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티고네의 정의와 선택 - 영화 안티고네

글 입력 2020.11.14 17: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차포스터-릴리즈용.jpg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rologue.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다 우연히 마주쳤던 강렬한 트레일러 영상이 있었다. ‘나는 언제든 법을 다시 어길 거예요’라고 말하는 소녀의 얼굴에는 강한 열망이 서려 있었고 그와 함께 하는 친구들은 열렬하게 안티고네라는 아이를 지지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안티고네가 맞다면 무슨 사연으로 이 아이는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 그가 정의라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영화에 대한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던 때를 기억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시사회에 다녀왔다.

 

 

SYNOPSIS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

 

캐나다 몬트리올,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안티고네에게 비극이 벌어진다. 두 오빠 중 하나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하나는 그 자리에서 구속된 것.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안티고네는 오빠 대신 감옥에 들어가고, 용기 있는 그의 행동에 대중들은 안티고네를 SNS 영웅으로 만들기 시작하는데...


 

1.jpg

 

 

『안티고네』는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로 국내 상륙, 전 객석 매진과 더불어 박수갈채를 받아내며 큰 화제를 모은 영화로,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안티고네가 오빠 대신 감옥에 들어가면서 일약 SNS 영웅이 되는 이야기. 영화 『안티고네』가 개봉을 11월 19일로 확정한 가운데, 영화를 연출한 소피 데라스페 감독과 원톱 주연을 맡은 나에마 리치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셀린 시아마 감독, 『작은 아씨들』의 그레타 거윅 감독에 이어 등장한 여성 감독 소피 데라스페는 고대 그리스 희곡 ‘안티고네’를 각색, 2500년 전 이야기를 21세기에 접목하여 현대의 난민 가족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안티고네』는 소피 데라스페 감독이 연출은 물론, 각색과 촬영까지 모두 직접 진행하며 천재 감독의 면모를 한껏 발휘한 작품이다.

 

시대를 뛰어넘은 이 걸작의 타이틀롤을 맡은 나에마 리치는 연기 경력이 거의 없는 신인 배우이지만, 타고난 재능과 캐릭터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21세기의 안티고네를 완벽하게 재현, 평단과 관객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탁월한 연출력을 지닌 천재 감독과 연기 천재 배우가 만나 부산국제영화제를 울린 『안티고네』는 11월 19일 관객들을 찾아간다.

 

 

 

신화 속 안티고네, 난민으로 재탄생하다


 

먼저, 안티고네는 우리에게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의 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내이자 왕비인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생모라는 것을 알고 두 눈을 뽑아버린 후 가시밭길을 방랑할 때 아버지의 옆을 지켰다. 또한 전쟁터에서 오빠 폴리네이케스가 역적이 되어 왕 크레온이 매장을 금지하였을 때에도 장례를 치러주다 사형을 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안티(anti-)라는 접두사는 어떤 것에 반하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그의 행동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의에 맞섰다는 것으로 보았을 때 이름에서도 그 성격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뿐 아니라 여러 이야기로 각색되었으나, 최근에는 영화 ‘안티고네’가 고대의 안티고네를 새로운 변주로 풀어내어 이목을 끌고 있다. 아마도 안티고네 서사에서 새로운 역사이자 중요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극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공유해보려 한다.

 

 

aa31_348_rel_i1.jpg
안티고네 인물 관계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위 그림은 고대 신화 속 안티고네의 인물 관계도이다.

 

이스메네, 에테오클레스, 폴리네이케스가 모두 손위 형제로 등장하지만 신화에서는 각각 여동생, 오빠였으며 남자친구 하이몬과는 약혼관계, 젊은 오이디푸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은 외할아버지 메노이케우스는 할머니로 그려졌다.

 

영화로 각색되며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극 중에서 이들은 어쨌든 다시 한 가족으로 만나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고 있다.

 

다만, 난민일 뿐이다.

 

 

4.jpg

 

 

이들은 이민 1세대로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안티고네는 떠나온 곳에서의 시간보다 캐나다에서 거주한 시간이 훨씬 많음에도 자신의 뿌리가 고향에 있음을 잊지 않고, 아니 잊지 못하고 산다.

 

안티고네에게는 고향이 가족이자 집이며 안식처이기 때문에 단순히 장소의 의미를 넘어서서 자기 정체성의 일부이다. 학교에서 자신이 이민자 출신임을 주제로 발표하는 것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만큼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하지도 않는다.

 

오빠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폴리네이케스가 감옥에 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가족이 그에게 분명한 안식처의 역할을 해주었고 그 역시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다.


 

 

정의를 찾아, 감옥으로


 

21세기에 재탄생한 안티고네에게도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이번 생의 안티고네는 오빠 대신 감옥에 가기로 결정했다. 가장 막내이자 미성년자인 그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누구에게도 의외였다.

 

그러나 그녀를 대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스스로를 구원하기로 결심한 안티고네는 거침없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서 완벽히 혐오와 성적 대상화의 표적이 되었다. 이민자 혐오와 여성 혐오, 온갖 모욕이 인터넷을 통해 그녀에게로 날아들었다.

