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예술가와 '놀다가' 삶이 바뀐 비즈니스맨

#19 톰 탄디오와 인도네시아 현대미술 컬렉션
글 입력 2020.10.0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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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처음 만난 순간


 

미술을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는가? 조금 모호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미술이 사람도 아니고, 처음 마주한 순간이 명확하게 기억에 남기는 어려울 테니까. 내 경우에도 역시 미술은 한지에 떨어진 먹 한 방울처럼 서서히, 뭉근하게 나를 변화시켰고, 스스로 미술을 진지하게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난 이미 너무 멀리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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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CoBo

 

 

그런데 한 컬렉터는 미술을 통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 시리즈에서 소개한 여러 컬렉터들이 대부분 미술을 향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집안에서 자라나 자연스럽게 컬렉팅을 시작한 것과 달리, 이 컬렉터는 본래 사업가로 미술이나 작품 컬렉팅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친구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몇 점 샀다가, 10여 년이 흐른 후에는 본업을 그만두고 자국의 예술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술과 처음 만난 순간을 선명히 기억하고, 그 이후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는 이 컬렉터는 바로 톰 탄디오(Tom Tandio)다.

 

 

 

‘돈’밖에 모르던 남자


  

탄디오는 자동차 관련 산업으로 부를 모은 사업가였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최고급 차, 최고급 시계와 같은 것들이었다. 어느 날 그의 형수(제수)가 그를 전시에 초대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였다. 그는 그곳에서 후원의 의미로 작품을 세 점 샀다.

 

그런데 몇 달 후, 갤러리를 운영하던 친구가 그 중 한 점의 작품을 세 점 가격에 되팔겠냐고 물어왔다. ‘이거 완전히 돈 되는 사업이군.’ 탄디오는 그렇게 생각했고, 순전히 투자의 목적으로 컬렉팅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주변의 선배 컬렉터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큐레이터들과 어울려보라는 것이었다. 큐레이터야말로 작가들과 24시간 붙어있으며 관계 맺는 이들이니,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가장 잘 알지 않겠냐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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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탄디오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작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의 Couple Series.(2008)

사진출처: CoBo

 

 

큐레이터들과 친분을 맺게 되면서, 탄디오는 자신이 예술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뼛속 깊이 사업가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그는 예술가들도 자신처럼 돈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처음엔 믿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작가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고 술을 마셨다. 사석에서 만난 작가들은 더욱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는데, 탄디오는 이들이 대부분 궁핍하면서도 오직 자신의 열정으로 캔버스를 사고,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든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 그가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 나아가 그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탄디오는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자신의 모든 행동이 바뀌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농크롱(Nongkrong)’의 철학


 

처음에는 중국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샀던 탄디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국인 인도네시아의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애국심에서라기보다는 인도네시아를 떠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희미해졌던 자신의 ‘인도네시아 자아’를 탐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인도네시아 컬렉션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게 된 건 자신의 컬렉팅 스타일, 컬렉팅 철학이 필연적으로 그를 그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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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mo Ambala Bayang, Sleeping Elephant in the Axis of Yogyakarta, 2011

 

 

탄디오는 실행력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투자의 목적으로 예술을 대했던 초창기부터 큐레이터와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그들과 교류하고, 질문하고, 대화했다. 이는 결국 그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더욱 활짝 열어젖혔고, 그는 진지한 컬렉터가 된 이후에도 아티스트들과 어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탄디오는 자신의 컬렉팅이 아티스트들과 ‘농크롱(Nongkrong)’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농크롱은 인도네시아어로 ‘어울리다’, ‘놀다’, 영어로는 ‘hang out’이라는 뜻에 가까운 표현이다. 고급 호텔에 작가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하고, 때로는 길거리에 예술가들과 함께 앉아 노점상의 음식을 먹기도 한다는 그는 늘 예술가가 직접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물론 전시회의 오프닝과 같은 자리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가 선호하는 것은 사석에서 술에 잔뜩 취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과 예술 세계에 대해 말하는 걸 듣는 것이다.

