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를 위한 절망인가 - 글로리아를 위하여 Gloria Mundi

글 입력 2020.11.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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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의 기준은 무척 다채롭다. 플롯이 흥미진진해서, 때로는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해서, 혹은 연출이 감성적이어서.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완성되는 것이 영화이기에 좋음을 판별하는 기준 역시 복합적이다. 그리고 결국 관람자가 영화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서도 해석도 수만가지로 달라진다. 무엇보다 영화는 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의 책갈피임과 동시에 지극히 사소한 감정과 사고가 깃든 개인의 이야기다. 아주 거대한 세계를 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작은 개인의 삶을 기본 단위로 삼는 아이러니한 특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판단된다.


그런 점에서 영화 <글로리아를 위하여Gloria Mundi>는 시대적으로는 좋은 영화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편한 영화였다. 영화는 20년 수감 생활 후 출소한 다니엘이 갓 태어난 손녀 글로리아와 가족들과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생활고에 직면한 글로리아의 가족을 중심으로 사회의 부조리한 민낯을 샅샅이 드러내면서 이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단, 제목부터 아이를 위한다고 하기에 세 세대를 위한 어른들의 성숙하고 배려 있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시궁창에 빠져버린 것처럼 힘겹고 잔인한 삶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분명 이런 내용을 담아내는 것은 시대를 돌아보게 만들어 의미 있다. 어쩌면 이게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들여다 보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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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의 민낯을 가감없이 고발하는 영화


 

영화에는 세 세대가 나온다. 수감 생활을 거치고 출소한 다니엘, 그를 전 남편으로 둔 실비, 실비의 현 남편인 리차드와, 그 아래 세대로는 실비와 다니엘의 딸인 마틸다와 실비와 리차드의 딸인 오로라, 그리고 각각 마틸다와 오로라의 남편인 니콜라스와 브루노가 있다. 그리고 이 가족의 삶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버린 갓 태어난 마틸다의 아기 글로리아까지. 가족이라는 한 이름 아래 있음에도 경제 상황과 개인적 가치관까지 너무도 다른 이들의 모습은 첫 씬에서부터 부각되며 이어질 갈등을 암시한다.


마틸다와 니콜라스는 아기 글로리아가 태어나고 경제적 불안이 심화됐기에 일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우버 운전을 하던 니콜라스는 갱단에게 차를 뺏기고 팔이 부러져 실직했으며, 마틸다는 의류 매장에서 인턴으로 일하지만 깐깐한 상사로 인해 힘들어한다. 이를 도와주려는 실비와 리차드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때 출소한 다니엘은 힘겨워하는 이들의 곁을 멀찍이 지켜주며 아기 글로리아를 대신 봐준다.

 

이 가족들 중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아가는 이는 마틸다의 동생 오로라와 그의 남편 브루노다. 중고 물품을 리셀링해 판매하는데 그 방식이 건강하진 않다. 고용 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저임금으로 직원들을 굴리며,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을 공략해 말도 안될 정도로 저가에 물건을 넘겨받는다. 오로라의 언니인 마틸다는 동생의 남편인 브루노와 은밀하게 바람피며 자신을 2호점의 매니저로 지정해달라 조른다.


동생 오로라와 그의 남편 브루노가 새로이 2호점을 연 데서 갈등은 극으로 향한다. 브루노가 자신을 매니저 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오픈 파티에 참석한 마틸다는 배신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동생 오로라에게 그녀의 남편과 바람핀 사실을 폭로한다. 한편 브루노를 찾아간 마틸다의 남편 니콜라스는 자신의 아내와 브루노가 잤다는 사실을 듣고 그의 머리를 내려쳐 죽이고 만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다니엘은 조용히 말한다. 어차피 다 늙은 자신이 감옥에 다시 들어가 희생하겠다고.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관객의 숨통을 조이던 갈등 상황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영화가 보여주는 프랑스 내 계급과 세대간 갈등, 부의 불평등 문제는 국경을 넘어 어느 나라를 대입하더라도 극히 공감할만한 주제다. 영화에는 이 시대가 맞이한 문제 상황이 빼곡히 담겨 있다. 이민자 문제, 인종 및 종교 차별, 고용 불안, 택시와 우버 기사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구 시스템과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새로운 시스템 사이의 갈등, 파업 문제, 심지어는 첫째 마틸다와 둘째 오로라를 통해 나타나는 - 부모의 유년기 시절 차별 대우에 의한 갈등 등 가족 문제까지 사회의 모든 아픔이 빼곡하다. 영화는 부조리한 사회상을 깊고 예리하게 재단하며 이를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으로 소름 돋게 엮어놓은 점에서 참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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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를 위한 길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현실의 아픔을 집합해 시사성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대체 글로리아를 위하여 어른들은 무엇을 하는가? 양육을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글로리아를 향한 배려가 미미한 점이 아쉬웠다. 아이를 위한 정서적인 서포트나 개인의 노력과 헌신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경제적인 어려움에만 집중해 아이를 마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짐덩이' 정도로 느껴지게 만든다. 제목이 <글로리아를 위해서>이며 이야기의 시작점도 글로리아의 탄생인 만큼 그 세대를 조금 더 존중했으면 좋지 않았을지.


특히 각종 사회 문제를 잘 짚어낸다는 점에서는 탁월하나, 결국 파국의 정점을 찍는 것은 정작 사회 구조적 불합리함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와 의지 부족으로 인한 것처럼 연출된 점이 불편했다. Elle에서 이 영화를 두고 “역경에 맞서는 인간의 가치를 담은 놀라운 영화”라고 평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어려웠다. 니콜라스가 브루노를 죽이고 다니엘이 대신 감옥에 들어간 이유를 짚자면 바람과 섹스가 문제였으니까. 영화는 비도덕적인 관계성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회가 부조리하고 삶이 힘겹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지만 플롯과 연출을 통해 이토록 불편한 감각을 이끌어내는 것 역시 감독의 능력을 반증한다는 생각도 든다.


거대한 사회적 문제 아래 한 개인의 노력은 압살되고 무의미하며, 오직 도덕과 윤리를 배제한 최소한의 삶을 이어가기에만 급급하다. 글로리아를 위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착찹한 마음과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게 된 영화였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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