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낙태죄'는 어떤 생명도 존중하지 않는다

글 입력 2020.11.0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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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성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법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헌법 불합치 결정이란 법률의 위헌성은 인정하나 폐지 시 법률의 공백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여 새로운 개정안이 마련될 때까지 법의 효력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낙태죄’의 경우 헌재의 판단에 의하여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한까지 약 2개월 정도 남은 지금, 정부는 임신 14주까지만 자유로운 낙태를 허용하고 임신 15~24주에는 특정 사유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는 개정안을 제안하며 낙태죄의 존속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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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의 명분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나온다. 작년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엔 침해의 최소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최소성의 원칙이란 어떤 법률에 동반되는 기본권의 제한이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해 적절한 것일지라도 필요한 선에서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법리에 따르면 ‘낙태죄’ 존속의 정당성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입법목적에서 나오며, 이를 위한 ‘낙태죄’의 존재는 적절하나 그것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는 정도가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위헌성이 인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한국의 사법 체계는 태아의 생명권과 ‘낙태죄’로 인해 침해받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낙태죄’ 논의에서 이 두 가지 개념을 상호 대립하는 관계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가 제시한 주수 제한 조건은 일정 기간 이상의 태아는 생명권을 가지며 이 경우에 해당하는 임신중절을 제한하는 것은 필요한 기본권 침해라는 법리적 판단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일관되게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한국의 법체계에는 모순이 있다. 임부를 폭행하여 태아를 유산시킨 경우 낙태의 고의가 없다면 태아에 대한 ‘낙태죄’는 성립하지 않으며 임부에 대한 폭행죄만이 성립한다. ‘낙태죄’는 고의가 있어야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태아의 생명권은 한국의 법에서 여성의 기본권을 마땅히 침해할 수 있을 정도로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고의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박탈의 책임을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고 헐겁게 전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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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임부나 배우자가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 예외를 두는 ‘낙태죄’는 국가가 재생산이 가능한 주체와 그렇지 않은 주체를 제도적으로 구분하여 후자를 예외적인 비정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우생학적 이데올로기를 내포한다. ‘낙태죄’의 존속을 주장하는 정부는 동시에 저출산 문제의 타개를 목표하며 출산을 종용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국가와 ‘낙태죄’는 ‘정상’ 인구를 강제적으로 국가적 목표에 포함시키고 ‘비정상’ 인구는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각각의 재생산에 차등한 가치를 둔다. ‘낙태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생명권의 범위가 한없이 한정적이며 그 보호마저도 국가의 헤게모니에 종속된 채 인간을 도구화하는 양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생명권을 존중하지 않는 ‘낙태죄’ 담론에서 상정되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간 대립은 그래서 허구적이다. 둘은 상충하지 않고, ‘낙태죄’는 둘 다 존중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 권리의 대립이 아닌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를 포괄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활발히 제기되었다. 재생산권은 ‘모든 부부와 개인이 자녀에 관한 환경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 최고의 성적, 재생산적 건강 상태에 이를 수 있으며 차별, 강압,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재생산 결정을 내릴 권리(1994년 카이로 인구 및 개발에 관한 국제회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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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 정부의 주수 제한 조치가 무의미한 이유는 보호되지 않는 생명권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성 신체를 국유화하는 ‘낙태죄’의 본질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낙태죄’는 남성에게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의 임신중절을 교사했을 경우 ‘낙태죄’를 교사한 죄가 성립할 뿐 ‘낙태죄’ 자체는 오로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다. 남성이 도망가거나찾을 수 없는 상태일 땐 처벌 가능성도 미미하다. 사실상 ‘낙태’에 대한 죄가 아니라 ‘낙태를 하는 여성’에 대한 죄인 것이다. 타인에 의한 낙태는 생명권의 박탈로 여기지 않으면서 여성 스스로의 낙태는 생명권과 대치되는 행위로 해석하는 법리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되는 부분이다. ‘낙태죄’는 여성 신체와 재생산권이 국가의 필요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여성 스스로의 결정은 죄악시하는 여성 혐오적 사고의 총체이다.

 

적극적인 형태의 권리까지 포괄하는 재생산권은 당연히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절할 수 있는 환경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환경의 가능성이 제기된 작년 헌법 불합치 결정 당시 희망차게 터져 나온 재생산권 논의는 정부의 개정안 제안으로 인해 사실상 초기화되었다.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며 ‘낙태죄’를 존속하고자 하는 정부에게 여성은 어떤 존재일지, 여성이라는 구분 안에서 또다시 구분되고 배제되는 이들은 또 어떤 존재일지 궁금하다. 스스로의 결정이 금지되고 전체의 목표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기를 강요받는 여성은 언제 ‘먼저’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참고 기사


이고은, “<팩트체크> 낙태죄 책임은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 뉴스톱, 2017.12.22

박주연, “‘낙태죄 폐지’를 넘어 ‘재생산권’을 요구한다”, 일다, 2018.11.19.

최한별, “낙태죄 폐지는 ‘비정상인’ 승리의 역사될 것”, 비마이너, 2019.04.04

김민철, “정부, '전면적으로 낙태 금지 안 한다'더니 "임신 24주 이내만 낙태 가능"”, 케미컬뉴스, 2020.10.07

BBC NEWS, “낙태죄: 헌재 판결 1년여만에 발표한 정부 개정안 논란”, 2020.10.07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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