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AMe Old Shit, 예술도? [시각예술]

바스키아를 본 후 든 생각들
글 입력 2020.10.3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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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그림을 그린다. 크다 만 손가락은 아직 어설프기 짝이 없고 선들은 삐죽거린다. 이것은 사과니-하고 물으면 강아지란다. 집이냐고 물으면 꽃이란다. 순수한 건지 어설픈 건지, 아님 둘 다인지. 흔히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아이의 낙서 같다고들 한다.

 

바르셀로나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 한 광장에서 그의 그림을 마주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것은 벽화였다. (이제는 아니라지만) 인류 최초의 벽화로 알려졌던 라스코 동굴 벽화처럼 느껴졌다. 실은 그 보다 단순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유명한 피카소의 그림이란다.

 

그림의 붓 자국 하나 하나를 분석하지 않는 편이다.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 박서보의 단색화, 이우환의 점까지. 이게 뭐야-라는 반응을 잘 이끌어내는 작품들을 볼 때에도 늘 들지 않던 의문이 있었다. 그 의문을,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벽화가 나에게로 이끌었다. 예술에 부여되는 가치란 무엇인가?

 

얼마 전 롯데뮤지엄에서 개최 중인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시를 다녀왔다. 그의 이름과 몇 가지 작품을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진 않았었다. 바스키아의 그림들은 모두 거칠고 자유로우면서도 파괴적이고 혼란스러웠다. 그에게서는 피카소가 보였다. 역시나, ‘검은 피카소’가 그의 별명이었다. 그의 그림은 나에게 마치 어둠 속 양초처럼 느껴졌다. 절박한 어둠 속에 뜨거움이 있는……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들은 거칠고 무작위로 느껴졌고 알 수 없는 나열들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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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는 단 한번도 그림을 흘러가는 대로 그린적이 없다고 말한다. 모든 터치들은 그의 계획 하에 의도적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문득 또 다시 피카소가 겹쳐 보인다. 라파엘로처럼 그리기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 아이처럼 그리기에는 평생이 걸렸다는 피카소. 예술의 가치는 순수성인가?

 

SAMO. SAMe Old Shit. 바스키아가 알 디아즈와 함께 창안한 그들만의 단체이다. SAMO를 통해 바스키아와 알 디아즈는 낙서화가로써의 정체성을 만들고 알린다. 둘이 함께 할 때까지만 하더라고 그들의 화풍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그런데 알 디아즈라는 화가의 존재를 나는 전시를 보며 처음 알았다.

 

후에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 헨리 겔드잘러, 메리 분과 같은 미술계 유명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활발한 교류를 한다. 앤디 워홀과 함께 하는 젊은 흑인 작가, 화상들이 밀어주는 작가가 된 바스키아의 작품들은 놀랍고도 빠르게 가격이 치솟았다. 그러나 디아즈에게는 그러한 관계가 없었다. 예술은 교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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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는 어렸을 적부터 스타를 꿈 꾸었다. 열일곱 살에 이미 스타가 될지 모른다는 직감을 마주했을 만큼 그의 성공에 대한 열망은 범상치 않았다. 샛별같이 단순한 천재성만을 지닌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의식의 흐름처럼 보이는 그림들도 철저한 의도 하에 이루졌듯이 그는 철저히 스스로를 스타로 올려놓기 위해 행동했다.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SAMO를 결성하여 낙서를 하였다. 인지도가 올라가고 낙서화의 열풍이 사그라들자 그는 단호하게 SAMO를 해체하며 갤러리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거물들과의 인맥을 쌓았다. 레스토랑에서 앤디 워홀을 마주했을 때도 그는 당당히 자신의 그림을 살 것을 제안한다. 예술계의 살아있는 한 획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것이다. 예술의 가치는 섬세한 저돌성인가?

 

바스키아의 그림에는 등장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뼈와 내장, SAMO, 무의미와 유의미의 간극을 잇는 글자의 나열, 왕관 표식까지. 흩어져 있으면 그 무엇도 아니지만 합쳐지는 순간 그것은 바스키아의 표식이 된다. 화풍과 개성은 분명 예술가의 생명과도 같다. 그렇다면 과연 예술은 각인인가?

 

예술은 무엇인가? 그 가치는 무엇인가? 질문을 할 때마다 너무나 많은 답들이 내 안에 떠올랐다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그 어떤 답도 내릴 수가 없었다. 모든 행위이면서 정신적이고 물질적이며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안료의 입자를 보다가도 이어진 붓 자국을 읽는 것. 군중과 함께하면서도 고독해야 하는 것. 흑백에서 향을 느끼는 것. 하나의 답을 내리면 단박에 반박을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그 반박의 반박에 또 다시 반박 할 수는 없는 것. 그 모든 것.

 

계속 생각해 본다. 명주실처럼 가늘고 긴 생각들이 뽑아져 나온다. 얇지만 질기도록, 오래오래. 벽화에서부터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까지 쭈욱 이어지도록 그렇게 생각해 본다. 무엇을 위해? 재미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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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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