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페이지 명동에서의 - 오디어 위켄드: 명동 [문화 공간]

외곽에서 쏩니다.
글 입력 2020.11.2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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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발길을 끊은 지는 꽤 오래였다. 어릴 적엔 매년 성탄절 즈음이 되면 가족들과 연례행사처럼 명동성당에 방문하여 아기 예수 구유에 인사를 드리고 명동교자에서 국수를 먹곤 했지만, 머리가 좀 크면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가지 않았다. 한때는 종종 친구들과 명동에서 약속을 잡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와 일본어가 쏟아지는 거리가 낯설게 느껴져 자연스레 그곳과 멀어졌던 것 같다.

 

오래전 내 기억 속 명동은 늘 그렇게 화려했고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몇 년 만에 다시 내디딘 명동거리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모르는 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걸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던 거리는 한산함을 넘어 스산했고 정말 많은 상점들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니 그 광경이 실로 참담하여 내내 마음이 불편할 정도였다.


몇 년 만에 명동을 방문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꼭 보고 싶은 전시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페이지 명동의 3층에서 열리고 있는 오디어 위켄드 Ohdear week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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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번 전시를 통해 페이지 명동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근사한 공간을 새로이 알게 되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인데, 브랜드의 가치관부터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는 물론, 공간이 갖는 멋스러움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페이지 명동은, 명동성당 바로 앞에 위치한,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된 한국YWCA연합회관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해 재탄생한 곳이다. 한때 명동은 예술, 패션, 뷰티, 살롱 문화의 성지였고 지식인들의 담론과 민주화 운동이 펼쳐졌던 곳이다. 페이지 명동의 운영진들은 당시 명동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세대와 연결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으며 그렇게 역사를 간직한 장소와 공간에서 새롭게 태어나 사람들이 함께 머무르고 쉴 수 있는 커뮤니티 타운을 꿈꾼다고 한다.


현재는 영업 전 프로젝트로 <페이지 공백기>라는 프로젝트를 열고 있다. ‘Analog connection’이라는 키워드 하에 사람, 사회, 연결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준비된 프로젝트이다. 코로나로 인해 예상치 못한 공백기를 보내고 있는 공연, 전시, 마켓 분야 사업자들에게 상업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며, 코로나 시대에 오프라인 공간의 색다른 활용법을 고민하며 언택트 라이프를 실험하는 안전하고 느슨한 페스티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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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어 위켄드: 명동>은 앞서 소개한 <페이지 공백기>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전시 중 하나이다. 본 전시는 “외곽에서 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하는 창작 집단 오디어(Ohdear)의 기획인데, 오디어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스튜디오/작가의 느슨한 모임이다. 서로가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모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고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 기존과 다른 캐릭터를 창조하고, 협업을 통하여 작업의 폭을 넓히며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한다고 말한다.


명동에서의 이번 전시가 이들의 처음은 아니다. 지난 9월, 의정부에서 18개의 팀이 첫 합동 전시를 가졌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인해 주말에만 운영하는 그 전시를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비교적 가까운 명동에서 무려 한 달간 오디어의 전시가 개최된다고 하니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2주 전에 방문했다. 사실, 오디어의 전시를 향한 급한 마음 덕에 바로 3층으로 직행한 나머지, 페이지 명동의 공간을 구석구석 세심히 살펴보진 못했다.

 

하지만, 전시공간의 큰 창을 넘어 쏟아지는 가을 온광과 작품들에 맺히는 그림자 그리고 창밖으로 드러나는 명동성당의 자태만으로도 공간에 감동받기엔 충분했다. 본래 전시라는 것 자체가 장소와 공간의 영향을 크게 받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건축, 그리고 그 안에 공간이 있기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며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조화로이 내뿜는 분위기 안에서 전시를 이해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예술의전당, 국립 현대 미술관과 같은 굵직한 미술관들의 전시보단 이런 전시에 보다 애착이 간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는 관점은 아니다. 그저 대중의 문턱을 낮추려 바지런이 노력하지만, 정작 대다수의 미술인들에겐 참여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공식적인 주최 기관 없이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하고 준비한 행사가 조금 더 애착이 간다는 뜻이다.

 

법칙화 되어 있지 않은 디스플레이, 공식화되지 않은 동선 등 보다 개성 있고 자유로운 공간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대형 주최사들 전시의 웅장한 오라가 아닌, 아틀리에스러운, 잔잔하게 손 때 묻은 애정과 열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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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얘기를 빼먹을 뻔했는데, 이번 전시엔 첫 전시보다 더 많은, 디자이너와 공예가 46팀이 참여했다. 리빙 제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흔히 보던 공예, 가구 제품들이 아니다. 다양한 제조 방법과 재료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각 스튜디오만의 성격을 온전히 표현했다. 새삼 재료의 한계엔 끝이 없음을 깨닫는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물질을 탐구해가는 젊은 작가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공예를 이끌어나가는 사람들 아닐지.

 

덧붙여, 모든 작품은 현장 구매도 가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생 신분인 내게 그만큼의 여유는 없기에 그래픽 스튜디오인 코우너스의 2021년 벽 달력을 하나 구매하고 품에 안은 채, 왠지 모를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섰다.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이번 전시를 여러분들도 한 번쯤 눈여겨보길 바라지만, 격상된 거리 두기와 악화된 상황으로 인해 맘 편히 권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침체된 명동거리도, 새롭게 태어나는 페이지 명동의 공간도 활력을 찾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모든 사진은 직접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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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dear Weekend : Myeong dong]

 

기간: 10/29 ~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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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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