 해 시금치를 듬뿍 넣어 끓여내는 방식이며 직접 만든 코티지 치즈와 별 모양의 채소 오크라가 함께 토핑된다. 맛도 멋도 좋다. 오크라는 뭉근 식감을 더해주며 비건식으로 주문하면 치즈는 제외해주신다고 한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카레의 맛을 알지 못했다. 그간의 카레 경험이라고는 급식으로 배식받던 카레와 엄마가 끓여준 카레가 전부였기에 별 특별한 맛이 아닌 음식에 왜 돈을 지불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카레는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과거의 내가 가여울 정도다) 그러했던 내가 카레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것은 친구 따라갔던 광화문 ‘고가빈 커리 하우스’였다.

 

성북동의 ‘카레’와는 각자의 개성과 결이 다르기에 비교하긴 어렵지만, 그곳 역시 맛있는 인도식 커리를 구현해낸다. ‘고가빈 커리 하우스’가 카레에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첫사랑 같은 존재라면 성복동의 일본식 커리집 ‘카레’는 언제까지고 함께 하고 싶은 마지막 사랑 같은 존재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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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프리크

서울 성동구 연무장 5길 9-16 블루스톤타워 B103

매일 11:30 - 21:00 브레이크타임 15:00 ~ 17:30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기가 막힌 치킨 버거집이 있다며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 게 어떻겠냐 물었다. 평소 ‘버거는 소고기 패티’를 외치던 나였기에 그다지 끌리는 제안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의 선택은 늘 믿는 편이라 별다른 내색 없이 따라나섰다. 그렇게 친구가 이끈 곳은 네쉬빌 스타일의 핫 치킨 버거를 판매하는 성수동의 ‘르 프리크’

 

분명 대낮이었는데 계단 몇 개를 지나고 지하의 버거집으로 들어서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도록 블라인드가 쳐진 창들과 은은한 조명들 때문인지 금세 하루가 저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 석과 테이블 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체리 빛의 붉은 가구들은 빈티지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모든 인테리어가 어우러지면서 가게의 이국적인 무드를 증폭시켰고 그 무드가 내게 계속해서 ‘우린 그냥 버거 집이 아니야’라고 말을 건네는 듯 했다.

 

굴러가는 눈동자를 부여잡고 착석하자 서버분이 갈색의 따뜻한 핸드타월을 내주셨는데 이때부터 어느 정도 감을 잡았던 것 같다. 흔히들 햄버거는 단순 패스트푸드로 여겨지지만,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시그니쳐 버거와 스몰 플레이트 두 종류를 주문했다. 시그니쳐 버거의 재료는 간결하다. 번, 딜 피클, 핫 치킨, 코울슬로. 촉촉하고 버터의 풍미가 잘 느껴지는 뺑드에코의 버거 번은 빵만 먹어도 맛있고 곱게 채썰어져 버거의 맛을 좌우하는 코울슬로는 아삭하지만 부드러운 텍스쳐로 버거에 대한 몰입을 돕는다. 피클 역시 일정한 두께로 식감, 산미와 짠맛을 더한다.

 

스몰 플레이트 중 고구마 뇨끼는 내 입맛엔 맞지 않았지만, 마리네이드 후 살짝 태워 스모키한 향을 입힌 토마토와 생햄, 신선한 루꼴라와 사과를 카피르 라임잎 드레싱에 버무렸다는 체리 토마토는 정말 훌륭했다.

 

하지만, 결국 이곳은 버거를 파는 식당이고 버거 너머의 세상을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것이다. 분명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고 익숙한 맛이니까. 그렇지만, 전체적인 밸러스만은 예술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식당의 무드부터 서버분의 친절한 설명, 시그니쳐 버거와 사이드가 아닌 스몰로 이름 붙여진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정성스러운 테크닉의 갖가지 플레이트들, 매달 새로이 등장하는 이달의 버거까지.  식사를 하는 내내 제대로 된 다이닝을 즐기는 듯한 만족감이 가득했다.

 

*

 

삶의 낙이자 취미이며 모험이고 도전인 미식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오늘도 정성껏 밥을 짓고 반죽을 하고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온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들에게 이글을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진 출처는 각 식당의 인스타그램입니다.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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