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미지로 세상을 말하다, 강홍구 작가의 예술적 시선 [시각예술]

글 입력 2020.11.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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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실만을 마주한 채 살아가는 걸까? 시각을 거쳐 눈앞에 자리한 진실은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아이러니함을 선사한다. 진짜라고 믿었던 게 사실은 가짜이거나, 가짜라고 믿었던 게 실제로는 진짜인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시각에 의존한 채 세상과 그에 따른 현상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는 그대로만을 믿을 수조차 없는 실정에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 그것은 곧 사회의 이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시각 매체인 사진은 그러한 경계의 실체를 명확히 담아내고 있다.

 

 

 

사진(寫眞)과 회화의 경계


 

강홍구작가.PNG

강홍구 작가의 회화

 

 

사진(寫眞)은 본래 ‘진실을 베끼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20세기, 사진 매체의 등장 이래로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생생하고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사진 이미지를 보며 사건의 진위를 판단하거나, 과거의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전환함으로써 그때의 감정을 다시금 현재로 불러들이곤 했다. 이처럼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리 잡은 사진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매개체 역할을 자처한다.

 

그러나 사진은 마냥 긍정적이고 순수한 감정만을 건네주진 못했다. 그것은 양면적인 태도를 띠며 세상에 또 다르게 공존해왔기 때문이다. 셔터가 가진 권력, 그 힘은 직접적인 파괴력을 지닌 총보다도 더 큰 파동을 일으키며 진실을 왜곡시켰다. 이와 같은 왜곡은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했고, 정치적인 이면에 존재하는 실상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으로써도 사용되었다. 즉, 사진에 부여된 한정적인 프레임 안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의도에 맞게 재배치해 그게 곧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것처럼 생산해내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사진은 순수한 목적을 가진 기록의 수단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폭력성을 띤 권력의 수단인 셈이다. 바로 이러한 양면적인 사진매체의 특성을 회화와 접목해 표현하는 강홍구 작가는 <녹색연구-서울-공터-선유도>를 통해 앞서 언급했던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대해 고찰하면서,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이미지의 진실성에 대해 질문한다.

 

 

 

녹색연구-서울-공터-선유도


 

강홍구작가.PNG

강홍구 <녹색연구-서울-공터-선유도> 2019

pigment print and acrylic on canvas

 

 

<녹색연구-서울-공터-선유도>는 작가의 특징적인 작품 경향을 섬세히 내다볼 수 있는 녹색연구 연작 중 하나이다. 강홍구 작가는 1990년대부터 디지털 풍경 사진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들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2009년부터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도시화와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동네의 모습을 기록해왔다. 그는 그때부터 현재까지 촬영한 사진을 캔버스 위에 흑백 출력한 후 아크릴로 색을 올려 그려내는, 특이한 제작방식을 채택해왔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회화사진’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작가의 작업에 있어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점은, 바로 작품 아랫바닥에 본인만의 필체로 적어놓은 문구라 할 수 있다. 이는 회화사진의 일부이자 작품 정보에 관련하여 간단한 설명을 적어놓은 것이다. 손글씨로 바닥에 적어놓은 설명 문구는 여느 전시장에서는 찾아보기에 힘든 작가만의 개성이자, 그의 연작에서도 드러나듯 현실적인 관심사와도 연관성이 있는 부분이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선사한다.

 

 

작품+글씨.PNG

작품 아랫바닥에 작가 본인의 필체로 적어놓은 문구

 

 

강홍구 작가의 주된 관심사는 서울 도시 안에 자리 잡은 버려지고 깎여진 공터들이며, 그는 그곳의 재개발과 매매현장에 특히 주목하여 정교하게 가려진 사회의 욕망과 보이지 않는 폭력의 흔적들을 촬영한다. 그런 뒤, 덮어내는 식의 물감 작업을 통해 진정한 주제성을 고착화한다.

 

한편, 흑백의 이미지를 아크릴 물감으로 덮어냄으로써 그림을 그려내는 식의 작가가 지닌 특유의 제스쳐는 두 가지 면을 상기하게끔 한다. 그중 하나는 디지털카메라의 등장 이후 사진 매체를 향한 고질적인 의심, 즉 보이는 대상 또는 기록된 사실에 대한 의심이며 또 다른 하나는 대상을 덮어버린 작가의 제스쳐(페인팅)로 인해 발생하는 언캐니(uncanny)함이다.

 

분할된 화면과 그 위에 덧입혀진 물감은 본래의 이미지를 가려버리고, 그렇게 가려진 이미지는 관람자들에게 능동적인 사고와 상상을 요청한다. 작가의 이러한 조작은 매끈한 듯 보이는 우리의 사회 역시 인공적인 조작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임을 은유한다. 본래 흑백이 아니었을, 그러나 의도적인 목적으로부터 흑백 출력된 이미지는 주변 또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장면들을 금세 낯설게 만들어버린다.

 

이후 그러한 무채색 화면과 그 안의 피사체들은 다시 작가의 손을 통해 본래의 색을 되찾고자 하지만, 이미 인공이 되어버렸기에 부자연스럽게 ‘자연스러움’을 취득하려 하는 모습으로써 비추어진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모를 생경함을 경험하도록 한다. 결국 사진 매체의 낯선 이면, 그런 양가적 특성을 결정짓는 건 작업의 전반에서 행해지는 붓질을 통한 회화작업이라 할 수 있다.

