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지원군이자 동행자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도서]

시인이 엮은 시 114편
글 입력 2020.11.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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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을 가누기 힘든 순간을 맞기도 한다. 불안하고, 외롭고, 혼란스럽고, 버겁고, 모호하며 권태로울 때. 그리고 그런 날은 대개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온다.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술을 진탕 마신 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유 모를 외로움에 휩싸이기도 하고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낸 뒤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칠흑같은 불안이 찾아오기도 한다.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삶에 있어 불가피하지만, 필연적인 순간이며 그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질 뿐 아니라 다시금 삶을 열정적으로 영위할 동력을 얻으니 말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갈피를 잃은 그때를 보내는 방법이다.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그 순간에, 또다시 찾아올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무얼 하며 견뎌야 할까.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무얼 하면 괜찮아지는지, 무엇이 내게 힘을 주는지. 나를 덮칠 그 순간을 대비할 수 있도록.


저마다의 ‘무엇’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명상을, 누군가는 신께 기도를, 누군가는 깊은 잠을, 누군가는 친구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오랜 시간, 내 ‘무엇’은 활자였다. 내가 삶에 확신을 가질 수 없을 때 내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었던 건 활자였다. 일전에 썼던 글에서 습관화된 활자에 대한 의지는 죽고 싶은 나를 외려 살게 했다고, 쓰는 행위는 나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으며 삶에 대한 집착과 애착을 갖게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읽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

 

활자가 내 위안이었고 문학이 내 위안이었고 시가 내 위안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만큼 불안하고 외로웠던 수험생 시절, 문학 문제를 풀다 묵직한 울림을 갖는 시를 마주할 때면 그 깊이에 가슴이 벅차 감정을 고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운명처럼 느껴지는 시들은 필사하여 책상 앞에 붙여두고 통째로 외워버릴 때까지 곱씹곤 했다. 지금도, 침대 머리맡엔 시집을 두고 종종 잠들기 전에 한 두 편씩 읽곤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활자가, 문학이, 시가 나를 살게 했다.


한데,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라는 제목의 시집이라니. 제목을 읽은 그 찰나에 나는 이미 이 시집에 매료되었고 어떤 시집이기에 이와 같은 제목이 붙여졌을지 궁금해졌다.


한때 병마와 싸우며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던 엮은이이자 시인 나태주가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일으킨 시, 삶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던 국내 시 114편을 담았다고 한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_입체.jpg


 

‘결코, 이름난 거창한 시가 아닙니다. 목소리가 큰 시가 아닙니다. 대단한 내용을 담은 시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좋아했던 시들입니다. 많이는 조그만 시이고 더러는 이름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시인의 시들도 있습니다. 선배 시인들의 시이고 동년배 시인들의 시이고 후배 시인들의 시입니다.


그런 시들을 읽으면 다만 좋았습니다. 서럽고 고달픈 마음, 외로운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흔들리는 심사가 천천히 가라앉았습니다. 기쁨에 부푼 마음도 공손히 가라앉곤 했습니다. 시가 주는 덕성입니다. 힘이고 부드러운 손길입니다. 그런 시들은 나에게 약이 되어주었습니다. 마음의 약입니다. 영혼의 상처를 다스려주는 약이고 거친 마음을 달래주는 약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살리는 시를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늘어진 어깨를 일으켜주는 시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사람과 동행하는 시들입니다. 이 책에 모은 글들이 그렇습니다. 많이 힘들고 고달픈 날들, 나를 살리고 위로해 준 시들이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살려주고 일으켜주고 용기 또한 빌려줄 것으로 믿습니다.


한 시절, 나에게 와서 나를 살린 이 시들에게 머리를 조아려 간절히 주문합니다. 그들에게 가서 그들도 살려달라고.'


2020년 가을

나태주 씁니다.


*

 

위의 ‘시가 사람을 살립니다’ 라는 책머리를 읽고 눈가가 시큰해졌다. 여릿하게 흔들리던 지난 날, 작은 문장 하나에 힘을 얻고 새로운 날들을 소망했던 내가 떠올라서. 나 또한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이 삶으로부터 고통받을 때, 내가 보듬을 수 없는 그들의 아픔을 정확히 인식한 문학만은 헤아려주리라 믿으면서 날 위로했던 그것들을 권하곤 했기에 노장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114편의 시를 엮었을지 감히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코끝이 저려왔다.

 

문학은 우리 삶의 지원군이자 동행자이다. 실로 그렇다. 혹 시가 낯설기만 하다면, 나태주 시인의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를 통해 청춘을, 인생을 함께할 시 한 편을 만나보는 건 어떨지. 보이지 않는 그림을 눈으로 보는 듯하게 하고, 들리지 않는 음악을 귀로 듣는 듯하게 하는 문장 속의 단어들을, 조용한 웅변이자 훈계이자 삶의 이정표가 되어줄, 신이 주신 영혼의 울림이 있는 문장들을 말이다.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리뷰를 마친다.

 

 

사소한 것에서 원대한 것을 보았다. 하나의 발견이고 삶의 찬가, 기쁨이다.

 

p.227


 

시를 읽으면서 시의 내용을 모두 다 명확히 알 수는 없다. 시를 쓴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좋아하는 마음을 그 시에 가져다 대고 나의 마음속으로 그 시가 들어오기만 바랄 뿐이다.

 

p.233


 

좋은 시는 모름지기 좋은 영혼에서 나온 문장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세대에게 통한다. 구차한 설명 없이, 징검다리 없이 곧바로 가슴과 가슴을 연결한다.

 

p.249

 

 

'글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글과 사람이 동격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 매우 맵찬 말이다.

 

p.251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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