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아침이면 사라지는 밤 사이의 공상들 [시각예술]

빛과 어둠 사이의 간극에 놓인 다양한 색들
글 입력 2020.12.0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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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에 빛은 긍정성을 내포하기에 선, 희망과 같은 좋은 것들을 상징하고 어둠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고난, 절망, 단절과 같은 부정적 소재로 차용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모두에게 언제나 그렇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때로는 빛과 어둠처럼 우리가 이미 학습한 개념들의 이분법적 위상이 흔들리며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오고는 한다. 개별적 경험의 특수성과 자의식이 맞물리며 단어의 통상적인 의미들이 상실되고 각 개념들의 존재성이 다시 창조 및 부여되는 것이다. 빛이 우리의 시야를 명징하게 해주고 어둠이 우리의 시각을 흐려버린다는 사고 역시 대다수가 익숙해졌을 뿐 모든 개인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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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제공되는 차와 요깃거리

 

 

Hotel Imaginary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전시는 기본적으로 독특하다. 여타의 전시 공간들과 달리 이 곳은 화이트 큐브적이지 않기에 월페이퍼가 부재하며 소통의 매개체는 오로지 목소리 뿐이다. 컨시어지 역할을 하는 기획자가 관람객들에게 사전에 선정한 시나리오나 서적의 내용을 들려주는데, 이번 「아침이면 사라지는 밤 동안의 공상들」에서 알게 된 대만 소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남자 주인공인 샤오쓰에게도 빛과 어둠의 통념적 이미지와 속성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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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쓰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그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망친 탓에 뜻하지 않게 야간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의 생활은 자연히 밤과 낮으로 나뉘었으며 그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야간학교에 들어간 이후 그의 눈은 갑작스러운 빛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대상들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일련의 빛과 낮의 시간들은 그에게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들을 서서히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둡지만 안전했던 그의 세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실제로 목격한 세계가 그동안 염원하며 마음 속으로 품어왔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그는 처절하게 고뇌하며 몸부림친다. 그는 끊임없이 무결함을 갈구하며 무너지고 있는 그의 세상에서 결코 변질되지 않을, 현실의 빛 따위가 절대 닿지 않을 유일한 세계를 찾으려 애쓴다.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한 소녀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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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자주인공인 샤오밍이다. 그녀는 인기가 매우 많은 화제의 인물로, 타인들이 만들어낸 자신에 관한 이미지와 항상 대치하며 그로 인해 떠나는 사람들을 속절없이 견뎌야만 했다. 그랬기에 그녀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본연의 모습을 존중해주는 사람을 원했다. 실제로 샤오쓰가 “평생 곁에 있어줄게”라 말했을 때 거짓말이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라 토로하며 “(너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한테 시간은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제목이 암시하는 비극은 남자주인공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데서 기인한다. 그는 계속해서 불안해하며 공포감과 분노의 감정에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 결국 소녀의 생명을 직접 빼앗고마는 결말을 맞이한다. 빛과 어둠 사이, 혹은 자신과 소녀로 표상되는 타자의 바운더리 사이에서 그의 세계가 점멸하였음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양극단에서 끝없이 분열하며 혼란을 야기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괴태의 색채론에 따르면 우리가 ‘본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 대립된 상태들 사이에 있게 된다고 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장소로 이동했을 때 감응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일정 시간이 필요하듯이 ‘보는 것’은 빛과 어둠의 양극단 안에서의 ‘간극'에서 발현하는 행위이며 필연적으로 그 사이에서 머물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동안 빛과 어둠 그 자체에만 매몰되어 그동안 그 사이에 있는 다양한 빛깔과 색들을 놓치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한 쪽에 치우친 힘든 상황과 직면하고 있다면 빛과 어둠은 매순간 공존하며 밤과 낮 또한 시간성을 갖기에 양극단이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순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용 전달이 끝난 뒤 기획자는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진다. 주관적인 의견을 묻는 질문들이므로 편안하게 답하면 된다. 기획자와 관람자가 서로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상이한 시선의 부딪힘에 동참할 수 있어 좋았다. 사실 나는 처음에 간추려진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는 소녀가 아직 10대이므로 자신에게 내재된 사춘기 특유의 불안정성을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풀어내고 있다 간주했다.

 

하지만 대화를 주고받아보니 나 또한 남자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려는 물리적 노력이 결여된 채 판단 오류를 범하는 Blindness 상태에 놓였을 뿐이었다. 요근래 타자성에 대해 특히 고민하고 있던 지라 이 정도일줄은 몰랐는데 나 역시 손전등이 비추는 부분만을 보는,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타자를 향한 시선의 영역이 한정적인 매우 연약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소설에 대한 교감을 끝마치면 황민규 작가의 개인전을 감상하게 된다. 솔직히 2개의 메인 영상작품은  별로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끌렸던 것은 밤과 낮의 사이에 있는 새벽 시간대를 나타내는 색상들을 오직 디지털로만 구현한 작품이었다. 인위적으로 조작 되었으니 자연에는 없는 색상들 임에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불안감이 완화되는 기분이라 신기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북유럽 여행 갔을 때 크루즈에서 마주한 석양의 색상과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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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작품사진 / 오른쪽: 석양이 지는 풍경

 

 

색채와 색에 대한 인상 또한 우리의 기억에 잔상으로 남는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빛-어둠, 행복-불행과 같은 무수히 많은 개념들의 양극단 사이의 간극에서 끝없이 유영할테지만 기왕이면 좋은 잔상들로 삶을 채워나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는 하루동안 감사할 점들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무사히 일행과 상당히 여운이 남는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꿀 들어간 홍차를 좋아한다는 스스로의 새로운 티(Tea) 취향을 발견한 것, 전시 제목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었던 것. 이러한 사소한 행복을 느끼게끔 하는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에는 밤에 이루어지는 공상이 아침에 적나라한 현실과 함께 덧없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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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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