 

 

부분도.PNG

<녹색연구-서울-공터-선유도>의 부분도

 

 

이 작품을 언뜻 보면, 자연과 도시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을 마주하고 그것에 오롯이 집중하다 보면, 어딘가 모를 어색함과 겹침의 흔적이 화면의 구성상에 나타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쩌면 사진 여러 장을 어긋나게 이어 붙여 어색하게 한  모습은, 풍경화의 측면으로만 그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들을 위해 외관상에 부여한 작가 나름의 변혁인 듯하다. 더하여 화면상 나타난 흐르는 물감과 비교적 단순하게 그려진 풍선의 이미지는 회화적인 요소를 돋보이며, 정적인 이미지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 묘사돼있어 화면상의 재미를 부여한다.

 

나는 흑백 이미지와 그 위에 덧입혀진 물감과의 관계가, 마치 재개발 전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자연의 본질적 가치와 그곳을 재개발한 후에 나타난 인위적인 도시의 풍경을 비유하는, 작가만의 행위적인 예술 언어라 보았다. 물감을 덧바르는 그의 행위 자체는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폭력성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그가 겹겹이 쌓아 올린 붓질의 움직임은 자연을 걷어내는 굴착기의 동작과 동일시된다. 그러한 동작이 지속되면, 그전에 자리 잡았던 이미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로써 우리는 회화적 움직임을 통해 재개발의 현장성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다.

 

 

작가.PNG

강홍구 작가

 

 

한편, 그는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이면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동시에 현대인들로 하여금 자각의 메시지를 일깨워준다. 작가가 주목한 건, 현대인들이 주목하지 않은 변방의 풍경과 그곳의 사건이다. 유동 인구가 많고 건물이 들어선 도시가 주류라면, 재개발의 순간에 놓인 공터는 그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비주류인 셈이다.

 

더군다나 새로이 개발 중인 장소는 공사 관계자들의 출입만 허가하는 경우도 대다수이기에 접근이 제한되고, 그로 인해 관심 밖으로 내팽개쳐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 공터는 자그마하게 묘사된 도시와 공존하지만, 붐비는 그곳과 달리 적적함과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는데, 바로 그러한 비주류의 공간에 작가가 눈을 돌린 것이다. 도시의 활성화, 이익과 결부되는 개발 사업의 추진을 통해 자연의 공간은 일률적으로 제작된 기계로부터 심하게 훼손되면서 점차 본연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자연스러운 질서를 무질서하게 뒤바꾸어버린 개발의 현장은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까지도 어느 곳에서나 현재진행형인 모습이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인 동시에, 언젠가는 관심 가져야 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인들로 하여금 인간의 터전과 관련한 일말의 자각성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주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홍구 작가의 작품은, 예술의 사회적인 역할이 보다 명쾌하게 회화의 목적의식에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그러한 목적의식에 맞게 캔버스를 구성하는 재료와 화면의 효과를 만들어냄으로써, 흑백으로 인화된 현실의 이미지에 물감을 통한 가상의 이미지를 구축해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두 매체가 모두 공존함으로써 회화사진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작업은, 사실상 회화 또는 사진이라 명확히 구분되지 못한 채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머물게 된다.

 

 

 

아이러니한 진실을 말하다 : 이미지의 탁월한 사용법



녹색연구.PNG

지난 5월,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이렇게, 작가는 재개발과 도시 현장의 경계를 회화사진에 담으며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자각하게끔 한다. 그의 작품을 직관적으로 마주하면 진실한 이미지인 듯 보이나, 사실 그 실체는 수많은 거짓의 행위가 덧대어져 본래의 가치를 상실한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그러한 경계에 속해있다. 본연의 모습인 현실과 문명의 발달을 위해 인위적으로 생산된 가상, 그것은 곧 진실과 거짓으로도 환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세상은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공간적 특성을 지녔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의지해야 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는 더 이상 개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부패하고 타락된 모습만 선전하며 가치 있는 진실함을 감추어버린다. 작가가 회화와 사진을 겹쳐 보임으로써 이미지의 진실성에 대해 반문했듯,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고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세상과 세계가 지니는 총체적인 이미지에 대한 진실성에 다시금 질문을 제기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아이러니한 진실’을 수없이 마주한다.

 

여러 매스컴과 매체는 자신들이 보여주는 게 곧 진실이라 강조하지만, 매체의 취약함을 여러 번 느껴온 대중들은 더 이상 사회가 주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미지는 점차 진실성을 잃어가고, 취약점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현상은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주는 파급력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입증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강홍구 작가가 깊은 고찰을 거친 녹색연구 연작으로부터, 결국은 이미지의 파급력과 그에 대한 올바른 방법론을 우리 사회에 시사해주고자 했던 게 아닐까? 진실 혹은 거짓, 즉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이미지의 판별법과 활용에 따라 디스토피아 혹은 유토피아로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부정적인 측면이 아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으로써 이미지를 사용한다면, 이익만을 추구해 거짓과 폭력성이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사회에게서 벗어나 비로소 유토피아에 가까운 우리들의 삶의 공간을 형성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작가 기본정보 : 원앤제이 갤러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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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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