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감상 후기

글 입력 2020.10.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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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의 영어 원제는 microhabitat 이다. 미생물과 같은 미소(微小) 생물이 서식하는 환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인공 이름 미소와 연결된다.


 

현대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혹자에겐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독점공간

혹자에겐 자아를 지우고 제도에 편입시키는 공간

혹자에겐 애인의 온기가 사라진 감옥이자 경제적 족쇄

혹자에겐 타인의 만족과 사회적 정상성을 실현시키는 곳

혹자에겐 신분상승의 허상과 정체성을 교환하는 장소


미소는 집에 대한 그런 모든 정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영혼 같다. 24시 카페에서 자고 핸드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 떠돌이 생활을 반복해도 불안함을 내비치지 않을 만큼, 그에게 집은 하루 몸 뉘일 곳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애인은 집보다 중요한 안식처다. 오른 월세와 담뱃값 사이에서 담배를 택하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취향과 삶의 낭만을 중요시 여기는 인물인지 보여준다. 에쎄에서 값이 저렴한 디스를 피며 자신의 취향을 잠깐 양보하는 한이 있더라도 금연을 해 월세에 보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증금이 더 저렴한 곳을 찾아나서고 알아보는 와중에도 꼭 창문이 있는 집을 고집한다.


그렇다면 취향이란 무엇인가? 취향에는 습관, 가치관, 삶을 대하는 태도, 더 넘어서는 목표 같이 어떤 인간의 역사와 정체성이 녹아있다. 미소에게 입을 모아 '넌 여전하다'고 말하며 정체성을 지우고 어느새 삶과 타협한 채 살아가는 친구들은 미소의 삶과 대조된다. 담배를 피던 문영, 곡도 잘쓰고 키보드도 잘 치던 현정에게 취향이란 어느새 빛바랜 과거 내지는 영영 숨기고 싶은 무언가로 변한 지 오래다.


어떤이는 변하지 않은 미소를 이용하려 들거나 한심히 여긴다. 록이는 집이 없는 미소의 처지를 이용해 결혼을 요구하는것도 모자라 감금까지 행사하는 폭력적인 기회주의자다. 그러나 집 대신 담배와 술을 택하는 미소에게 집은 약점조차 아니었으니 록이의 전략은 애초부터 틀렸다 ㅡ난 갈데가 없는게 아니라 여행중인거야, 떠돌아 다닌다고 너무 막말하는거 아니야?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ㅡ정미는 여전한 미소의 취향을 염치없고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미소는 100만원을 건내는 손을 무시한 채 정미의 집을 박차고 나온다.


많은이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사는 미소를 보며 스스로와 약속했다 삶이 나를 갉아먹고 서로를 갉아 먹는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남은 한 줌 영혼 전부를 교환하지 않기로. 나도 모르는 새 모조리 갉아먹히고 잠식될테니 말이다. 결국 담배에 이어 위스키 값도 올라버렸다 ㅡ괜찮아요, 그냥 한 잔 주세요ㅡ 그러는 새 머리도 백발로 변했지만 오늘밤은 텐트에서 잠이 들어도 괜찮다. 민지씨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기뻐요ㅡ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니.

 

 

[김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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