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폴 세잔에게 배우는 삶의 태도 – 세잔과의 대화 [도서]

자연의 본질에 천착한 화가, 세잔
글 입력 2020.11.3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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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 교양 수업을 듣고 있다. 미술에 부쩍 관심이 생겨서 듣기 시작한 교양인데, 배우는 내용이 어렵고 생소함에도 퍽 흥미롭게 느껴진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 수업을 기다리는 낙으로 일주일을 살아갈 정도다. 집밖에도 별로 나가지 못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요즘, 나를 권태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단비 같은 시간이다.


어느 날 회화의 형식을 주제로 수업하던 중에 사과 정물화로 유명한 화가 세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독특한 구도를 확립하며 인상주의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폴 세잔과 그의 작품들에 담긴 끈질기고 심오한 예술 정신. 수업이 끝난 뒤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화가 세잔을 넘어 사람 세잔이 궁금해졌고 도서관에 가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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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과 유년 시절부터 친구였던 화가 에밀 졸라는 세잔을 ‘좌절한 천재’라고 불렀다. 아마 이는 세잔의 작품보다는 그의 성격적인 측면과 관련된 이야기로 보인다. 경계심이 많아 대인관계에서 소극적이며 동시에 괴팍할 만큼 예민한 기질을 가진 세잔은 주변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세잔의 미술은 고전주의의 정형화된 미적 표현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화를 추구한 인상주의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마네나 르누아르와 같은 여타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그의 그림은 초기에 평단으로부터 거센 외면을 받았다. 1877년 세 번째 인상주의 작품전에 작품을 내지만 첫 번째 전시회 때보다 더 큰 비난이 쏟아졌고 충격을 받은 세잔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후 점차 인상주의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회화 방식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자연을 원통과 공 그리고 원뿔로 본다면, 원근법 아래 놓인 모든 물체는 그것이 각 변이든 면이든 하나의 점으로 모이게 됩니다. 수평선에 평행한 선은 넓이를 나타냅니다. 자연의 한 단면, 다시 말해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아버지가 당신 눈앞에 펼쳐 놓은 광경을 보여주는 거지요. 반면 수직선은 깊이를 나타냅니다. 한데, 우리 인간에게 자연은 평면적이기보다는 입체적입니다. 빛의 진동을 느끼게 하는 붉은색이나 노란색에 공기를 느끼게 하는 푸르스름한 색을 더 많이 섞어 써야 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이지요.”


- 폴 세잔

 


비교적 단순한 색조를 사용한 보통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세잔은 사물의 본질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색조를 이용해 사물을 굴곡지게 표현했다. 그는 모든 사물이 공 모양과 원통 모양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평평하든 아니든 모든 물체는 고정된 시선이 받아들이는 빛들의 총량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화가가 받아들이는 빛의 광선은 어느 시점에서 물체의 표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각각 달라진다. 따라서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단일한 색을 칠해서는 대상을 자연에 가깝게 그려낼 수 없다고 보았다.


“사물을 보고, 색깔만으로 포착해내고, 그 색깔만으로 사물들을 구별해내는 화가의 눈이 필요하다”. 그는 관찰과 해석을 통해 대상의 정확한 빛깔을 규정한 다음, 단순히 색의 명암이 아니라 따뜻한 색에서 차가운 색에 이르기까지 여러 색조들을 배치해 빛과 그림자를 표현했다. 단일한 색조로 보이는 부분에도 실제로는 빛과 그림자로 인해 색조의 대립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는 미세한 색상의 점진적인 혼합을 통해 대상이 지닌 깊이감을 표현하는 데 집요하게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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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커튼과 과일 접시 그리고 물병이 있는 정물>, 캔버스에 유채,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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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캔버스에 유채, 1902~06.

 

 

사람들이 회화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세잔에게 있어서는 그저 그림에의 시도, 하나의 접근이었다. 예술가는 완벽한 예술작품으로서 자연을 쫓아야만 하며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 세잔은 오직 자연과 색채에 대한 극도의 사실주의를 충실하게 구현하고자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사물의 본질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가장 완전한 대상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을 정도로 그리고 또 그렸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중요한 것이 표면보다는 깊이라는 사실을 잘 몰라. 보게나. 사람들은 표면만을 변형시키고 꾸미고 치장하려 하지. 하지만 진실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깊이를 바꿀 수 있겠나. 진실을 찾으려는 순수한 욕구만이 자네를 사로잡을 수 있어. 시시콜콜한 것이나 상상하고 고안해내느니 차라리 그림을 땅 속에 파묻어 버리는 게 낫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앎일세.”

 

- 폴 세잔

 


끊임없이 본질에 천착하려 했던 그의 생애를 돌아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는 매우 여리고 감성적인 사람이었음에도 이성과 본능의 양극단을 조절하며 오로지 내적인 기준에 따라 진실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고자 했다.


위대한 예술가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얹는 건 굳이 연결점을 찾아보려는 것만 같아 어딘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도 세잔의 삶처럼 주변의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나 역시 이 예술가처럼 누구보다 주변의 영향을 쉽게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일, 자연을 온전하게 그리는 일에 일생을 바친 이 광적인 예술가의 이야기는 내게 경종을 울리는 것만 같다. 다시 중심을 잡고 살아가라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의 그림을 떠올려야겠다.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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