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템플' - 성장통을 딛고 일어날 용기 [공연]

천재적인 동물학자가 된 자폐인의 이야기
글 입력 2020.12.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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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공연 정보를 얻기 위해 팔로우했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연극 <템플>이 정말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여름에 여러 뮤지컬을 봤기 때문에 연극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빼곡한 텍스트의 매력도 경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지방에 살고 있어서 코로나 19로 어수선한 시국에 수도권 공연을 보러 가기가 쉽지 않았고, 공연 기간이 일주일 정도뿐이라 일정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워 직접 관람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공연은 못 보겠구나, 하며 마음을 접던 때에 온라인 생중계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환호를 질렀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공연을 맞을 준비를 했다. 인터넷 연결을 점검하고 스피커 소리도 적당히 맞춘 후에 방의 전등도 껐다.


나의 방은 실제 공연장에 온 듯한 적막함을 유지했고, 나는 의자에 앉아 공연의 막이 오를 때까지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꼈다. 온라인 공연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잠시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고요함을 깨는 음악과 함께 컴퓨터 모니터 속에 ‘템플’이 등장했다.


 


#1. 이 이야기는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입니다



연극 <템플>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연극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배우가 극 속의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어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배우가 관객에게 “이것은 연극이고, 나는 배우다”라고 말하며 흥미를 자극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 ‘템플’의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는 자신이 한 자폐인과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나왔다면서 무대와 객석 사이 제4의 벽을 깨고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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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의 엄마는 이 연극이 ‘실제 템플 그랜딘 박사의 자서전을 참고해 만들어졌으며, 관객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이상하게 극화되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배우들은 물구나무를 섰다가, 누웠다가, 뛰면서 자유스러운 몸짓과 함께 정신없이 연기한다.

 

생소하면서 흥미로운 연출이었는데, 극을 전부 보고 난 후에 그 의도를 이해했다. 템플과 같은 자폐인들은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방대한 내면을 구축하기 때문에 이를 연극적인 문법으로 표현하고자 복잡한 안무와 동작을 활용하면서 관객에게 대사를 전달한 것이다.


또한, 연극 초반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배우들이 관객에게 핸드폰을 끄라고 말한다. 동시에 무대에 서 있는 주인공 템플이 긴장하면서 뛰어다닌다. 전화기에서 울리는 반복적인 소리가 자폐인의 신경발작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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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말을 건네며 공연 전 주의사항을 전하는 사람은 ‘배우’로서 존재하지만, 그 배우 옆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은 템플이라는 ‘등장인물’로서 존재한다. 한 무대 위에서 배우와 캐릭터가 함께하며 연극이 진행되는 것이다. 배우를 보면 심미적인 거리감이 생겼다가도, 그 옆에 있는 템플을 보면 그녀에게 몰입하게 된다. 마치 연극 속에 연극이 등장하는 듯한 구조다.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런 형식의 극을 ‘메타 연극’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극을 연출한 민준호 연출가도 <템플>의 형식에 관해서 확실히 말하기 어려웠는지, ‘신체연극’이라는 표현을 통해 작품의 정체성을 정의했다고 한다. 사실 연극에 관해 이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이 독특한 연극이 나에게 큰 충격과 흥미로움을 주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템플>의 도입부에서부터 묘한 기시감을 넘어 ‘이 연극 재밌겠는데?’와 같은 기대감을 느꼈다.


 


#2. 템플은 특별한 아이야



‘템플 그랜딘’, 그녀는 자폐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자폐인으로서 살아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폐인은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기에,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급급하기에 누군가가 “자폐인을 이해해달라”고 소리쳐도 잘 들리지 않는다.

