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볼레로 만들기'로 수다 떨기 [공연]

국립현대무용단의 댄스 필름 '볼레로 만들기' 관람 후 나눈 대화를 기록하다
글 입력 2020.12.3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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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볼레로 만들기'


  

현재 국립현대무용단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집콕문화생활 연말연시 특별전’의 일환으로 그간 제작했던 댄스 필름 8편을 유튜브에서 상영 중이다.


필자는 그중 안무가 김설진과 영화감독 이와가 공동연출하고, 리브투더의 음악이 함께한 댄스 필름 ‘볼레로 만들기’를 관람했다. 이 작품은 지난 2017년,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를 세 명의 안무가가 재해석한 작품을 모은 ‘쓰리 볼레로’ 중 하나로 공연되었는데, 이번에 댄스 필름으로 제작되며 영상이라는 매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감각적인 결과물을 선보였다.


그러나 홀로 작품을 관람했기에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고, 필자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졌으며 마침 ‘쓰리 볼레로’를 직접 관람했던 친구에게 감상을 물어보다, 우리가 나눈 대화를 옮겨 새로운 형식의 감상을 시도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필자와 친구의 메신저 대화를 옮긴 것으로, 먼저 영상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두 친구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하며 글을 읽는다면, 더욱 재밌는 시간이 될 수 있을 테다.

 

 



 

필자는 주황,

친구는 녹색으로 표시한다.

 


‘볼레로 만들기’의 시작. 플롯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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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감상한 '볼레로 만들기'를 보면 정말 다양한 레이어가 쌓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 그래서 플롯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며 시작해볼까?


좋아!


시작 장면은 뭔가 잔뜩 실린 수레와 바닥에 쓰러진 한 사람의 손이야. 그리곤 사무실의 풍경이 등장하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뭔가 낯설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그때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오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듯한데!


대략적으로는 사무실의 일상적 풍경, 그러니까 각자 일을 하고 모여 회의를 하고 야근하는 모습이 시간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기묘한 실험실 풍경이 교차하는 것 같아.

 

그리고 이를 낯설게 바라보는 한 사람이 사무실로부터 도망치는 장면까지!


그럼 이제 조금 더 자세히 장면을 꼽아서 이야기해보자.


처음에 등장한 수레랑 남자의 손, 그리고 사무실에서 보이는 반복적 행동이 엄청 궁금했어! 희원은 첫 장면에서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었어?


나도 수레는 대충 ‘소리를 만드는 재료들이 담긴 걸까’라고 생각했거든. 비 오는 날 쓰러진 남자를 보고 의아했는데, 마지막까지 보고 나선 설마 도망친 사람과 관련 있는 사람일지 의문이 들었어. 해석에 따라 같은 인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


어쩌면 가장 첫 장면이 아니라 일이 다 일어나고 난 다음 마지막 장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


오! 나도 수레가 뭔가 소리의 재료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어지는 사람의 손은 혹시 죽은 사람인 걸까.. 하는 생각 정도?


그리고 사무실에서 보이는 반복적 행동에 대해서는


물뿌리개 소리, 타자 소리, 스탬프를 찍는 소리, 볼펜으로 적는 소리 등이 있었지!


볼레로의 분해된 리듬이 어스름히 읽히기도 했고! (난 이 ‘읽힌다'는 게 ‘볼레로 만들기’에서 가장 좋은 점이었어) 특히 이 부분은 영화 ‘시카고’의 첫 장면을 연상하기도 했지.


오 읽힌다는 게 흥미롭다! 이따 더 자세히 이야기해줘!!


그래! 아무튼 엄청 흥미로웠던 첫 장면!


난 추가로 사무실에서 나는 소리와 수레에서 나는 소리가 뭔가 상반된다는 느낌도 어렴풋이 든 것 같아. 수레에서 나는 소리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사무실의 소리는 굉장히 분절된 느낌?

 

맞아 사무실에서 발생되는 소리는 정말 가장 작은 단위 같은!

