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이프'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 사람이 있다고? [시각예술]

초현실주의 예술가 르네 마그리트와 철학자 미셸 푸코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글 입력 2020.12.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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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é Magritte, Golconda, 1953. The Menil Collection, Houston © 2019. C. Herscovici / Artists Right Society, New York

 

 

혹시 이 그림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가?

 

이 작품은 바로 과거 벨기에의 초현실주의를 주도했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 혹은 <겨울비>이다. 한국에서도 워낙 인기 있는 작가인 만큼 꼭 이 그림이 아니더라도 다른 그림을 보았거나 그의 얘기를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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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정밀한 양식을 추구한 화가로 특유의 밝고 실험적인 화풍이 특징이며,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해 보는 사람에게 오싹함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그린 초현실주의의 대표 화가로 알려져 있다.

 

*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 - 실제 사건과 환상이 뒤섞인 글을 쓰는 방식. 문학 기법의 하나로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서사를 의미한다.

* 데페이즈망(dépaysement) - '전치' 기법이라고도 불리며 눈에 익은 사물을 비정상적인 문맥에 배치해 의도적으로 부자연스러운 화면을 만드는 것. 시인 로트레아몽(Comte de Lautreamont, 1846-70)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라는 어구가 이를 잘 표현한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몇 유명 예술가처럼 살아생전에 예술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생을 떠난 1967년, 즉 1960년대의 중후반에 대중문화가 출현하고 다양한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그의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피레네의 성>으로부터, 여전히 대중문화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밴드인 비틀스의 음반사 '애플 레코드'의 로고는 마그리트의 사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 외에도 미국 만화 '심슨 가족'의 한 에피소드,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등 음악, 미술, 영화 할 것 없이 그의 영향이 널리 퍼졌다.

 

오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반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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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é Magritte, La trahison des images (Ceci n'est pas une pipe), 1929. Oli on canvas

 

 

Ceci n'est pas une pipe.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분명히 파이프를 그려놓고 왜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는 걸까?"

잠시 생각해볼 동안 철학자 미셸 푸코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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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프랑스의 철학자로 정신의학에 흥미를 느끼고 그 이론과 임상을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저서 《광기의 역사》,《말과 사물》,《감시와 처벌》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통통 튀는 마그리트의 작품과는 달리 온통 딱딱한 언어로 소개된 그와 마그리트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정확히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마그리트와 푸코는 서로를 존경하는 사이였던 듯하다. 마그리트는 푸코의 《말과 사물》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며 푸코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으며, 푸코는 앞서 본 <이미지의 반역>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저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출간하였다(이 책은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살아생전 본인을 화가가 아닌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러주길 원했다는 기록도 있는 데다 실제로 그를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라고 칭하는 것을 보아 푸코가 그의 그림을 상세히 해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가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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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é Magritte, La trahison des images (Ceci n'est pas une pipe), 1929. Oli on canvas

 

 

Ceci n'est pas une pipe.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마그리트가 파이프를 그린 그림을 두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한 첫 번째 해석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앞에 말했듯이 이는 파이프를 그린 '그림'일 뿐이지 실제 파이프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정말 파이프가 아닐 가능성이다. 예를 들면 파이프를 닮은 초콜릿이라든지, 파이프 모양 피규어일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을까?

 

세 번째는 기호(글자)의 불완전성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 그려진 저 물건을 두고 '파이프'라고 부르고 쓴다. 그런데 이 규칙은 대체 누가 정한 것일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저를 '파이프', 프랑스에서는 'pipe [삐프]', 독일에서는 'pfeife [파이프(ㅓ)]'라고 한다. 이처럼 기호는 항상 가변적이기에 저 사물은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이미지와 문자의 연결이다. "ceci는 pipe가 아니다." 진짜 파이프는 우리의 관념 속에 있을 뿐이며 이는 바로 언어, 이미지, 세상의 한계이다. 실제로 불특정 다수에게 '파이프를 가져와!'라고 했을 때 각자 가져오는 파이프는 다 다를 것이다. 사물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이데아이며 실제 형상은 이데아의 모상일 뿐이라고 말했던 플라톤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섯 번째, 언어학적으로 접근하여 ceci는 une(a) pipe가 아니라 la(the) pipe일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처럼 다양한 미셸 푸코의 해석(실제 도서에는 더 자세하고 다양한 해석이 쓰여 있다)은 우리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 더 큰 재미와 충격을 주었다. 그 이전에 르네 마그리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미지의 반역>에서 나타난 이미지와 텍스트의 불일치로 그는 회화적 현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렇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작품의 또 다른 해석은 무엇인가?

 

 

참고 문헌

미술대사전(용어편), '데페이즈망'

501 위대한 화가, '르네 마그리트'

위키백과, '마술적 사실주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미셸 푸코'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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