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Matter of Space (공간의 문제) [영화]

<결혼 이야기>
글 입력 2020.11.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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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사랑 없이도 행복해야 연인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는 입장과 서로 사랑 없이 못살 정도여야 연인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는 입장. 고백하자면 나의 본능은 후자다. 맞다, 험난했다. 나에게 사랑은 언제나 공간을 점유하는 과정이었다. 그 싸움은 나와 상대방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했지만 나와 나의 싸움이기도 했다. 나를 상대방에게 다 내어주려는 나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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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연인관계를 지속하면서 내 공간을 지키는 일은 어렵다. 권력의 낙차는 긴장을 만들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희생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썸이니 밀당이니 애를 쓰지만, 연애 시작일 뿐, 연애가 지속될 수록 본인이 스스로 구축한 세계가 얼마나 공고한지가 당락을 결정한다.


결혼 이야기를 보니 관계 땅따먹기가 나만의 싸움은 아닌 듯하다.


결혼 이야기는 노아 바움백 감독, 스칼렛 요한슨, 애덤 드라이버 주연의 코미디 류 영화다. 이 작품은 뻔뻔스럽게도 넷플릭스 ‘코미디’ 카테고리에 있다. 결혼 이야기라는 제목, 코미디 카테고리와 달리 따뜻하고 로맨틱한 장면은 영화 시작 8분 만에 끝난다. 2시간 10분짜리 영화의 초반 8분만 사랑스러운 걸 보니 영화 자체가 결혼의 메타포라 해도 무방하겠다.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LA에서 나고 자란 배우다. 니콜은 영화가 히트쳐 스타 반열에 오르기 직전 뉴욕 예술씬에서 주목받는 연출가 ‘찰리’(애덤 드라이버)를 만나 뉴욕에서 같이 지내며 찰리와 함께 아방가르드 연극을 만들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영화는 아이 ‘헨리’가 이미 8살이고 둘이 이혼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결혼 이야기는 니콜과 찰리가 이혼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혼 과정이 진행되며 원만하게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던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이혼 후 어디에 살 것인가가 표면적인 갈등으로 떠오른다. 니콜은 할리우드 배우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고향 LA에서, 찰리는 가족 같은 극단이 있는 뉴욕에서 살고 싶어 한다. 니콜은 결혼 생활 내내 LA에서 살고 싶었으나 찰리가 외면했다고 주장하고, 찰리는 가족이 의심할 바 없는 뉴욕 베이스 패밀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뉴욕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니콜이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는 변호사 ‘노라’(로라 던)를 고용하고, 노라를 통해 지금껏 결혼생활에서 하지 못했던 자기주장을 분명히 하면서 찰리는 곤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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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공간(Space)이다. LA와 뉴욕을 비교하면서 뜬금없을 정도로 “LA는 공간이 많지.”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LA는 공간이 넓으니 좋다는 대사를 고향이자 일터인 LA를 자신의 세계라고 표현한 니콜의 대사에 빗대본다.


뉴욕에서 아방가르드 연극을 하고 자신의 극단을 운영하던 찰리가 니콜에게 얼마나 새롭고 경이로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나에게 없는 무언가를 상대방에게서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마더, 파더 이슈가 배우자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흔하다. 외모나 돈처럼 정량적으로 드러나는 요소뿐 아니라 자기 확신, 자존감, 자신감, 자기 효능감을 파트너에게서 찾기도 한다.

 

내가 인정하는 파트너가 나를 인정하는 순간만큼 인정욕구가 채워지는 순간이 있을까? 그런 사람을 만나는 순간 모든 게 들어맞는 것 같은 기분을 안다. 나와 닮았지만 ‘더 확신에 찬 버전의 나’인 상대방과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면 대화 자체보다도 비로소 내가 완성된 느낌에 충만감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뉴욕에 도착해서 다시 LA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니콜은 “간단히 말하긴 어려워요. 사랑이 식었다고 하면 차라리 간단하죠.”라고 시작하며 로라에게 결혼 생활을 설명한다. 니콜과 찰리 사이에는 니콜의 확신 없음, 찰리의 확신에 찬 면모, 아들 헨리, 극단, 성취, 소득, 가족과 같은 복잡하고 측정하기 어려운 삶의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니콜의 말에 따르면 둘 사이에서 니콜은 항상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역할, 찰리를 위해 맞추는 역할이었다. 찰리의 연출이 주목받으며 극단의 배우인 자신이 점점 작아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작은 물건, 쓸데없는 물건, 큰 물건 할 거 없이 집에 있는 가구까지 전부 찰리의 취향이었다고 말한다. 찰리가 만약 “오늘 뭐 할래?”라며 자신의 의견을 물었다면 어색했을 거라 말한다. 니콜은 자신의 공간을 지키지 못했고, 더 늦기 전에 지키기 위해 이혼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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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내가 살아난 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 줬던 거죠. 그래도 찰리는 똑똑하고 독창적이라서… 괜찮았었어요. 난 집에서 따로 그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남들은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그의 작업에 대해 얘기하죠. 한동안은 그거면 족하다고 느꼈고 우쭐했었어요. 찰리 같은 사람이 내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내 의견을 중시해 줘서요."

 


로라는 니콜이 지금은 힘들겠지만 “더 나은 인생을 원하”는 “희망찬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니콜을 북돋아 준다. 니콜은 공간이 충분치 않은 뉴욕에서 공간이 충분한 LA로 거처를 옮기며 자기주장의 첫걸음을 뗀다. LA에서 사람들은 니콜의 의견을 묻고, 니콜의 능력을 칭찬한다. 찰리가 좀처럼 내주지 않았던 연출권도 얻어낸다. 이후 니콜의 시점에서 찰리의 시점으로 영화가 넘어가며 우리는 곤란해진 찰리를 본다. 찰리가 곤란해질수록 니콜이 자신의 공간을 구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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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은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고 찰리와 이혼 분쟁하는 과정에서 찰리와 자신 사이에 스스로 선을 긋는다. 연출가 찰리가 규정해주는 배우 니콜의 경계가 아닌 니콜이 정한 경계다. 영화 후반, 그 경계를 주체적으로 넓히고 좁혀가며 배우, 작가, 연출, 워킹맘, 새로운 관계에 도전하는 니콜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니콜이 깊이 의지하는 결혼을 했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하며 그 관계를 깨고 나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하는 시간을 견뎠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결혼 이야기를 이혼 이야기라 부른다. 어떤 글은 결혼 이야기가 사랑의 양면성을 다룬 이야기라고도 한다. 모든 해석에 더해 난 결혼 이야기가 성장 드라마라 말하겠다. 이혼까지가 결혼이다. 성장까지가 사랑이다. 결혼 이야기는 사랑이 끝나며 두 세계가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했던 역사 덕분에 한 세계가 넓어지는 이야기다.

 

 

[유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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