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를 관람하고

연극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글 입력 2020.10.2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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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자신을 마주하는 질문'이라는 리플릿의 문구가 있지만 '나'를 '연극'로 바꾸어도 좋겠습니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할 때의 '연극'으로요. 어쩔 수 없이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굳이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질문에 직면해야 할 때가 옵니다. 너는 누구인가. 연극으로 바꿔 말하자면 연극이란 무엇인가. 배우란, 연출자란, 관객이란 무엇인가. 극장 매표소의 직원, 경비, 지나가는 경찰 그러니까 연극을 만들거나 보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연극이 이루어지는' 지금 여기에 우연히 함께 있는 너와 나는 누구인가.

 

지금 우리는 우연히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연극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당신도, 나도 살아 있다는 것. 연극은 곧 기억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고 우리의 삶 역시 그렇습니다. 형체도 소리도 냄새도 없이 오직 기억되기 위해서 사는 것, 연극이 아닐까요.

 

이 연극만의 독특한 구성인 연극과 영화. 이렇게 만든 이유는 뭘까 계속 생각해보았습니다. 연극은 지지부진합니다. 거짓과 위선, 조롱이 대부분이고  속고 속이거나 감추고 드러냅니다. 의심하고 분노하고 흥분하지만 진실은 없고, 모두가 어떤 행위를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합니다. 피에로가 얼굴의 분장을 지우기 전에는 어느 얼굴이 자신의 얼굴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배우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런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무엇일까? 심지어는 같은 배우와 같은 플롯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라면. 연극의 현장성과 일회성에 그 차이가 있을 듯합니다. 영화는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나’를 보여주지만 ‘지금 나’의 숨결을 오롯이 전달해줄 수는 없습니다. 휴대폰 사건에서 연극과 영화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연극의 관객으로서 휴대폰 사건에 제대로 휘말린 바 있는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는 전혀 낯선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바라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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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도둑으로 몰려도 절대 가방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 중년여성. 내가 중년여성이라면 과연 가방을 열었을까. 과연 나라면 괜히 일 키우지 않고, 순순히 말 잘 듣고, 주변의 눈치 보고, 불편함을 만들면 안 된다는 분위기에 압도되거나 혹은, 이미 세뇌되어 신뢰와 개인을 무시하진 않았을까. 이렇게 산다면 가면 속 내 표정이 뭔지 다시는 알 수 있을까요.

 

나를 알고 그것을 드러낸다는 것. 후배연출가의 온통 하얀 패션은 앙드레 김 디자이너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취향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가 얼마나 질 낮은지 보여주는 장치라 생각됩니다. 패션은 분명 개성을 드러내지만, 우리 사회는 개성을 존중하기는커녕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 데 더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슬픈 것은 그런 웃음거리라도 돈이 된다는 사실 때문에 개성을 가장한다는 점입니다. 앙드레 김 정도는 되야 우린 그 사람을 그 자체로 바라봅니다.

 

창작극을 보는 즐거움은 동시대 작가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는 데 있습니다. 아마도 연극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자부심 강한 분으로 보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극판에 대한 비판의식도 보였습니다. 연출가가 미투에 휘말렸다는 대사, 연줄을 타고 후배의 연극을 공짜로 보고, 심지어는 티켓 심부름까지 시키는 모습. 그 많은 연극영화과는 대체 어떻게 관리되고 있으며, 그 많은 학생 중 무대에 선 이들은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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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습니다. 극의 시작을 여는 연출가의 내레이션이 중간 중간 등장합니다. 극의 이해를 도울 겸 넣은 것 같지만 불필요했을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여러 장르를 통해 한 이야기를 하는 만큼 간결하게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이 극이 전하려는 바를 더욱 잘 전달할 수 있었을 듯합니다.

 

너무 번잡한 무대와 과한 소품도 아쉬웠습니다. 물론 무대와 소품이 쓸데없이 낭비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맥락으로 이 연극은 굉장히 복잡한 구성을 띄고 있습니다. 이 구성 자체가 이 연극을 정의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기에 무대와 소품은 최대한 단순해져도 배우들의 연기와 극이 가진 독특한 구성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물속에서 물고기가 죽었다는 대사.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이 죽고, 연극 안에서 연극이 죽고, 영화 안에서 영화가 죽습니다.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다 '지금 여기'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일입니다. 연극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극단 이루

작·연출 손기호

출연 박지아, 구자승, 조주현, 나종민, 장하란, 하지웅, 강동수, 김태우, 이랑, 이나경, 김남희, 채승혜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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