 

하물며 템플이 살았던 20세기는 어떠했겠는가. 템플을 진단한 의사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냉장고 엄마(차갑고 냉정하다는 뜻)’라서 아이를 자폐인으로 키웠다고 주장했다. 부모에게서 받은 불쾌한 경험이 템플의 무의식에 고착되어 자폐증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배웠다는 이유로 우쭐대던 의사들은 템플 내면의 진실을 외면하고 그저 그녀의 외양을 뜯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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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의 어머니는 냉장고 엄마도, 아이의 아픔을 외면하는 양육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템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을 줄 아는 어른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병을 앓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고백하기를, 템플이란 소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아주 재밌는 최고의 동반자’였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어머니를 곁에 둔 템플은 주변의 오해와 차별을 딛고 자신의 세상을 넓혀 나갔다.


템플의 유년기가 한창 진행되는 극 중에서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는 잠시 모든 상황을 중지하고 관객을 향해 말을 건넨다. 자폐증은 병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중추 신경계의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생리학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말한다. “여러분, 2020년이에요.”

 

템플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만 그치지 않고 관객의 세상으로 퍼져나가기를 원하는 바람이 담긴 대사다. 또한, 2020년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 곁에도 존재하는 자폐 아동들에게 시선을 돌리라는 충고이자 직언이다.


세상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버틴 템플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향해 말한다.

 

“템플, 넌 특별한 아이야.”




#3. 템플에, 템플에 의한, 템플을 위한 교육



어머니는 템플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보살핌을 제공했지만, 세상은 그녀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템플은 좋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었으며, 때로는 매우 과격해지기도 했다. 학교의 친구들은 그녀를 놀려댔고 화를 참지 못한 템플은 그들에게 책을 던졌다. 결국, 템플은 퇴학을 당한다.


템플이 특별한 공부를 하길 원했던 어머니는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캠프로 그녀를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캠프에는 사춘기의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모여있었고, 템플은 그들로부터 오묘한 단어 하나를 배우게 된다. 바로 ‘젖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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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은 단어의 어감이 재밌다는 이유로 새로 배운 ‘젖탱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하지만 캠프의 선생님들은 그녀를 ‘성적으로 왜곡된 아이’로 여겼고, 요도염을 앓던 템플이 방문한 병원의 의사는 그녀를 성 애착증 환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템플이 어떤 아이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주변 어른들의 무관심은 템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템플의 어머니는 더 나은 장소를, 더 효과적인 교육의 길을 찾아다녔고 결국 ‘마운틴 컨트리’ 학교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템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훌륭한 교육자가 있었다. 헬렌 켈러에게 설리번 선생님이 있었듯이, 템플에게는 ‘칼락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템플이 어떤 아이인지 이해했고, 템플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려 했다.


템플은 추상적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구체화한 이미지로 지식을 습득했다. 예컨대, 템플에게 알파벳 ‘b’는 임신한 임산부의 모습으로 연상하여 떠올리는 개념이었다. 그녀는 모든 글자를 그림과 같은 정보로 받아들였으며, 이와 같은 과정을 사고하는 동안 긴 시간을 보냈다. 칼락 선생님은 이 모든 시간을 기다려 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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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템플이 사고하는 흐름을 비자폐인으로서 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극은 템플의 생각을 배우들의 몸짓으로 구체화한다. 배우들이 모여 몸을 이용해 알파벳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이 극에서는 ‘그림과 같이 개념을 습득한다’라는 말의 뜻을 신체를 이용한 연출로 표현해낸다.


연극 <템플>은 관객의 사고에 템플이라는 인물을 맞추면서 서사를 전개하지 않는다. 관객이 템플의 사고에 맞춰 생각하고, 템플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관객이 템플의 세계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적어도 이 연극을 관람하는 동안은 말이다.




#4. 천국의 문을 찾아서



템플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사히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러나 이 당시의 템플은 신경발작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는다. 이 극에서는 빨간 밧줄로 템플이 겪는 고통을 보여준다. 대사만으로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줄에 묶여 끌려다니는 템플의 신음과 혼란함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아픔의 과정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템플을 옥죄는 빨간 밧줄이 마치 그녀를 괴롭히는 신경 다발처럼 보였다. 자신의 내면과 싸우며 고독한 싸움을 했던 템플의 저항은 고귀한 전율이 되어 나에게로 전해졌다.


