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보니 웃픈 예능 무한 상사 [TV/예능]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글 입력 2020.10.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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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의 다양한 부캐들을 이용해 매번 새로운 화제를 몰고 있다. 타 프로그램들의 고정화된 포맷과는 다르게 매번 새로운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을 구현하는 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조합은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시간이 될 때마다 챙겨 보고 있었는데 며칠 전 하루는 유튜브에 나온 <놀면 뭐하니?> 예고편을 잠시 켰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한참을 깔깔거리며 무한 도전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학창 시절에도 함께 했고, 한 때는 전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했던 무한도전! 요즘에는 예전 방송 중에서 인기있는 에피소드 위주로 좀 더 짧게 편집을 한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온 덕분에 짬짬이 남는 시간에 기분 전환용으로 다시 틀어보는 중이다. 이게 10년도 더 된 예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 회 볼 때 마다 빵빵 웃음이 터진다.

 

그러다 다시 보게 된 코너 속의 코너 무한 상사 편. 무한 도전 내 다른 캐릭터를 리얼하게 연기한 멤버들의 모습은 사실 이번 부캐 신드롬의 원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웬 걸. 정말 오랜만에 접한 무한상사 시리즈를 보고 난 후의 소감은 예전과는 너무나 달랐다. 예전에는 사실 별로 재미없다고 여겼던 부분에서 웃음이 터졌고, 흘려 듣던 대사 한 마디, 노래 한 소절에 눈물이 글썽거리며 공감이 갔다. 예능이 이렇게 웃다가 울리기 있는 거냐고.

 

무한상사 특집을 야유회 편이 처음이라고 친다면 2011년 당시 나는 아직 학생 시절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인 무한상사 야유회 편은 다시 봐도 이만한 예능은 없다고 생각될 만큼 정말 웃기다. 그러나 깔깔 웃음만 짓던 예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피곤한 회사 생활의 단면이 여실히 보였다. 이게 그냥 예능이 아니라 블랙 코미디였구나.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예전 같으면 안 들렸을 유부장의 매출 이야기가 쏙쏙 박히고 억지로 끌려왔다는 박명수 차장의 인터뷰와 캐릭터에 몰입한 대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아랫사람들을 위한다면서 자기 위주로만 하는 얄미운 유부장 캐릭터는 정말인지 나의 스쳐간 팀장님들의 모습과도 닮아도 참 많이도 닮았더라. 그와 반대로 속으론 싫으면서도 억지로 부장님 앞에서는 애써 좋은 척 흥을 내던 노사원 하사원과 길인턴의 모습에서는 지나온 내모습이 겹쳐 보였다.

 

와. 무한 상사 정말 캐릭터 리얼하게 구성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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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그냥 회사 사람들끼리 소풍 가는 에피소드일 뿐 배경은 인지하고 보지는 못했는데 다시 보니 부장님과 함께하는 회사 야유회라니 상상만해도 답답하다. 억지로 친목 도모를 하는 회사 야유회가 얼마나 쌍팔년도식 인지를 오래된 촌스러운 캠코더 화면과 자막으로 비꼬듯이 보여주는데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꼭 야유회가 아니더라도 아직까지도 굳이 단합을 위한 자리를 유도하는 행사나, 혹은 회식들도 그 연장선이다. 무한 상사의 풍자는 유쾌하면서도 직관적이었고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과정들이 보편적인 과정이었음을 느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 뒤 모든 무한 상사 모든 편을 다시 찾아보았다. 당시 콩트 자체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회사 생활을 해보기 전이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서 재미없다고 느낀 것이었을 뿐, 지금 보니 이렇게 재밌는게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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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제일 공감이 가는 에피소드는 정과장의 정리해고 편이였다. 최근에 친한 친구 하나가 다니던 회사를 나오며 겪은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인지, 정리해고라는 단어가 이제는 남일이 아닌 게 되어버린 나이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짜임새 있는 구성에 몰입해서 보았다.

 

내 친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요 근래 코로나로 정리해고 압박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접한다. 누구나 직장인이라면 고민할 만한 소재, 내가 언제 이 곳을 나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묻어난 에피소드 이기도 했다.

 

유부장이 정리해고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팀원들에게 전하자 한 명씩 사연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짜고 짠 짠내가 난다. 처자식이 있고, 빚이 있고, 이제 막 입사했고 등등 웃기기만 하는 예능이 아니라 실제 직장인이 된 듯 연기하는 멤버들의 대사에 몰입도가 상당했다. 그리고 무시당하는 정준하가 상상 속에서 짜장면 집 테이블을 뒤 짚어 없고 폭발하는 장면은 한 번쯤 나도 해본 상상이기도 했다.

 

특히 유부장이 레미제라블 ost에 맞춰 뮤지컬 형식으로 노래 부르는 씬에서는 이제껏 예능 프로그램에서 느껴보지 못한 전율마저 올라왔다. 정리 해고자로 누구를 선택할지 갈등하는 유부장의 고뇌와 ‘나는 쌍둥이 아빠, 둘 중 아무나 나가 줘요. 승진은 꿈 안 꿔요.’ 등의 깨알 가사들은 앞 전의 로봇 시제품에서 선사한 웃음들을 쏙 가져가버리는 진지함으로 현실 자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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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도 팀원 중에 한 명을 해고해야 한다는 발령이 난다면 속으로 <나만 아니면 되>라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을 거 같다. 막 입사했을 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말들, <직장에서 살아남기> 비슷한 어감의 말들에 이제는 상당 부분 공감을 하며 내가 정과장이 되지 않을 보장이 없는 요즘 막연히 걱정해본다.

 

대부분 사기업은 평생 직장이 드물다고 한다. 아직 30 초반인 내 친구들 중 여러 번의 이직으로 꾸준히 몸값을 높여 나가고 있는 이들도 꽤 있고, 뒤 늦게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거나 벌써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친구도 많다. 안이하게 직장만을 믿고 있지는 않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두려움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물론 무한 상사 속의 정과장처럼 결국 창업으로 대박을 이뤄 모든 직장인의 부러움을 받게 되는 성공신화를 이뤄낼 수도 있겠지만 갑작스러운 코로나로 매달 월세 내기를 겁내는 자영업자의 한 사람으로 몰락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 때는 내가 몰랐었을 뿐 10년 전 방송되었던 상황과 오늘의 사회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어쩌면 이전보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게 더 어려워진 현실에서 어떻게 예능처럼 웃으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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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지만 가볍지 않았던 무한상사 편. 실력은 기본 눈치로 살아남아야만 하는 직장인의 희로애락 현실을 사실적으로 녹여낸 무한 상사를 보며 이제는 마냥 웃을 수만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점이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코로나로 일도 줄고 여유시간이 많아진 요즘 그리운 무한 도전을 보면서 심심치 않은 위로를 받아 본다.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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