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답 대신 인류애를 선사하는 학문, 철학 - 이언의 철학 여행

글 입력 2021.01.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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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곧바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데?’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데?’라는 질문에 가로막혔다.

 

나는 항상 목마르다. 수많은 책과 영화를 접했지만, 여전히 더 많은 글을 읽고 싶고 더 많은 말을 듣고 싶다. 이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믿음, 여태까지 보고 들은 걸로 결정된 내 판단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잭 보언의 <이언의 철학 여행>을 읽고 깨달았다. 이미 내 안에 있던 믿음과 의심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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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의 철학 여행>은 열네 살 소년 이언이 꿈에서 노인을 만나 철학에 관한 수업을 듣는다는 구조로 이뤄진 소설 형식의 철학 입문서다. 어린 시절 읽었던 <수학 귀신>이 떠오르는 구조라 친절한 교과서를 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이 친절한 입문서는 ‘지식’, ‘과학’, ‘종교’, ‘윤리’ 등 그동안 철학자들이 열심히 논의했던 주제를 하나하나 다루고 있다. 학창 시절엔 철학자들의 주장은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심오해서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여겼다.

 

책을 읽으면서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경제 관련 만화책을 자주 떠올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 개념을 실생활에 빗대어 설명해서 경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나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 역시 내겐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노인은 이언에게 수많은 예시를 제시하면서 우리 삶이 철학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맺는지를 알려준다.

 

어떤 학문에 대한 관심은 해당 학문이 현실과 동 떨어있지 않다는, 내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있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언의 철학 여행>은 철저히 철학 입문서다. 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에게, 궁금하지만 그보다 현실의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 자에게 독자의 일상 곳곳에 숨은 철학을 찾아내는 책이다.

 

이 책은 각주가 유달리 많은 편이다. 각주는 대부분 유명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엔 책장 하단이 아닌 옆쪽에 위치한 각주가 집중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과 이언의 대화가 각주의 내용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을 알았다. 둘의 대화를 따라가다 해설이 필요할 때 각주를 참고하는 식으로 읽으니 훨씬 이해가 쉬웠다.

 

그러면서 철학이 일상에 스며드는 과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를 느꼈다. 만약 우리나라의 교육이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가 철학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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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에게서 들은 한 일화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대학교 철학과의 한 시험 문제에서 ‘?’ 라는 대답이 만점을 받았다는 일화다. 아이들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게는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일화다.

 

<이언의 철학 여행>을 읽으면서 ‘?’만큼 정확한 답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언은 노인과의 대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노인의 말은 굳게 자리 잡은 신념 체계를 뒤흔들고 이언을 매일 매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나 모든 걸 통달한 것 같은 노인의 말도 꿈에서 깬 뒤 주고받는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자꾸 나도 모르게 ‘그래서 정답은 뭔데?’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동안 알고 있던 진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놓고, 평온한 삶에 파문 같은 질문을 던져놓고 어떠한 답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책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중후반부에 이르러서 내가 느꼈던 답답함이 주입식 교육에 찌든 증거라는 걸 깨달았다. 과학 시간에 한 현상에 대한 과학자들의 전혀 다른 주장을 배우면서 다음 세대에게 틀렸다고 판단되는 이전 세대의 주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네모나다는 주장 같은 경우 말이다.

 

사실 진짜 무의미한 건 사실이라고 증명되지 않는 주장은 모두 평가 절하한 내 태도였다. 삶의 지혜는 객관적인 정답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믿음을 의심하고 자신만의 주장을 찾는 노력 그 자체다.

 

이 책은 574쪽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를 자랑한다. 무려 열세 개 주제의 철학 담론이 담겨 있으니 당연한 쪽수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책이 두꺼워도 이 한 권으로 철학을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든 게 아니라 대표적인 철학 주장을 한 데 모아 담은 참고서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일생을 다 바쳐 철학을 탐구하다니. 철학이 대체 뭐길래 다들 왜 그렇게 할 말이 많은 걸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이 모든 담론이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현대사회에서 사람은 기계 부품으로 취급돼 능력에 따라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간은 몇 가지 잣대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납작한 존재가 아니다. 능력은 물론 성별, 피부색, 종교 등 그 어떤 잣대로도 함부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인류애가 피어올랐다. 철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의 근본이 되어준 사람과 우리 삶에 대한 경탄 덕분이었다. 주변에서 인생이 망했다는 자책이나 타인을 향한 비방을 쉽게 듣곤 한다. 모든 사람이 세상과 사람을 평가 대신 탐구하는 철학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얼음장 같은 사회도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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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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