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20: 지구에서 스테이 [도서]

바이러스와 살아있는 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글 입력 2021.01.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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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정리하는 글의 논조는 언제나 둘이었다. 뿌듯함과 보람, 성과를 이야기하거나 실패와 우울, 좌절감을 이야기하거나. 요 며칠 2020년을 정리하며 저마다 두 갈래 중 하나를 말했을 테다.

 

다만 커다란 차이가 있다. 우리를 하나의 굴레로 묶은 코로나가 있었으니. 종종 생각해 본다. 이게 팬더믹이 아니라 콘텐츠였다면 좋았을 텐데. 코로나를 콘텐츠화하자는 움직임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비슷했을 2020을 정리해보려는 시도가 한데 모였다.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 '지구에서 스테이'다.


코로나를 주제로 만든 예술이 아주 많았음에도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세계 18개국 56명의 시인이 각자의 시선으로 코로나와 삶을 풀었다. 때로는 특정 국가의 풍습이 그대로 보이고, 때로는 몇 번을 읽어도 알쏭달쏭하고, 때로는 시가 노랫말과 같다던 수능 강사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SNS에 담긴 여러 사람의 언어가 몇십 편의 시로 응축된 느낌이었다.


시집의 얄팍한 두께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간단하고 쉬운 단어의 집합이라고. 한때 나도 그러했다. 생각이 바뀐 건 고등학교 2학년 국어 시간, 김소월의 산유화를 배울 때다.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후략)


- 김소월



수능 국어가 시를 해부하는 방식-형식, 갈래, 성격 등-은 여전히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설하는 과정은 의미 있다고 본다. 짤막한 시 한 편에 수업 시간 절반을 할애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시간을 길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도. 선생님의 해설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를 눈으로 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글자 밖, 여백의 존재를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이래서 시는 천천히 읊어야 한다. 글자뿐 아니라 여백까지 읽어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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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서가 그러하겠지만, 이 시집은 목차가 특히 중요하다. 여러 나라를 포괄했기 때문에 정렬을 잘해야 했다. 편집자가 선택한 방식은 국가별 분류다. 크게 한국 / 유럽, 영미 / 일본 / 중국, 홍콩, 타이완으로 나뉘었다.

 

각 카테고리에는 열에서 열다섯 남짓한 시가 수록되었다. 그중에서 그 카테고리를 대표할 만한 한 대목을 숫자 왼편에 실었다. 시집을 다 읽고 보니, 각 묶음을 대표하는 한 마디 혹은 주된 분위기였다.

 

한국: 우리도 구하고 싶습니다

유럽, 영미: 이 도시가 죽은 사람을 바다로 버리기 시작한 것은 사월이었다

일본: 나는 바이러스 맑은 후에 흐림 가끔 멸망

중국, 홍콩, 타이완: 적어도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고

 

57편 중에서 가장 나누고 싶은 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한국. 우리가 시라고 생각하는 시의 모습을 갖췄다. 적당한 여백, 적당한 은유. 전체적인 경향을 이야기한 것이지 수록된 모든 시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시집의 첫 시작을 김혜순 시인의 '우주엄마'로 시작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오랜만에 시를 접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흥미로운 전개였으니.

 


우주엄마


우주는 무한하나 그 속엔 낙이 없구나(누군가의 명언)

이 알 속에는 나만 있구나(어느 달걀노른자의 명언)


엄마는 물 마시고 싶고

우주엄마는 물 만져보고 싶고


엄마는 창밖의 푸른 하늘로 다이빙하고 싶고

우주엄마는 검은 채널 돌려 우리엄마 시청하고 싶고


(중략)


우주엄마가 다가올수록 엄마는 더 아프고

엄마는 이제 그만 아프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고


머나먼 우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별 중에 어디서

내가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우리엄마는 나한테 그런 전화나 하고

우주엄마는 엄마의 몸을 깨트려 별들이 무한하게


엄마의 알을 깨고 거기 엄마 대신 환한 노른자처럼 눕고 싶은

머나먼 우주의 검은 엄마는 나에게 딸아 딸아 내 이쁜 딸아 부르고


- 김혜순


 