 

예술가 중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조리 있게, 혹은 매력 있어보이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다. 그들에게는 언어보다는 시각적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디오는 예술가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꺼내놓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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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rt Jakarta

 

 

그래서 탄디오의 컬렉션은 인도네시아 작가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가 가장 자주 만나 편한 언어로 교류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인도네시아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컬렉터는 완성된 작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행위, 과정 그 자체를 사는 것이라고. 그는 때로는 작품 그 자체보다도 예술가의 아이디어 그 자체가 마음에 와닿으면 작품을 구입한다. 예술가들이 자아와 사회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이 탄디오의 사고를 조금이라도 더 넓혀주거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컬렉팅에서 ‘농크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예술가를 떼어놓고 작품만 보고 그것을 구입한다는 것은 탄디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은 숨 쉬는 것과 같다


 

과거의 자신을 ‘얄팍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부를 쫓고, 그것을 과시하는 데에 몰두했던 한 비즈니스맨은 어느덧 인도네시아의 2, 3세대 컬렉터들을 이끄는 대표 컬렉터가 되었다. 그의 컬렉션은 아직 미술관과 같은 형태로 대중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욕야카르타에 지금은 문을 닫은 ‘구당(Gudang; 창고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전시장에서 지인들과 공유되기도 했었다. 또, 2016년에는 서울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컬렉션의 일부가 전시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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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아트스페이스, 톰 탄디오의 인도네시아 현대미술 컬렉션 전시 전경. 2016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계에서 중요한 허브로 꼽힌다. ‘자카르타 비엔날레’ 등 오랜 비엔날레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곳 컬렉터들의 실질적인 구매력도 높다. 아트 자카르타, (현재는 폐지된)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 등 아트 페어도 성행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의 예술 정책에 대한 관심과 인프라 구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척박한 환경에서 인도네시아의 개인 컬렉터들은 어느 정도의 사명감을 가지고 컬렉션을 한다.

 

탄디오 역시 그렇다. 궁극적으로는 스스로의 자아를 찾는 여정으로 생각하지만, 그도 자신이 예술을 통해 얻은 기쁨과 깨달음에 대해 보답하고 싶어 한다. 본업을 그만두고 예술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2011년 ‘인도아트나우(IndoArtNow)’ 재단을 세워 자국의 동시대 미술가들의 전시 소식을 계속해서 아카이빙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며 동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들의 역사를 충실히 기록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2019년에는 열한 번째로 열리는 아트 자카르타의 디렉터를 맡아 페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국제적인 아트페어들이 해외(주로 서구권) 갤러리를 유치하는 데에 힘을 쓰는 반면, 탄디오의 아트 자카르타는 로컬 갤러리에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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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자카르타 2019. 에코 누그로호의 작품.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시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삶은 숨 쉬는 것에 대한 것이다”고 말했다. 인생은 무언가를 쫓는 것이 아니라,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저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만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길에서 벗어나, 주변의 예술가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 삶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 길 없는 망망대해에서 그는 예술과 함께 살아가기를 택하고, 언젠가 자신의 컬렉션으로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보여주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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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How to build a Southeast Asian contemporary art collection: Tips from fair director of Art Jakarta, Tom Tandio” by Hannah Choo, Robb Report Singapore, July 28, 2020

“Tom Tandio: A Journey of Self-Discovery Through Art” by Angela Low, High Net Worth, February 8, 2019

“Indonesian Collector Tom Tandio: Nongkrong with Artists as the Key to Collecting” by Naima Morelli, CoBo, March 1, 2017

“Asia’s Art Cities According to Collectors: Tom Tandio on Jakarta” CoBo, May 25, 2018

“아시아 아트 시장의 새로운 활력” 이소영 기자, 노블레스, 2020-09-07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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