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을 때'는 지났다 - '파과' 리뷰 [문학]

글 입력 2020.10.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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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기에 앞서, 재미있었던 우연으로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외출 준비를 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이북리더기를 발견한 나는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책이나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북리더기를 가방에 넣고, 퇴근 시간을 살짝 비껴갔지만, 여전히 붐비는 저녁때의 지하철에 탄 나는 자리를 잡고 자세를 편히 고쳐 앉았다. 이북리더기에 무슨 책이 들었는지 찬찬히 살펴보다가 언니가 읽던 책을 골라 열었다. 구병모의 『파과』. 한자어 같았으나 표지에는 한자가 없었다. 무슨 뜻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지만, 그러려니 하며 흐릿한 빛을 내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첫 문장은 이러했다.

 

‘그러니까 금요일 밤 시간대의 전철이란 으레 그렇다.’

 

묘하네,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침 해가 지고 인파가 칸칸이 밀려들기 시작할 무렵의 금요일 저녁 지하철에 탄 내게, 이런 글이 찾아오다니. 그 다음에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는 아직도 예상이 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흥미가 생겼다. 그 자그마한 들어맞음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몇 페이지가 더 넘어갔다. 주인공은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바로 그 순간, 재수 없게 굴던 한 남자를 빠르게 처리했다. 그녀는 나이 든 킬러였다.

 

나는 글에서 눈을 잠시 돌렸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곁눈질하다가 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혹시 어떤 노인이 루페를 들고 성경을 들여다보다가 눈 깜짝할 새에 인파에 섞여 사라지지는 않았나 주위를 살폈다. 정확히 그 책을 들고 지하철에 탄 찰나가 운명처럼 느껴졌다.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비하인드가 내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단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은 약 40년간 청부 살인 업을 해온 베테랑이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은 65세의 킬러 ‘조각(爪角)’이다. 그녀는 노인이다. 그래서 조각은 자신이 모르는 새에 치매라도 걸려서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지 미심쩍어하는 에이전시에 점점 빈번하게 고통이 찾아오는 몸을 들키지 않으려 한다.

 

큰 병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 큰 병이 올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필연적으로 노화는 관절이나 근육에 틈을 만들기 마련이라 조각은 예전처럼 일할 수가 없다. 그녀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평생 몸담아온 그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는 자신이 속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는, 은퇴한다면 그 ‘다른 세계’와 자신의 거칠고 공허한 과거 사이의 괴리를 견디기가 어려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장을 떠나는 것만은 최대한 미루려 한다. 한창때가 지난 킬러는 늙은 육체로 살아남기에는 너무 버거운 세계와 바라서는 안 되는 소박한 생활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중이었다.

 

돌아갈 가족 없이 떠돌던 그녀를 눈여겨보고 킬러로 키운 ‘류’라는 남성에게 품었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감정을 제외하면 조각은 어떠한 열망이나 욕망을 품는 데 익숙한 인물은 아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는 우연히 마주친 ‘강 박사’를 향해 사랑 비슷한 무언가를 가지게 된다. 적당히 따스하고 끈끈한 강 박사 가족을 보며 조각은 자신이 감히 누릴 수 없는 종류의 행복을 마주하고, 그들을 향한, 더 정확히는 강 박사를 향한 애정을 확인한다. 조각의 마음속에 새순 돋듯 피어난 연민과 애정, 동정 같은 감정이 강 박사뿐만 아니라 딸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의뢰인, 그리고 리어카 끌던 노인에게까지 뻗은 것은 늙고 지친 인간이 자연스럽게 품기 마련인 감상이나 미련 때문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젊은 살인 청부 업자 ‘투우’는 조각의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지금 업계의 블루칩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투우가 볼 때 괜한 사람들을 답지 않게 동정하다가 감상에 빠져 일을 그르칠 뻔한 조각의 모습은 노화로 인한 기능의 퇴화일 뿐이다. 류는 그것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분명 살인 청부 업자로 일하는 사람이 생면부지인 남을 돕는다든가 연민을 느낀다든가 하는 것은 일에 하등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투우의 말마따나 그럴 ‘자격’도 안 된다.

 

투우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결국 노화가 조각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행동의 변화가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새롭게 생긴 ‘흠집’은 아니다. 조각의 안에 그런 감정은 늘 있었다. 류를 향한 애정이나, 평범하고 있음 직한 행복에 대한 갈망, 욕심 같은 것들. 젊은 업자 투우에게 그런 거추장스러운 감정은 한때는 유능했던 킬러의 정신에 난 흠, 혹은 선명한 노화의 징조나 다름없었겠지만, 그것들은 늘 거기 있었다. 강 박사의 순수하면서도 순진한 선량함이 조각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열망을 이끌어냈을 뿐이다.

 

조각은 강 박사에게서 얻어지는 사랑이니 욕망이니 하는 역동적인 감정이 늙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낀다. 소설의 제목 ‘파과’는 흠집이 난 과일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자의 나이 16세를 뜻하기도 한다. 한창 좋을 때를 지나 이제 생보다 사에 더 가까워진 그녀는 자신이 ‘파과’임을 알고 있다. 조각은 제때 먹지 않아 냉장고에서 썩어 뭉크러진 복숭아, 강 박사의 부모가 하는 과일가게에서 사왔던 잘 익은 복숭아의 주검을 치우다가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토록 향기롭고 아름답던 열매가 곤죽이 된 것을 긁어내며 그녀가 마음 아파한 것은 최고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죽음에 가까워진 과일이 자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고, 여기에 더해 자신이 주제넘게 품은 감정이 젊고 따스한 상대에게는 상해서 부스러진 복숭아만큼이나 어울리지 않음을 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라고 열망하는 감정의 표출에 젊고 늙음이 어디 있으랴. 그것을 뻔뻔하고, 자격 없는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누구도 영원히 반짝일 수 없으며, 모든 생은 끝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

 

꼭 과즙이 흐르는 잘 익은 복숭아처럼, 열정과 온기로 무르익은 감정. 조각은 그것이 늙은 육체의 자신에게는 이미 지난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니면 그 생동감이 애초부터 자신에게는 없던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녀를 마주하거나 스쳐 지나갈 모든 이들 역시, 그토록 화려한 감정이란 삶의 불꽃이 이미 꺼진 듯 보이는 저 노부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 조각은 받아들인다. 젊고 완숙한 아름다움은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지기 때문에 영원히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젊음이 부서진 자리에 남은 단내가 삶의 한 가운데서 문득 끼쳐오는 것은 막을 수 없음을. 그러므로 그녀는 파과(破果)다. 언제나, 파과(破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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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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