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 대 소년·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 영화에서 풋풋한 로맨스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블리스’ 역시 롤러 더비 경기가 끝난 후 뒤풀이 파티에서 인디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는 ‘올리버’를 만난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좋은 관계로 발전하지만 ‘올리버’의 투어 일정 때문에 잠시 떨어져 있게 된다. 그동안 ‘블리스’는 우연히 그가 투어 중에 다른 여자와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보통의 하이틴 영화, 혹은 성장 영화라면 이 갈등을 극복하고 더 단단한 관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겠지만, ‘위핏’은 다르다. 부모와 심하게 싸워 결국 집을 나온데다, 친한 친구는 전화도 받지 않을 때. 그 무엇보다 자신을 지지해 줄 누군가가 절실했던 그 때, '올리버'는 '블리스'의 곁에 없었다. 하지만 '블리스’는 이것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 롤러 더비 경기를 찾아온 ‘올리버’에게 ‘너 한 번도 전화 안 했잖아. 나라면 했을 거야.’라며 덤덤하게 이별을 고하는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 홀가분해 보인다.
‘블리스’의 가장 친한 친구 ‘패시’는 처음부터 그가 롤러 더비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응원한다. 그러나 ‘올리버’를 찾느라 ‘블리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패시’는 늦은 밤 술이 든 컵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고 이후로 둘의 관계는 급격하게 나빠진다. ‘패시’가 ‘블리스'에게 화가 난 까닭을 꼭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 ‘패시’보다 롤러 더비 팀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롤러 더비로 만난 남자친구에 빠져 경찰에 체포된 자신에게는 밤새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던 것, 따지고 보면 이전과 달라진 ‘블리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분노의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블리스’는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고, ‘패시’는 결국 그를 용서한다. 롤러 더비로 인해 변화된 ‘블리스’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된 것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틴에이저 무비, 하이틴 무비에서 대부분의 경우 주제는 친구와의 갈등, 혹은 첫사랑이나 남자친구이다. 물론 그런 영화가 잘못되었다거나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위핏’은 여성인 주인공이 자신에게 강요되는 전통적 성 역할을 거부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다양한 인종, 외모, 성 정체성을 가진 롤러 더비 단원들을 통해 이 영화가 서로 다른 모습들의 여성을 섬세하게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인 ‘메기’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거친 롤러 더비 경기를 이끄는 주장이다. 그는 부모의 시선에서 ‘블리스'에게 따끔한 조언을 건네고, 이것은 ‘블리스’가 '브룩'과 화해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영화는 ‘메기’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메기’가 두 역할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보여주거나,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암시를 주지도 않는다. ‘저런 애들이 나중에 직업은 가질 수 있겠니? 가정은?’이라고 말했던 ‘브룩'을 통해 사회가 여성을 가두려 하는 틀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던 영화는 ‘메기’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것을 뒤집는다. 그는 여성이 직업 혹은 자신의 욕망과 엄마의 역할 둘 중 하나를 고를 필요가 없다는 것, 또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해서 부모로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멋진 애인과 주인공을 응원해주는 친구, 즐거운 학교생활을 기대한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블리스'에게 있어 원하는 롤러 더비를 계속하게 되고, 나를 상처 주는 사람을 떠나 진정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는 것은 그 무엇보다 행복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 ‘행복’이 사회가 규정한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블리스’가 겪는 성장통은 우리 모두에게 한 번씩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입히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씁쓸한 이별을 맞이하기도 한다. 영화 속 ‘블리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픔을 이겨내고 자신의 고민으로 결정을 내린다. 비록 길고 험난할지라도, 내 힘으로 만들어 간 길 끝에서 ‘블리스’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다. 그 일련의 과정이 비단 십 대뿐만 아니라 인생의 어린 날을 지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