 

 

 

사무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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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들에 이어지는 게 사무실의 사람이 테이프로 바닥에 선을 따라서 붙이고, 누군가가 사무실 밖에서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이야!


사무실 안의 풍경, 희원은 어떻게 봤어?


나는 일단, 이 사무실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하다가, 사람이 등장하고 나서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을 지켜봤던 것 같아.


그치? 초반에는 뭔가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통상적 풍경인데, 움직임이 점차 과해지고 낯설어지는 것 같았어.


맞아. 그리고 약간의 정적과 함께 사무실에서 실험실로 전환되는데, 전환 이전에 볼레로의 반복되는 멜로디 중 일부를 상사가 아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내뱉는 험한 말(물을 머금고 가글)로 해석한 게 흥미로웠어!


오! 장면의 전환이자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을까?


뒤에 오는 정적까지 합쳐져서 나는 그렇게 읽혔던 것 같아!


좋아! 그러면 사무실의 풍경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 가보자. 그 이후에 사무실은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그중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한 사람, 혹시 알아챘을까?!


가장 바쁜 사람?! 헉 누굴까?


10분 50초대에서 혼자 움직이는 사람! 왠지 나는 그 사람이 그곳에서 가장 높은 직급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영상 시작 부분에 가글맨(앞서 직원에게 험한 말을 하는 상사를 서로 지칭하기 쉽게 ‘가글맨’이라는 애칭을 붙였다.)이 아부하듯이 무릎을 꿇고 있고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는데, 가글맨과 상사 사이의 상관관계도 좀 묘한 것 같다고 느꼈어! 나중에는 가글맨이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어서 상사를 몰아내고 앉은 걸까 싶기도 하고?!


아아, 그렇네!

 

 


회의실, 전환과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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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즈음에는 사람들이 함께 회의실로 이동하고, 회의실에서도 신기한 풍경이 연출되는 것 같아!


맞아 부품처럼.


오 맞아. 부품 같은 인상이 강했지!


그런 식으로 회의실에서도 계속 톱니같이 맞물리는 개체들로 보였어. 이 회의실을 기점으로 음악도 템포의 변화가 생기고, 더 고조되는 양상을 띠는 것 같아.


근데 회의실에서 뜬금없이 결혼행진곡으로 변주되는 부분이 갑자기 웃겼거든? (ㅋㅋㅋ)


중간에 여자분 표정 = 내 표정 (ㅋㅋㅋ).


나는 뭔가 회의가 산으로 간 건 아닐까 추측도 해봤어.


난 오히려 회의에서 어떤 결실이 있었나? 생각했는데.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구나. 결실이라는 메타포였던 것인가!


자, 그럼 열심히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사원들이 이제 회의실 밖으로 튀어나오는데, 희원이 이야기한 것처럼 음악이 점점 고조돼! 나는 이 분위기가 퇴근이 가까워져 오며 점점 고조되는 사무실의 분위기를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 막판 스퍼트랄까?


아까처럼 반복적이고 기계적이지만 훨씬 동작의 범위도 넓고 앵글도 확장된 것 같아. 진짜 퇴근을 향해 달려가는 직원들처럼.


앵글의 넓어짐!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그렇네??


그러다가 또 장면이 전환된다 그치.


 

 

야근, 절정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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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움직이던 사람들 사이에서 가글맨이 상사 자리에 털썩 앉으니 비가 오고 천둥이 치기 시작해.


근데 진짜 여기가 상사 자리였네..?


그렇지. 상사는 어디 가고 가글맨이 여기 앉아있는 걸까? 엄청 고통스러워 보여. 꿈을 꾸는데 그 속에서 스캔 된 사람의 얼굴이 마구 보이는 것 같아.


맞아. 사실 가장 힘든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가글맨이지. 뭔가를 지시하고 부하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가글로 비유된)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이 사람이었고.


그렇네! 위계에서 높이 있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큼 감당할 것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으니까!


심지어 막상 꿈에서 깨보니 꿈보다 더 끔찍한 야근이 기다리고 있네?


