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 남녀 사이의 우정의 실존 여부에 대하여 [TV/드라마]

글 입력 2020.12.1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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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어떤 관계로든 함께할 수 밖에 없다. 그 어떤 관계에 대한 경우의 수가 내 주변에는 친구와 연인이 있으며 둘 다 분명히 존재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나 동화 속 판타지가 아니라 내가 사는 실제 세상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우정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그들이 모두 연인 사이여야만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나에게 친구란 우정으로 묶여있는 사이고 연인은 사랑으로 묶여있는 사이다. 연인의 대다수는 결혼이라는 종착역에서 연인이라는 버스를 하차한다. 그렇게 부부가 된다. 한데 오래된 부부에게 물어보면 그들의 대다수는 정으로 함께 한다고 대답한다. 결국, 사랑의 끝은 우정인가 싶으나 사람들은 남녀 사이의 친구는 없다고 하니 최종적인 종착지가 어딘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랑과 우정


 

근본적으로 사랑과 우정이 어떤 면에서 다른지 아직 모르겠다. 지금 나와 인연이 끊어지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과 나를 묶어놓은 연결고리에 사랑이라고 써야 할지 우정 이라고 써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세상에 그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알고 싶다. 누군지도 알고 싶다. 그 사람에게 찾아가 나와 이 사람을 묶어놓은 고리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려달라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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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우와 렌은 서로를 진정한 친구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이 그들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도 친구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다가오면 질투를 느끼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서로를 찾는다. 어떤 이야기라도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가장 편한 사람도 서로다. 다수의 사람은 이런 관계를 친구보다는 연인으로 정의한다. 서로가 힘들 때 누구보다 먼저 생각나고,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함께 하고 싶으며, 서로에게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는 이런 관계를 연인에 가깝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소수에 해당한다. 나는 친구가 슬플 때 같이 슬픔을 느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친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는 이 사람을 힘들 게 만드는 그 사람에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질투심은 잘 모르겠다. 내가 느낀 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느꼈지만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 질투라는 녀석도 사랑과 우정만큼이나 복잡하다.


요우와 렌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던 이성과 만나면서 겪는 내면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충돌과 그에 대한 고민은 지나간 나의 시간이 나를 거울 앞에 세우는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껏 느꼈던 것들의 주마등을 보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우정이 무엇인지, 사람이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고 있다.

 

 


친구와 연인



이런 내가 친구와 연인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리자면 친구라는 건 연인으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지나야 할 중간 과정 같은 것이다. 무슨 개똥 같은 소리를 사람 말처럼 지껄이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나름의 정의라는 설명은 그런 의견에 대한 꽤 괜찮은 변명거리가 된다. 덧붙이자면 친구라는 관계는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이름이나 얼굴 정도만 알 거나, 혹은 몇 번 본 적 있는 사이에 비해서 연인으로 나아가기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서로가 함께했던 시간 만큼의 공통점과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ㄱ과 ㄴ이라는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요즘은 그 알아가는 과정에도 ‘썸’이니 ‘짝남’, ‘짝녀’니 하는 세부 단계까지 있는 모양이지만 간단하게 그 모든 과정을 아울러 ‘친구’라고 정의하자. 처음부터 서로에 대해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일도 있지만, 보통은 그런 떡이 굴러 들어오지 않기에 우선은 친구로서 지내야 한다.

 

그 시간 속에서 상대방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이성적인 선호는 어떤 것인지 등을 포함하여 상세한 것들의 기록을 쌓아간다. 그 길고도 멀며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성’이라는 단계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이다. 그 전에 멈춘다면 그 관계는 친구에 머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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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우와 렌은 관계는 이 단계의 문턱에서 발걸음을 멈춘 상태다. 이미 서로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자라나고 있음을 친구라는 관계로 보낸 시간 속에서 뼈가 저릴 만큼 느꼈으나 문 손잡이 잡고 열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아닌, 문 다 열어놓고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처지에 있는 게 요우와 렌이었다. 물론 그 한 걸음을 내딛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속이 불타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으나,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일단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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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 깊게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도 렌의 요우같은 친구가 한 명 있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본 것도 그 친구가 우리 보는 것 같다며 추천해 준 것이 계기였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내가 별다른 걱정 없이 힘든 일이나 내 약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다.

 

나에게 그 친구가 이러하듯 그 친구에게 나도 힘든 일을 털어놓기 편한 사람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작중에서 요우가 렌에게 했던 행동과 이 친구가 나에게 했던 행동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술에 취해 눈앞에서 운 적도 있었고 나를 베게 삼아 잠든 적도 있었고 애인에게 받았던 상처를 위로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렌과 요우의 관계와 나와 그 친구의 관계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성으로 보지 않고, 보지 않으려고 하며, 본 적도 없었다. 친구라는 관계에 뿌리를 내리고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성의 벽을 넘어 연인이라는 관계가 됐을 때 필연적으로 질투와 집착이라는 것이 따라온다.

 

나는 이 집착으로 인해 너무도 많은 상처를 받았고, 잃어버린 사람도 많았기에 그 집착이 무섭다. 질투에서 오는 피곤함도 진절머리가 난다. 서로를 챙겨주고 이해하되 질투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지금의 관계가 가장 알맞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우리 둘 사이에 투명한 유리 벽 정도를 세워 둔 지금에 만족한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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