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도서]

그 악(惡)의 근원은 과연 무엇인가.
글 입력 2020.12.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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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 포로들이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이는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접했던 역사지만, 다시 알수록 그 아픔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어떻게 인간이 같은 인간을 이렇게 잔혹하게 죽일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악(惡)의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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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신발 더미.

한 장의 사진에서 깊은 고통의 심연이 느껴진다.

 

 

이토록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집단 광기를 보였던 나치라는 조직은 과연 어떤 동력으로 움직였던 것일까. 나치에 속했던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희생자들을 무자비하게 죽일 수 있었던 걸까. 인간의 존엄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비극 속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나는 이에 관한 답을 얻고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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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 참석한 아이히만의 모습.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나치의 전범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이히만에 대한 전범 재판이 벌어졌을 때, 정치철학자로 잘 알려진 한나 아렌트는 그 재판에 참관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방문했다. 아렌트는 끔찍한 범죄를 자행했던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을 탐구하기를 원했고, 재판을 방청함으로써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의 근원을 밝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녀가 재판을 통해 보고 겪은 내용을 토대로 집필한 책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아이히만은 어떤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이전에 이 책을 읽었던 누군가가 아이히만은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고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와닿지 않았던 표현이 지금은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멋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왜곡된 믿음을 쌓아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순간에도 그 믿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어리석은 인물. 나치라는 집단에서 벗어났다면 일반적인 남성으로 보였을 인물.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권력계층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면 어떤 비극이 생겨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본문에서 아이히만은 말과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가진 인물로 나타난다. 아이히만은 생각보다 더욱 평범하며 불완전하고, 우습기까지 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무자비한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이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거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비해, 실제 현실에는 끔찍한 범죄에 걸맞은 사악함을 가진 인물만이 악행을 저지른다는 공식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치의 범죄 규모가 너무도 광대하기에 아이히만을 비롯한 전범들의 죄는 더욱더 무겁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다 소규모의 범죄에서도 아이히만처럼 악의 평범성을 가지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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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군대의 폐쇄성은 나치의 그것과 유사하다.

 


2014년, 우리나라 군대에서 선임 병사들이 후임 병사를 집단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윤 일병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 이전에도 숱한 가혹 행위가 이루어짐이 드러나면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다.


주요 가해자인 ‘이 병장’의 지시에 따라 네댓 명의 가해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적극적으로 범죄에 동조했던 모습은 홀로코스트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다. 나치 권력에 의해 국가적 차원의 악행이 자행되었던 것처럼, 상명하복의 군대 체계 안에서 가해자들은 ‘이 병장’의 반인륜적인 지시에 따랐기 때문이다.

 

‘이 병장’이라는 인물은 몇 가지 부분에서 아이히만과 닮아있는 인물이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이 병장이 평소 조용하고 평범한 성격이었다는 제보가 화제가 되었고, 그는 자신으로부터 도망간 아버지를 유명한 조폭으로 둔갑하여 군대 안에서 허풍을 부렸다. 자신만의 비논리적인 세계에 갇혀 즉흥적인 거짓을 지어내는 모습은 아이히만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런 치졸한 인물이 권력에 사로잡혀 특정 인물 혹은 집단에게 무자비한 차별과 폭행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 ‘악인’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생각보다 평범한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며 무리를 짓고, 집단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헤쳐나가며 진보하거나 퇴보한다. 아이히만이나 이 병장은 폐쇄적인 집단의 악마적인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었고,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지함을 보여주었다.


이 사례는 우리가 속한 집단의 권력이 차별과 폭력으로 향하게 된다면, 아이히만이나 이 병장과 같이 집단적 악행의 자양분이 되는 인물이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 우리 또한 이러한 악의 평범성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언제든지 함께 이야기하고 사고하며, 인간의 나약함을 넘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과 윤승주 일병의 명복을 빕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기를, 그들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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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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