잠깐만, 이거 너무 리얼하잖아. 꿈에서 깬 건 맞겠지? 오히려 뒤에 이어지는 장면이 더 극적이고 광기 어려서 꿈처럼 느껴져.


맞아. 광기 그 자체를 표현한 것 같아서 현실과 비현실이 모호하게 느껴지네. 이젠 사람들이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미친 듯 헤집고 다녀! 야근이라는 현실을 부정하는 몸짓인가, 혹은 꿈속인가..


책상을 넘나들고, 뛰어다니며 서류를 던지고 하는 모습이 통쾌하기도 하고 너무 지쳐 보이기도 하고.


통쾌하면서 지친다. 적절한 비유 같아. 광기가 극에 달하니까 종이가 폭발하듯 흩뿌려지고 마지막으로 장면이 전환되는데, 계단 같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유일한 이방인, 낯설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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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등장하는 손의 주인공 같기도 한데, 이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왔었잖아.


갑자기 가글맨에게 다소 폭력적인 행위를 당하지. 막무가내로 스캐너에 얼굴이 밀려들어 가.


이 사람은 사무실의 기계적인 풍경에 동화되지 못한 개인이 아닐까 생각했어. 사무실 안 사람들은 각자의 움직임에 ‘작용-반작용’이 형성되는 것 같았는데 이 사람은 사무실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심지어 지나가던 사원이 밀쳤을 때 그냥 넘어지니까.


그래서 이어지는 스캔 작업(?) 이 한 개인이 조직에 흡수되기 위해 기계화되는 과정은 아닐까 추측해보았거든. 희원은 어떻게 생각해?


오. 일리 있어. 거기에다 난 이 사람이 유일하게 표정이 있다고 생각했어.


표정!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어!!


초반에는 사무실의 기계적인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어느새 나도 동화되고 있었거든.

 

거기서 이 사람이 당혹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나중에는 뭔가 이 일에 대해 궁금한 듯 들여다보는 행동을 통해 낯선 상황을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이 사람이 확실히 다른 재질의 인물이라는 건 느껴지는 것 같아.


이 사람이 스캔 당하고 나서 앞에 마주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게 되잖아.


나는 여기서 기계처럼 각자가 부품이 되어 돌아가는 구조를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서로를 밀고 누르며 올라서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걸 바라보는 한 사람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두려워하는 표정이었어. 결국 이 풍경을 낯설게 느끼는 건 그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실험실과 사무실의 경계, 인간의 사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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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결의 관점인 것 같지만, 스캔 당하고 나서 장난감 자동차가 등장했잖아? 실험실에서 뱅글뱅글 돌던 그 자동차라 그런지 실험실이 생각이 났거든. 그런데 후에 등장한 사무실 안 사람들의 움직임이 실험실의 사물이랑 유사한 거야.


헉. 진자랑 테이프, 돌아가는 사물들?


처음 2분 28초가량에서 나오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물이 5분 27초에 물구나무서서 돌아가는 남자와 닮기도 했고, 실험실에서 농구공 튕기는 모습과 회의실에서 튀어나오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는 농구공 튀는 소리가 겹쳐지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실험실과 사무실이 밀접한 연관을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


진자 운동이나 원운동처럼 어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요소가 이 사람들의 행동과도 관련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걸까 생각했지.


실험실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계속 고민했는데 네가 말한 연관성으로 이어보니까 인간과 사물이 겹쳐 보이면서 이어지는 것 같아!


근데 실험실이랑 사무실이 겹쳐 보이긴 해도 직접적으로 상호개입되진 않는데, 아까 말한 장난감 자동차가 사무실에 등장하는 게 유일하게 개입하는 장면이거든. 그건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해!


딱 직관적으로 드는 생각은 궤도를 돌던 자동차였으니까 ‘궤도를 이탈했구나!’ 하는 생각. 그 자동차가 사무실의 정지된 상태를 깨뜨린 후부터 사무실과 실험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장난감 자동차가 궤도를 이탈한 건지, 아니면 사무실 자체가 거대한 궤도임을 뜻하는 건지 모호하더라고.


