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통해 얻는 공감과 위로 [도서]

글 입력 2020.12.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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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본 여자미술대학에서 유학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학교에 초청되어 온 한 예술가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순수미술을 하려고 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해요.” 그 예술가는 일본의 유명한 미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넘어가 그곳에서 작가로 데뷔하여 지금은 현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성공하기 위해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도 미뤄야 했고, 아이를 갖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당시 그 강연을 들을 때, 나는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었고, 아이를 가지는 것도 계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예술가의 말에 약간 반발심이 들었다. ‘당신은 작가가 되기 위해 당신의 삶을 희생했지만 나는 작가의 꿈도, 나의 삶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그 예술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결정을 할 때 나 혼자 멋대로 결정해 버릴 수가 없다는 의미이고,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실패하였을 때 그 실패의 과정과 결과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오로지 나 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내가 나의 ‘엄마의 가족’이었을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책임감과 부담감이 ‘내 가족’을 만들고 나니 나타나 나를 무겁게 누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책임감과 부담감에 완전히 짓눌려 항복해버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은 담담한 공감과 위로로 나에게 버팀목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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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느 날, 엄마의 권유로 육아 일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켠다. 하지만 육아 일기를 쓰는 것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너무나도 예뻐하는 그의 아이에 대한 일기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즐거운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딘가 불편하고 우울한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라 결혼한 여성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그 이유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호르몬과 신체 변화 때문일 수도, 가정을 위해 자기 삶의 일부분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일 수도, 자신이 선택하여 새로 만든 가족 구성원과의 불화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공주는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의 동화책을 읽고 자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온 결혼 생활은 동화책의 결말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분명 행복해야 할 결혼 생활인데 나는 왜 그렇지가 않지?

 

지금은 책 <82년생 김지영>이나 드라마<산후조리원>같이 여성의 결혼 생활에 대한 현실을 다룬 콘텐츠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 문제가 대두되기 전, 그러니까 5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한 여성 대부분이 느끼는 ‘행복하지만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받을만한 콘텐츠가 적었다.


어느 날 작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의 태양>이라는 그림을 보고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결혼 생활이 행복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 그림 속 아름다운 아침 햇살을 맞고 있지만 어딘가 쓸쓸하고 지쳐 보이는 여성에게서 투영되고 있었다.

 

작가는 자신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였듯이, 결혼 생활이 행복함과 환희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여성들에게 그 여성들이 그들의 감정을 떳떳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건네주고,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그림을 추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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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 Sun, 에드워드 호퍼, 1952년, 캔버스에 유채, 101.98 x 71.5 cm



나보다 약 20살이 더 많은 이 책의 저자가 결혼했을 때의 사회적 분위기와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이 공감되었고 이해가 되었다.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좌절이라니, 그것은 생각해본 적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왜 엄마들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현실의 맛과 모양은 겉모습만 화려한 케이크 같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결혼이란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행복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도 그렇다. 첫눈에 그림을 봤을 땐 아름다운 색채와 조형미만 보이지만 시간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그림이 담고 있는 것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라고 지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을 보면 동질감을 느끼고 때론 그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이처럼,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사실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은, 비슷한 처지의 그림을 보고,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닌 결혼 생활을 하는 여자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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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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