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짜' 난민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진짜로 있는데요. - 아라베스크

이방인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눈빛들
글 입력 2020.11.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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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베스크무늬.jpg

 

 

아라베스크는 이슬람교 사원의 벽면 장식이나 공예품의 장식에서 볼 수 있는 아라비아 무늬를 말한다.

 

식물의 줄기와 잎의 모양에 기하학적인 모티프를 융합하여 교차된 곡선을 만드는, 이슬람 문화의 독특한 무늬이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이슬람교의 특성에 따라, 신의 형상을 만들지 않는 대신 매우 정교하고 정형화된 양식을 통해 신을 찬미한다.


연극 <아라베스크>의 마흐무드는 아라베스크 무늬를 통해 상징된다. 국내에서 생소한 아라베스크 무늬처럼 난민 신분의 예멘 출신 마흐무드와 국내 최고의 관광지 제주 공항은 서로 생경한 모습이다. 극의 중심 역할인 제주 출입국 사무소의 사무관은 마흐무드의 난민 신청 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며 다각도에서 마흐무드와 그의 진술을 곱씹는다.


극은 지난 2018년, 500여 명의 예맨 난민이 제주도에 도착해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2018년은 4.3사건 70주년을 기념해 ‘제주 방문의 해’로 선정이 되었다. 이로 인해 제주행 비행기 값이 무척 저렴해졌고 더불어 이슬람권에서 한국이 난민에게 우호적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이슬람권 난민들이 대거 입국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극 중의 마흐무드는 그 난민 중 한 명으로, 난민 심사를 받기 위해 열댓 장의 서류를 제출하고 질문에 대한 진술을 해보여야 한다.

 

 

아라베스크2.jpg

 

 

당시 우리나라는 난민에 대한 대응을 적극적으로 행한 적이 없어 인적 자원이 부족했다.

 

수많은 난민들을 극소수의 심사관이 심사하고, 그 과정에서 특수어 통역관의 배정 또한 쉽지 않았다. 설사 수백 명의 신청자 중 한두 명이 난민 지위를 취득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행정적 지원 정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제대로 된 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당신은 왜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라는 사무관의 물음에 마흐무드는 ‘전쟁’을 강조한다. 폭격 상황을 설명하며 그곳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마흐무드는 심사에 유리한 쪽으로 거짓 진술을 하고, 이를 보좌관에게 들켜 난처한 모습을 보인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7).jpg

 

 
“내가 더 비참해지는 것을 바라는 겁니까?”
 
 
‘내 양심은 사실을 말하라 하고 내 두려움을 책략을 말하라 한다.’
 

 

거짓 진술을 폭로한 보좌관에게 마흐무드는 내가 얼마나 더 비참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냐며 언쟁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결코 이기적이지만은 않다. 전쟁이라는 개인으로서 불가항력적인 재난 상황에 자신과 가족들의 기본권을 최소한으로라도 보장받을 수 있는 일말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난민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진짜로 있는데요?"

 

“진짜 난민이 뭐냐고 묻는데요? 자기는 진짜로 있다고 여기에.“

 

“난민이 인정되면 그때 난민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마흐무드를 통해 불과 2년 전 우리나라의 난민이 서로에게 어떤 고민의 형태였는지 살펴볼 수 있다. 마흐무드, 사무관, 보좌관, 통역관. 이방인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눈빛들이 무대 위를 오간다. 네 인물 중 누구에게 공감하느냐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시각이 다채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아라베스크>를 공연하는 극단 ‘놀땅’은 이러한 다양한 해석에 대해 정직한 마음으로 임하기 위해 차별, 난민에 관한 독서 토론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폭 깊은 작품만이 가지는 성숙한 매력을 지닌 <아라베스크>는 우리 사회 속 다양성 있는 이야기를 담으며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사유를 선사했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선돌)_포스터(최종).jpg

 

 
++
 
"우리는 상대를 다 알 수 없어요. 단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지요."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면 왠지 모르게 마음에 호기심이 생길 때도 있고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 온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땅에는 선이 없다. 인간의 관념이 역사 속에서 228개국의 경계를 그었을 뿐이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그 이름 모를 외국인과 내가 완전히 타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이방인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마음에 그어진 경계선을 넘을 수 있을까.
 
- 작품 기획 노트 中

 

 

류현지_에디터.jpg

 

 

[류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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