맞아. 사람들이 실험실의 실험체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데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남자의 표정이 이건 충분히 당황스러운 광경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해.

 

 

 

물방울과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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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지켜보던 남자는 사물로 비유되거나 기계화되진 않은 것 같아. 오히려  공간으로부터 도망을 시도하니까. 8분 30초에 모여있는 사람들 뒤로 도망가는 남자와 쫓아가는 가글맨의 모습, 진짜 웃겨!


그러니까 (ㅋㅋㅋ) 진짜 재밌어.


블랙 유머 같은데, 어쨌든 그 후로 도망친 사람은 옥상이나 막 벽을 타면서 공간의 탈출을 시도하는데, 옥상에서 뭔가 잔뜩 담긴 신비로운 수레를 보게 돼. 그걸 바라보는 표정이 되게 묘해서 한번 추측해봤거든? 신비로운 수레가 자유를 상징하는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남자는 결국 건물로 비유된 기계적 시스템을 탈출하지는 못하고 죽은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어.


14분 48초에 그 남자가 물방울을 계속 바라보고, 수레가 보이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해?


위의 내용이랑 비슷한 맥락으로, 밖은 비가 쏟아지지만, 내부에서 외부로의 탈출은 불가능한 상황. 물이 새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을 바라본 건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물방울만 겨우 통과할 정도의 틈만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고 결국 자신은 탈출하지 못하는 좌절을 나타낸 게 아닌가 생각해.

 

그리고 그게 마지막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계단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그저 손으로 받아낼 뿐인.


오오. 엄청 심오한 해석이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이 택한 탈출의 방법이 뛰어내린 거라고 추측했어. 첫 장면의 손이 아스팔트 위에 있는데 주변에 빗물이 고여 있었잖아.


우와 충격적이야!!


그런가?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어.


나는 4분 27초 즈음에 빗방울 소리랑 함께 실험실이 등장하고, 한 남자가 옥상을 뛰어다니며 수레를 찾는 장면들이 계속 그 소리에 대한 어떤 원인을 찾으려 하는 걸까 생각했어.

 

물론 그의 표정이나 빈 수레에 담긴 의미는 모르겠지만, 결국 실험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까지 다다른 걸 보고 이건 또 어떤 연관성이고 어떤 결말일까 고민했지.


만약 그가 다다른 게 실험실이라면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실험실의 사물이 되는 것뿐이라는 결말도 생각해볼 수 있겠네?


나는 빗방울이 리듬의 반복을 상징하는 것인지 추측했었어. 영화 ‘시카고’ 첫 장면에서도 빗방울이 반복되다 리듬이 되고, 음악으로 이어지거든! 표정에 대해 해석할 수 있다면 더 명확해질 것 같은데, 여러 가지 힌트들이 지금은 추측으로 남는 것 같아.


리듬의 반복과 단서. 좋아! 우리가 다 해석할 수는 없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게 재밌다!

 

 

 

‘볼레로 만들기’의 재료. 해체와 반복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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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플롯이나 내용에 담긴 이야기는 거의 다 다뤄봤어. 추가로 희원에게 사운드와 시각 요소에 대해 더 듣고 싶어!


나는 ‘볼레로 만들기’에 사용된 사운드와 음악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안무가 김설진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볼레로의 해체’와 ‘구조만 남기고 덜어내기’, ‘레시피만 가지로 다른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라는 이야기에 주목해봐도 좋을 것 같아.


맞아. 내가 예술의 전당에서 ‘쓰리 볼레로’의 일부로 관람했을 때, 첫 번째 작품이 끝나고 해당 무대가 시작하기 전에 스태프들이 나와서 일제히 바닥에 뭔가를 깔고 움직이길래 무대를 전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무대를 세팅하며 나는 소리와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행동이 모두 연출이었더라고!


우와!


그대로 아주 부드럽게 볼레로가 시작되었어. 무대 전후의 경계가 없다고 느꼈달까?


말 그대로 볼레로 ‘만들기’였네!