 

 

9.jpg

 

 

하지만 남자친구 하이몬과 국선 변호사와 함께 이를 선동의 기회로 바꾸어버린다. 인터넷 상의 현대화된 처형 방식을 프레임을 바꾸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운동(movement)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한순간에 프레이밍이 바뀐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운동과 시위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고, 민주화의 정도가 매우 낮은 아랍,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SNS를 통해 시위가 확산되는 지금-이것은 안티고네에게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기회였다.

 

오빠가 이민자라는 이유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과 형의 죽음에 항의하다 감옥에 간 동생의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부당한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안티고네가 법정에서 말한 ‘심장이 시켰다’라는 발언은 상징적인 phrase가 되어 운동을 확산시켰고, 하이몬의 도움도 이에 큰 역할을 했다. 현대판 안티고네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안티고네에 대한 비난은 일순간 화해와 정의로운 물결로 밀려나간 듯했다. 갱의 조직단으로, 완전무결하지 않은 오빠의 탈옥을 돕는 결정을 한다는 것은 미성년자 여성으로서 보기 드문 캐릭터였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이해심과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안티고네의 ‘가족애’, ‘부정에 대한 항의’, ‘이민자 혐오 반대’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가장 큰 움직임을 불러왔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어린 여성이 어떤 의지로 자신의 상황을 견디고 있는 것일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언행은 굳건했고 당당했다. 오빠의 일이 인도주의적 이해가 필요할뿐더러 명백히 부당한 사건임을 목놓아 외쳤다.

 

 

8.jpg

 

 

이건 가족의 일이라고요. 오빠가 갱(gang)이건 아니건 나에겐 지켜야 할 가족이 있어요, 시민권이 있는 당신들은 모르는, 그 춥고 괴로운 감옥이 있는 고향으로 ‘추방’당하고 싶지 않아요.

 

- 극 중 안티고네의 대사

 

 

누군가에게는 맹목적인 편들기로 보이겠지만 그에게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것이 곧 부정에 대한 항의였던 것이다.

 

무지한 감싸기에 불과했다면 어떤 동생도 감옥에 대신 가는 수모를 견디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만약 탈옥을 도왔더라도 유죄를 받아들이며 순순히 실형을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안티고네의 언행은 종교를 벗어나 어떤 수행자처럼 보였으며 신성한 희생 정신으로까지 느껴졌다.

 

 

20대 초반에 ‘안티고네’ 비극을 처음 읽었고, 권력도 돈도 없지만 자신의 신념과 가족을 지켜내는 강인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영화 감독이 된 이후 뉴스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한 청년의 이야기를 접하고 ‘안티고네’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 감독의 말 중

 

 


비극으로 치닫는 가족애


 

그러나 끝내 가족은 안티고네의 발목을 붙잡는다. 경찰의 눈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 간 폴리네이케스가 어이없게도 술집에서 체포된 것이다. 안티고네는 무너진다. 앞으로 나아갈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고 이전의 무수한 노력들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비극 ‘안티고네’는 또 다시 비극적 결말을 목전에 두고 가족들은 흩어짐을 맞이한다. 언니는 차별받더라도 최소한의 기본권은 보장되는 캐나다에서의 삶을 지속하려 하고 할머니와 오빠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안티고네 역시 캐나다를 떠난다. 마침내 부모를 잃었던 과거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미래, 타지에서 커다란 희생을 치렀음에도 결과는 비참할 뿐인 현실에 안티고네의 눈은 텅 비어버린다.

 

 

5.jpg

 

 

안티고네는 왜 이렇게까지 가족에게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일까?

 

이에 관한 어떠한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도 그녀의 행동을 이끌지는 않았다.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오빠의 탈옥을 돕고 대중의 비난을 견디며 감옥 살이를 대신할 정도로 희생적인 인간상은 적잖이 사회적 흐름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이몬의 아버지에게 후견 받을 수 있는 괜찮은 선택지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결말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소수 집단의 개인이 차별받는 상황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이토록 확고한 신념의 근거가 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화에서부터 이미 설정된 인물값 자체가 희생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민자의 입장이자 공주의 입장이었을 때 안티고네는 어디서도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재의 안티고네도 다른 가족들이 있었지만 보통 보호받는 입장인 막내가 나선 것을 보면 고난의 상황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깨어있는 매우 영민한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이런 설정값을 제외하고서라도 가족을 지키는 것이 매우 앞선 정의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가족의 부정(不正)이 있더라도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그들의 생사와 안전이 보장된 후의 문제이다. 어쩌면 이는 가족 해체, 개인주의 심화를 경험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한 번쯤 돌이켜봐야 할 이슈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에게 가족은 가장 기초적이고 초기적인 사회 집단 단위라는 의미를 넘어 개인의 완전한 자립 후에도 어떤 의미를 주는 존재인지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더 나아가 조금은 진부하지만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에게 사회적 폭력이 어떻게 현대화되었는지도 보여준다.

 

*

 

안티고네라는 신화 속 인물을 현대적으로 엮어, 희생과 저항, 가족애라는 이야기를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 ‘안티고네’를 극장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각자에게 다가가는 감동의 형태는 모두 다르겠지만, 관객들의 공감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이슈들이 많이 거론되고 의견이 공유되길 기대해본다.

 


[차소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