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9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 - 형식의 모방이 아닌 태도의 모방 [시각예술]

글 입력 2020.12.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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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미술사에서 변방국이었던 국가들은 제국주의의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자율적인 예술적 발화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배국을 통해 수용된 서구 미술의 판도를 따랐으며 이 경향은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받았다.

 

그러나 꽤 최근까지도 서구 미술을 수용하는 방식에 대한 논란이 존재했다. 바로 1993년도 휘트니 비엔날레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온 《19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을 둘러싼 논란이다. 과연 이 전시가 우리 미술계에 끼친 영향에 대해, 20세기 전반과 같은 맥락에서 서구 미술의 모방에 그쳤다고 볼 수 있는가?

 

본 글에서는 이 궁금증을 바탕으로 《1993 휘트니비엔날레서울》전에 대해 알아본 뒤 그 영향력을 탐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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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휘트니미술관이 개최한 《1993 휘트니 비엔날레》는 이민의 급증, 냉전체제의 붕괴, 인종 분열,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 등으로 ‘다문화주의’에 주목했던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경계선’이라는 주제를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성 소수자, 여성, 젊은 작가, 다인종의 작가들이 대거 포함되었으며 계급과 지배문화, 젠더, 인종 등의 사회적 이슈가 중심이 되었다. <조지 홀리데이의 로드니 킹 구타 비디오테이프>와 스파이크 리의 <말콤 X>는 흑인 인권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었으며, 로버트 고버의 <신문>은 신문 더미 가장 위의 면을 수정해 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풍자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서울로 옮겨오면서 운송비 문제와 우리나라의 당시 사회적 분위기 등을 고려해 일부 축소되기도 하였다. 낸 골딘이나 바바라 해머, 신디 셔먼 등의 작품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생략되었다. 그리고 운송 과정에서의 문제로 제외된 작품들도 있었다. 그러한 작품들은 운송과 설치가 보다 수월한 작품들로 대체되었다. (참고자료 - 김진아, 전지구화 시대의 전시 확산과 문화 번역 : 19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 2007, 현대미술학 논문집, 2007.12, 91-135(45pages), 현대미술학회 p,103)

 

또한 이 전시를 향해 몇몇은 사대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몇몇은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전시는 우리나라 미술계가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하나의 중대한 분기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은 점증하는 문화적 다원주의의 요청에 부응하고, 오늘날 미술이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그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를 검증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전시가 최근 미국미술의 한 동향을 소개함은 물론 현대사회와 문화에 대한 포괄적 이해 및 논의의 장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 서문 中, 1993
 

전시 서문이 말하고 있는, ‘이 전시가 촉발한 논의의 장’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들의 개별적인 작업부터 비평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측면에서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후의 기획전을 중심으로 이 전시의 영향력을 가늠한 한 연구는 여성 미술제 《팥쥐들의 행진》을 예로 든다.

 

이 행사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대형 전시로 이어질 수 있는 충분한 담론과 후원이 부족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김홍희, 김선희, 임정희, 오혜주, 백지숙 5인에 의해 1999년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 미술제이다. 제목 속 ‘팥쥐’란 가부장적 시각에서 주체 의식을 가지고 작업하는 여성 작가들이 팥쥐로 비친다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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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숙, 미친년 프로젝트_ 미친년들, 1999
 
 
이 행사는 작가 140여 명의 작품과 영화제, 퍼포먼스, 심포지엄 등이 포함된 최초의 대규모 여성 미술제였다. 1부 역사전은 신사임당 등의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 돌아보는 회고전으로, 2부 주제전은 당시의 동시대 현역 작가들의 전시로 이루어졌다. 이때 여성의 육체적 억압을 사진으로 표현한 박영숙의 <미친년들> 연작, 여성의 삶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집으로부터 탈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집을 탈주시키는 방법을 탐구한 함경아의 <현기증 가구> 등이 출품되었다. (참고자료 - 서영주,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에 관한 연구 - 1990년대 한국 미술계의 동시대성 수용을 중심으로, 2020,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이 시기에 등장한 여러 미술들은 형식이나 주제 면에서 30여 년이 흐른 현재의 동시대미술과 큰 차이가 없다. 1993 휘트니비엔날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평가되는 1995 광주비엔날레의 타이틀 “경계를 넘어”가 지난 2018년 광주비엔날레의 타이틀 “상상된 경계들”로 반복된다는 점에서도 이를 포괄적으로나마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현대미술이 일방적으로 우리 미술게에 끼쳤던 영향이 이토록 오랫동안 유효한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는 당시 우리나라 미술계가 미국 현대미술을 모델 삼아 행했던 모방은 ‘형식의 모방’이 아니라 ‘태도의 모방’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급진적인 사회 변화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가 본격적으로 마련됨에 따라 그러한 태도를 우리의 현주소에 유연히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저 서구의 앞선 형태를 답습했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모방이었으며, 모방보다는 적용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참고문헌
김진아, 전지구화 시대의 전시 확산과 문화 번역 : 19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 2007, 현대미술학 논문집, 2007.12, 91-135(45pages), 현대미술학회
서영주,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에 관한 연구 - 1990년대 한국 미술계의 동시대성 수용을 중심으로, 2020,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국립현대미술관, <19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 전시 서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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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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