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흥의 현재성, '팔도보부상' [공연]

흥? 그냥 느끼면 돼!
글 입력 2020.11.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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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악과 편견


 

사실 나는 국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국악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초~중학교 당시의 희미한 기억이 전부다. 선비가 갓을 쓰고 XX 삼거리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이미지, 장구로 두들기던 ‘덩기덕쿵더러러’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다른 음악은 좋아해도 국악과 판소리는 쉽게 좋아하지 못했다. 장르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익숙하지도 않아 ‘즐긴다’, ‘좋다’라는 판단을 쉽게 내릴 수도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당장 내 주변에서도 국악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친구들은 보기 힘들다. 국악 포털 아리랑의 ‘2016 국악 인지도 및 선호도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타 음악 장르 대비 국악에 대한 관심도의 응답은 ‘조금 있다(25.3%)’, ‘매우 적다(19.1%)’로 나타났다. 실제 국악을 접하는 빈도도 낮았다. TV 국악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국악방송 이용 빈도에는 ‘가끔 애용한다(26.2%)’, ‘한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24%)’로 나타났다.


급격히 대중화된 서양음악에 의해 국악은 대중들과 점점 멀어졌다. 그런데도 국악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이었다. 국악 하면 떠오르는 느낌에 대해 사람들은 ‘자랑스럽다(42.7%)’, ‘흥겹고 신난다(53.3%)’, ‘애잔하고 슬프다(40.9%)’, 라고 응답했다. 국악은 분명 매력적인 장르지만, 대중적 취향과의 괴리감으로 낯설고 어렵다는 편견이 생겼다. 나 또한 국악에 대해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다.

 

 

 

2. 2020년, 보부상즈의 이야기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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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국악 문외한인 내가 '팔도보부상’이라는 공연에 초대받았다.

 

평소 접하지 않던 국악 공연이어서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공연장을 향했다. 리플렛의 설명을 읽어보니 경기소리꾼 ‘여성룡’과 강령탈춤 이수자 ‘박인선’으로 구성된 ‘보부상즈’의 공연이었다. 팔도보부상은 팔도를 다니는 보따리 상인이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명창 ‘박춘재’의 가락을 재해석한 공연이었다. 보따리 안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음악과 춤, 연기와 함께하는 보따리꾼의 장사였다.


공연 시작 전,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 약간의 스터디를 했다. 공연의 박춘재(朴春載, 1881년~1948년)는 조선 시대 경기속요 명창으로, 고종의 재위 기간 궁내부 가무별감을 지냈다. 임금의 좌우에서 가무를 담당해 위로하는 일을 하였다니, 당시의 명성이 얼마나 높았을지 예상되는 부분이었다. 박춘재 명창의 잡가(조선 후기부터 번창한 시조)와 재담(재치 있는 말과 이야기)은 일제강점기 시절 음반에 남아 기록됐다. 유튜브에는 그의 기록이 업로드되어 실제로 들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짧은 자료조사만을 통해 국악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국악은 여전히 어려웠고, 명창의 유튜브 재담은 집중하기 어려웠다. ‘팔도보부상’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 의문과 두려움만 생긴 채로 공연장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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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두려움이나 편견은 공연의 시작과 함께 단번에 사라졌다.

 

공연은 '룡'과 '선'의 익살맞은 사투리 연기로 시작했다. 붉은 수트를 입은 젊은 보부상 ‘룡’과 ‘선’은 보따리를 걸치고 걸어왔고, 형식적인 출연자 소개도 없이 보부상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극 도중 웃음을 참지 못하는 해프닝 또한 무대의 묘미였다. 꽁트와 농담으로 채워진 ‘팔도보부상’은 국악에 대한 편견을 지우기 충분했다.


무대의 연주자들도 전통악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무대에는 북, 장구, 대금 등과 같은 악기가 아닌 건반, 기타, 퍼커션이 있었다. 현대 악기 세션은 전통적인 국악부터 재즈, 발라드까지 구현하며 장르를 넘나들었다. 이러한 무대 구성을 통해 ‘재즈에 판소리가 가능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한 장르 전환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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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없는 춤과 노래는 없어”


 

‘팔도보부상’의 소리는 이야기였다. ‘룡’과 ‘선’은 춤, 노래, 연기는 결국 이야기 위에서 벌어진다고 말했다. 박춘재 명창의 재담은 죽은 개의 넋두리를 담은 ‘개넋두리’, 각양각색의 장사꾼들을 묘사한 ‘각색장사치’ 등이 전승되었는데, ‘팔도보부상’에서는 이 이야기들을 현대적으로 다시 풀어냈다.


100년 전의 ‘각색장사치’는 무배추장사, 개장수, 엿장수 할머니 등의 이야기를 소리로 담아냈는데, 2020년의 ‘각색장사치’는 중고가전제품 트럭, 계란장수, 꽃장수 등의 이야기를 재즈 반주로 담아냈다. ‘개넋두리’ 또한 집지키던 마당의 개가 아닌, 귀한 대접을 받는 2020년의 반려견의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팔도보부상’은 이야기의 현대화였다. 보부상즈는 장르를 오가며 박춘재 명창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익살맞은 꽁트를 통해 국악의 이야기를 읊었고, 익숙한 반주 아래 판소리를 자연스럽게 선보였다. 어느새 웃고 박수 치며 즐기는 나의 모습을 보며 100년이 지나도 국악의 흥이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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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하자!”


 

‘팔도보부상’의 마지막에는 현대적으로 해석한 국악이 아닌, ‘룡’과 ‘선’이 진짜 하고 싶었던 국악을 선보였다.

 

장사라는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춤과 노래를 선보인 보따리꾼들은 노을이 지는 시간에서야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목놓아 노래 불렀다. ‘룡’은 직접 장구를 치며 소리를 뽑고, ‘선’은 이에 맞춰 탈춤을 췄다. ‘팔도보부상’에서 이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건 이런 음악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공연 전, ‘2020년에도 국악은 유효한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팔도보부상’에서 여성룡과 박인선이 보여준 무대는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국악이 과거에 머물러있다고, 길고 지루하다고 즐길 수 없는 게 아니었다. 국악이 전달하는 본질적인 감정, 흥과 구슬픔은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국악소녀 송소희, 밴드 이날치와 같은 음악가들은 국악을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다.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재해석된 국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팔도보부상’ 또한 국악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고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연극이다.

 

새롭게 다가오는 국악에 편견 없이 다가간다면 진정한 ‘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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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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