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도서]

글 입력 2020.12.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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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질병


 

2020년 2월, 코로나19라는 신종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쳤다. 바이러스는 평등했다. 인종과 계급, 성별, 국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침투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염병의 대유행은 평등하지 않았다. 코로나19의 확산 국면이 그 증거이다. 지난 3월, 서울 구로구의 한 보험사 콜센터에서 수십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좁고 밀폐된 공간에 모여 근무하다 벌어진 일이다. 5월에는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가 100명 이상 나오기도 했다. 사회의 편견과 아웃팅 등을 걱정하며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는 성소수자들에게 벌어진 일이다. 같은 달 말에는 부천의 한 물류센터에서 150여 명의 누적 확진자가 발생했다.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도 직접적인 생계의 위협으로 일을 쉬지 못한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사회 취약계층의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례는 최근에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잠시 멈춤을 선포하고, 재택근무, 유연근무, 유급휴가 등을 권장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자영업자 등 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세상에 널려있다. 당장 오늘, 일하지 않으면 생계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코로나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위험이 도사리는 일터로 나가고 있다.

 

질병은 불평등하다. 가난과 열악한 노동 환경, 사회적 편견과 차별, 장애, 고립 등에 노출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코로나19에 취약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단 코로나19만의 문제는 아니다.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병부터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 그리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병까지, 질병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여성, 빈곤층, 노동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취약계층의 질병을 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들의 질병을 탐구하고, 그들이 다른 집단보다 더 많이 아픈 이유를 사회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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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질병, 방치된 죽음


 

2009년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이후, 해고노동자와 그들의 가족,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 29명이 죽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암에 걸렸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이 아픈데도 참고 일을 했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수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정리해고를 겪고, 같은 노동환경에서 근무했던 이들의 질병과 죽음은 분명 개개인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가와 사회와 권력은 이 들의 질병과 죽음에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 이들은 특별히 약자이고 소수자인, 아주 약간 의 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수의 질병과 죽음에 무관심한 권력의 모습에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생명권력 작동 방식을 볼 수 있다.

 

미셸 푸코는 근대사회로의 전환 이후 국가는 인민에 대해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 는’, 이른바 생명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생명권력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지키는 위생권 력이다. 그러나 생명권력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이 아니라 인구 전체이다. 이 는 결국 생명권력이 인구 전체의 생명 활동을 약화시키는 소수에 대해서는 ‘죽게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은 전체를 위해 살게 할 자와 그럴 가치가 없는 자를 규정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일을 행하고, 인구의 건강과 생명활동을 유지, 증진한 다는 명분 아래 살게 할 가치가 없는 자들을 ‘정리’한다. 인간 개개인의 개별성을 지워버 리고 퍼센트, 혹은 하나의 덩어리쯤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한 연구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분들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료 자체가 없었던 것이지요.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연구가 절실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p.227

 

 

한국 사회의 약자들은 수많은 질병과 죽음 앞에 방치되어왔고,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은 ‘정상적’ 분포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 로 규정되어, 사회와 권력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들의 질병과 죽음은 관련 데이터조 차 거의 없을 정도로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고, 당연히 그 질병과 죽음의 진정한 원인에 대한 이야기 역시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생명권력의 작동 방식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까? 다수의 건강 을 위해서 소수를 희생하는 생명권력의 작동 방식을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생 명권력의 메커니즘을 유지한 채 살아가도 괜찮을까?

 

 

 

연결의 시대, 필요한 것은 연대의식


 

코로나19가 대유행 하는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해서 코로나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서 코로나바이러스를 마주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남이 건강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시야를 조금만 확장시켜보면, 코로나19의 위험에 직접적으로 놓여있는 사회 취약계층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코로나19는 특별히 약하고, 소수인, 생명권력에 의해 ‘죽게 내버려둬 진’ 사람들을 더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은 그들만의 아픔이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염병이 도사리는 사회에서, 그들의 아픔은 결국 사회 전체의 아픔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회의 취약 지점들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 연결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건강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제 그 깨달음을 확장시켜야 할 때다. 직접적으로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질병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아픔에 같이 공감하고, 그들이 아픔을 치유해 다시 잘 살아갈 수 있게 함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p.303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권력이 만들어낸 효율성의 늪에서 빠져나가야 하고, 자신은 언제나 평균적인 다수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다수의 사람이 건강한 사회보다, 건강할 수 없게 방치된 사람이 적은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던 사회의 질서를 성찰하고, 사회 전반에 녹아있던 편견과 차별을 없애려 노력할 때, 우리는 누군가가 사회의 생명권력 앞에서 죽거나 아프도록 방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이 사회 공동체를 믿고 구성원들과 연대할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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