맞아. 정말 말 그대로! 아까 볼레로가 ‘읽힌다’고 했잖아(초반 참고). 볼레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한번 들으면 잊히기 힘든 곡인 이유가 작은 단위의 리듬과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는 흥미로운 구조이기 때문인데, 이 작품을 보고 느낀 건 ‘이걸 해체해도 읽힌다’는 것이었어!


작은 단위로 해체하고, 다시 반복해 쌓아가는 과정. 해체하며 마음껏 요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좀 와 닿는다!


그런 과정에서 시각적인 부분도 많은 역할을 했을 것 같은데, 무대에서의 공연과 영상을 둘 다 봤으니 영상이라는 매체가 어떤 부분에서 좀 더 효과적이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사물을 가지고 이리저리 만져보는 장면들이 해체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 확실히 무대에서는 공간의 표현이 명확하지 않았지. 영상에는 훨씬 많은 사물이 등장한 데다 앞뒤 뚱뚱한 컴퓨터, 일자 막대 조명, 사무실 책상이 주는 이미지는 생각보다 큰 것 같아.


굉장히 직선적이고 딱딱한, 책상의 배치와 형태조차 프레임처럼 느껴져. 실험실과는 완전히 대비되어서.


맞아. 엄청 정형화된 프레임 속에서 일어나는 반복과 고조가 절정에 다다를 때 폭발적인 쾌감을 주기도 하고,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사무실 사람들의 움직임에 딱 맞게 적용되었을 때.


되게 짜릿했어.


맞아. 짜릿했어!


영상이라는 매체가 강조할 부분을 확실히 강조하고 공간의 대비를 확실히 보여줘서 작품을 효과적으로 잘 살린 것 같아.


난 소리에 관해선 분해하고 대체해도 볼레로가 읽히는 재미있는 확인을 한 작품이라고 생각해!

 

 


정리 하기 ; 작품의 주제와 관전 포인트


 

자, 이제 정리를 해볼까? 나는 작업의 서사나 메시지를 보려는 경향이 있고, 희원이는 시각적인 요소나 음악의 구조적인 면에서 더 세부적으로 본 것 같았어!


그렇다면, 희원이 생각하는 이 작품의 주제를 뭐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해.


반복은 고조를 만들고 고조는 폭발을 만든다는 것? 음악을 들었을 때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지만 현나의 해석을 함께 생각해봐도 반복적인 것이 폭발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석해도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아.


좋은 지점이야! 영상에서도 요소들이 중첩되며 고조에 다다르는 장면을 점진적으로 보여줬으니.

 

나는 사회적 메시지와 좀 연결해서 작품을 정리해봤는데, ‘자본주의의 경쟁과 질서 자체로서의 회사라는 공간에서, 개인을 기계화하는 시스템의 억압과 부조리가 만들어낸 광기 어린 풍경’이라고 정리해보았어!


난 개인적으로 볼레로를 좋아하는 이유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모든 악기가 최고의 음량을 내는 그 볼륨에 심장이 떨릴 만큼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거든. 현나의 메시지랑 연결 지어 생각하니까 조금 슬프다.


외면하기 힘든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지.


그렇다면 아직 상영 중인 작품을 볼 관람객들에게 알려줄 관전 포인트는 뭘까?


관전 포인트는 남자와 수레!


모든 풍경을 낯설게 하는 두 요소.


맞아. 낯설고 이질적이지만 분명히 연결되는 것 같아.


좋아! ‘볼레로 만들기’라는 작품 자체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기에도 좋았고, 서로 비슷하지만 또 다른 관심사를 가진 두 명이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니 놓친 부분이 보이고, 새로운 시선이 얽히면서 더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현나의 해석이 궁금했는데, 역시 재밌는데?


다음에는 희원이 원하는 작품을 가져와서 또 이야기해보자!


좋아.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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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추가로 작품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아수라장이 된 사무실에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옷가지만 남은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각자의 생각으로 작품의 의도를 추측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앞으로도 자주, 다양한 이들과 다양한 문화 예술 경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하나의 작품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그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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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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