신경발작으로 불안에 떨던 템플이 이모네 농장에 방문한 어느 날, 그녀는 그곳에서 ‘압박기’를 보게 된다. 불안감을 느끼는 동물을 부드럽게 감싸 안정시키기 위한 기구였다.

 

템플은 바로 이 압박기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되리라고 직감했고, 압박기를 개조해서 사람이 들어갔을 때도 부드러운 압력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기계로 만들어낸다. 이로써 그녀는 신경발작이라는 또 하나의 벽을 극복할 수 있었고, 그녀가 고안한 ‘압박기’는 이후 사춘기를 겪는 다른 자폐인들에게도 훌륭한 도움이 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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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가 학교에 가지고 간 압박기는 교사들의 냉대 속에서 무시당하고, ‘괴상망측한 기구’라는 취급을 받으며 부서져 버린다. 실의에 빠진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된 것은 교회 목사님의 설교였다. 천국의 문을 찾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설교의 내용이었지만, 템플은 천국의 문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템플은 우연히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작은 나무문을 발견한다. 그 나무문은 템플에게 ‘천국의 문’으로서 인식되었고, 이는 템플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시각적 상징’이 되었다. 템플은 그 문이 자신을 환희와 평안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 매개체라 여겼다.


템플은 문을 통과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종의 영적 체험을 해낸다. 그리고 이 장면은 자신을 마주한 템플이 주변으로 눈을 돌려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감회가 담긴 졸업연설을 통해 연극 <템플>은 끝이 난다.


*


연극 <템플>에서 템플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관객들은 그녀가 이루는 놀라운 성과를 바라보며 그녀의 삶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나 또한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고, 공연 막바지에 이르러 템플의 졸업연설을 들을 때는 세차게 밀려오는 감동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연극이 시작된 초반에는 템플이라는 자폐인이 그저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폐’란 그녀를 대변하는 특징이 아니었다. 이를 깨닫고 난 후에 나는 단지 한 명의 인간으로서 템플을 마주했고, 그녀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내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온라인 공연에 회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공연예술은 현장에서 직접 관람해야만 그 본질을 체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나의 짧고 경솔한 생각에 불과했다. 온라인으로 <템플>을 보고 난 후 방에서 혼자 박수를 치던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온라인 공연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관극이 가능했다.

 

그러니, 공연 관람의 질적 차이는 어디에서 보느냐의 문제가 아닌 관객 스스로가 열의를 가지고 몰입하여 감상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을까?


<템플>은 처음 접한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었지만, 여러모로 만족스러웠기에 관극을 마치고 기분이 좋았다. ‘자폐인’이라는 사회적 소수자를 무대에 내세워 새로운 시각으로 공연을 보도록 구성했으며, 비자폐인 관객의 반성과 고찰의 순간을 이끌었다는 부분에서도 의미가 깊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극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비해 무대장치나 소품의 활용이 적어서 서사 전달의 측면에서 관객이 따라오기 벅찬 부분이 있다. 간혹 빠르게 지나가는 대사나 복잡한 동선으로만 정보를 전달할 때가 있는데, 관객이 극의 흐름을 놓칠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의 관점과 호흡에 맞추어 구성을 조정한다면 더 친절한 연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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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은 지금 미국 동물 시설의 3분의 2 이상을 설계한 훌륭한 동물학자가 되었지만, 이 연극에서는 그녀가 자신의 꿈과 미래를 향해 분투했던 성장기의 이야기만 다룬다. 그래서일까. 나는 연극 <템플>을 보고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나도 개인적인 진로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연극 속 템플이 겪던 성장통이 마치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템플이 내면의 고통과 맞서 싸웠듯이, 나도 기나긴 고민의 시간과 요동치는 감정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절실한 것은 이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템플이 자신의 문을 직접 찾아 나선 것처럼 모든 변화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지금의 나 또한 성장통을 딛고 일어나 세상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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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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