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귤에게 [동물]

글 입력 2020.10.2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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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 집에 작은 식구가 생겼다. 2.6키로의 조그마한 아기강아지. 이름은 귤이라고 지어줬다. 귤! 하고 부르면 검정 콩 세개가 박힌 얼굴이 나를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자꾸만 귤 귤 하고 부르게 된다. 귤의 매력 포인트는 한 두 개가 아닌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발에 있는 흰무늬다. 흰 양말을 신은 듯한 모습으로 귤은 사뿐사뿐 걸어서 나에게 다가온다.


귤이 발견된 건 배밭이었다. 밭에 덩그러니 놓인 박스 안에는 귤이를 비롯한 새끼 네마리가 들어있었다. 누군가 아기 강아지들은 유기한 것. 생판 낯선 곳에 버려진 귤을 구조하신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일주일동안 귤을 임시보호하다 나에게 보내주셨고, 나는 오랜 기다림 끝에 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임시보호 동안 계속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귤이 내 눈 앞에 나타난 모습은 조금 비현실적이었다. 어느 잔디밭에서 처음 만난 귤은 금빛털을 가졌고, 체구는 작고 말랐으며 두 눈은 반짝거렸다. 내가 어색한지 손 냄새만 조금 맡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휙휙 돌리던 귤은, 내가 가방에서 사료가 든 비닐을 바스락거리자 어색함을 금방 잊고는 나에게 앞발을 내밀었다. 사료라면 어색함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사료낙관주의자였다.

 

사료가 없을 때는 나를 좀 어색해하긴 했지만 품 안에 쏙 안겨 가만히 있던 귤. 까만 눈동자를 보며 행복해하던 내 뒤로 두려움이 슬며시 피어올랐다. 이제 귤을 데리고 집에 가야하는데, 과연 가족의 반응이 어떨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들 전체의 동의를 얻지 않은 상태였고, 귤을 데리고 오던 아침만 해도 가족 모두 나에게 강아지를 데려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게 기억이 나서 더 두려워졌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강아지를 좋아하긴 하는 사람들이지만 강아지를 우리집에서 키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누누이 말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강아지를 데려갔다. 내가 예뻐하고 돌봐주면 그게 곧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반대를 하지만 막상 강아지를 보면 예뻐서 못배길거라는, 결국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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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데리고 집에 간 첫 날 가족들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집 안 곳곳을 냄새 맡으며 돌아다니는 귤을 보며 다들 귀여워했고, 저렇게 예쁜 애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밭에 버려졌을까 하고 안쓰러워했다. 귀여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동의없이 이렇게 데려오면 어떡하냐고 말하기도 했다. 데려왔으니 어떡하겠어, 그래 너가 다 책임져라. 하고 한숨섞인 동의가 돌아왔다.


작고 마른 귤을 보며 가족들은 강아지는 죄가 없다면서 품어주기로 마음 먹은듯 했지만 곧이어 현실적인 문제들이 뒤따라왔다. 글을 쓰는 지금도 부끄럽지만, 이 문제들은 강아지를 데려오기 전 이미 염려했던 부분들이었다. 이를테면 귤의 주보호자인 내가 없을 때 귤을 전담케어할 사람이 없는 것. 동생은 곧 중국으로 유학을 가고, 부모님은 매일 일을 나가기 때문이다. 취업하고 일을 시작할텐데, 그런 나를 대신해 하루에 두 세번 산책시키고 대소변 가려주고 청소하고 밥주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가족의 생활패턴도 완전히 바뀌게 된다는 부차적인 문제도 있었다. 새벽이면 일어나 오줌을 누고 배고파하는 귤을 위해 가족 전체가 일찍 일어나게 되는.


두 문제에 대한 답은 나의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없을 때는 누군가가 귤을 돌봐야했고, 그건 내가 새벽에 잠들어있거나 일을 하러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독립해서 귤을 데리고 함께 살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텐데 그럼 그때까지는 어떡하지.


다같이 돌보면 되지 라고 말을 하기엔 그들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들 각각 강아지를 키우기 힘든 이유가 있었는데, 나 하나의 의지가 곧 온전한 책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왜 난 귤 데려오기 전에는 몰랐을까. 일단 데리고 오기만 하면 나머지 문제들은 차차 해결될거라고 안일하게 믿고 있었나보다. 바보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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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은 지금 내 발치에서 쿨쿨 자고 있다. 오전에는 항상 이렇게 잔다. 연갈색 속눈썹을 꿈뻑이며 조는 모습을 지켜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데려왔지만 결국 책임지지 못하고 다시 떠나보내야 하는 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잘못 하나없는 아이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만건지.


평소라면 입을 앙 벌리고 내 손을 물며 같이 놀자했을 귤인데, 내가 울자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내 손바닥에 머리를 가만히 기댔다.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가만히 살피다가 곧 내 손바닥을 핥기 시작했다. 천천히 핥짝이다가 내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고는 다시 손바닥을 핥아주었다. 귤이 나를 그렇게 핥아준건 짭짤한 맛이 나는 눈물 때문이었겠지만 나는 귤이 나를 가만히 바라봐주면서 내 손에 머리를 기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조그마한 존재가 나에게 모든 걸 맡긴 채 가만히 바라봐주던 그 순간을. 까만 동그라미가 애틋해 나는 귤을 꼭 안았다. 나의 귤.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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