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판타지보다 믿기 힘든 현실 [영화]

글 입력 2020.11.1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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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다시 보게 된 과거의 영화가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깊은 여운을 선사할 때가 있다.

 

최근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다시 보았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한 번도 끝까지 본 적이 없는 영화였던지라 '이번에는 한 번 끝까지 보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채널을 몇 번이고 돌려가며 꾸역꾸역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의 포스터, 그리고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당연히 일반적인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소녀가 세 개의 열쇠를 손에 쥐고 판의 미로를 탈출하는 영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본 영화의 실상은 상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양상을 취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꽤 잔인했고 그 잔인함이 등장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괴로웠고 그래서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니, 제목은 장대한 판타지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면서 왜 그 안에는 서로 죽고 죽이는 피 터지는 전쟁이 들어있단 말이냐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집중해서 영화를 보다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면 어김없이 화면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한 장면들이 많아서 솔직히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라고 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한번, 본 영화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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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은 오필리아. 오필리아는 만삭의 어머니와 함께 시민군과 정부군이 격렬하게 대치하는 숲속 기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새아버지 비달 대위는 잔혹하고 냉정한 정부군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무서운 전쟁터에서 사는 것이 두려웠던 오필리아는 어느 날, 판을 만나게 되며 자신이 지하 왕국의 공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필리아는 판의 말을 따라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하고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하는데..., 과연 오필리아는 무사히 지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본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오필리아가 세 가지 임무를 끝마치고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의 구성은 단순히 오필리아의 임무 수행기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사실 본 영화는 시민군과 정부군 사이의 대치를 보여주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나마 본 영화를 판타지 영화라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판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통해서인데, 이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영화의 제목을 잘못 지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북받쳤다.


따라서 이번, 다시 본 영화를 보며 곰곰 생각해보았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다시 말해서 있는 그대로의 정보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무던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자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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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의 주인공 오필리아가 처한 환경은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 같은 현실이었다. 그 참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어린 오필리아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평소 동화책을 즐겨 읽던 오필리아에게 상상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대책이 바로 '지하 왕국'이었고 살기 위한 오필리아의 투쟁은 곧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임무가 된 것이다. 오필리아에게 판은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존재였기에 그가 요구하는 임무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서라도 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냈던 어린 오필리아의 처절한 생존기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가 빌린 판타지라는 장르는 단지 어린이가 겪어내는 전쟁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려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궁극적으로 본 영화는 판타지의 탈을 쓴 전쟁 영화였던 것이다.


영화란, 직접적인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때 빛이 나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관객들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생명력이 긴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지하 왕국을 현명하게 다스리고 있을 오필리아를 지금도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지하 왕국의 통치자는 한동안은 오필리아가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에디터 명함_김규리.jpg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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