첫 문단. '달걀노른자의 명언'이라는 말이 장난스럽게 읽혔다. 유쾌하게 풀어 본 이야기일까. 끝행으로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처음 읽고서는 이유를 몰랐다. 의미가 와 닿지 않아 다시 읽고, 한 번 더 천천히 읽었다. 문득 달걀노른자가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느껴졌다. 왜일까. 달걀, 노란색, 단백질. 코로나 바이러스의 표면이 왕관 모양의 단백질 스파이크로 이루어졌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시를 대략적으로 살펴본다. 시작은 엄마와 우주엄마의 병치다. 둘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지만 우주엄마가 점점 더 엄마에게로 다가간다. 끝내 우주엄마가 엄마를 깨부순다. 이때 딸이 나와 '우리엄마는 나한테(나에게 가 아닌 나한테. 딸이 실제로 말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어투다) 그런 전화나 하고', '엄마 대신 환한 달걀노른자처럼 눕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엄마는 이제 없고, 우주의 검은 엄마가 되었다. 갈무리되지 않은 마지막 어미('부르고') 때문인지 여운이 깊었다.


다른 세 묶음의 시를 아예 언급하지 않기엔 아쉬워서 짧게 이야기 해본다. 아련함이 돋보였던 한국의 시를 거쳐, 유럽과 영미권에 들어선다. 캐나다,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 등 온갖 나라가 한 곳에 묶였으니 시 또한 다채롭다. 랩 같은 시가 있는가 하면, 줄글 못지않게 길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하고, 민족성이 뚜렷하기도 했다.


일본은 직설적이고 일상적이었다. 자연스럽되 군더더기 없는 쉬운 표현. 간단한 문자로 이루어져서 일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일상을 그대로 이야기하다 보니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도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그 눈짓이 눈치보는 정도로 표현되기도 했다.

 

중국, 홍콩, 타이완도 일본과 비슷했다. 다만 조금 덜 직설적이었다. 이 글을 세심히 읽었다면 56명의 시인이 참여했는데 총 57편이라고 말한 부분을 기억할 것이다. 한 시인만 두 편을 실었고, 그 중 한 편을 마지막으로 띄우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답해볼 만한 질문 열 가지, 그 일부를 소개한다.

 


열 가지 질문


1. 전 세계에서 한 사람만 저녁에 초대한다면 누구를 선택 하시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이동이 금지되어 있지만, 한 명만 초대한다면.


2. COVID-19가 유행하는 와중에도 유명해지고 싶습니까? 어떤 식으로?


3. 전화나 Zoom을 하기 전에 말할 내용을 미리 연습합니까? 예를 들면, 두루마리 화장지가 이제 세 개밖에 없다고. 쓸쓸하고 우울하다고. 가끔 도시의 고요함이 너무 시끄럽게 들려서 팟캐스트를 막 듣는다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읽은 척했던 책이 얼마나 되는지 드디어 세어봤다고. 이제 드라이어로 바쁘게 머리를 말릴 필요가 없어졌다고.


4. 무엇이 있다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하루가 '완벽할' 수 있을까요?


5. 마지막으로 혼자 노래를 부른 것은 언제였나요? 10분 전?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위해 노래 부른 것은? 그 사람이 그 노래나 가창법을 좋아했습니까?


6. 혹 아흔 살까지 살 수 있고 마지막의 육십 년을 서른 살 때의 마음 또는 몸으로 살 수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마음? 아니면 몸?


(후략)


- 타미 라이밍 호

 

  

 

표지.jpg


 

가  격

13,000원

 

지은이

김혜순 외

 

옮긴이

김태성, 요시카와 나기

 

펴낸날

2020년 11월 30일

 

판  형

120*210㎜

 

분  량

164쪽

 

ISBN

979-11-91209-27-3  03810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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