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저는 오늘 죽습니다

저는 오늘 죽습니다
글 입력 2020.10.01 12: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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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는 어땠나요? 기분 좋게 맑고 쾌청하던가요? 아니면 조금은 흐리고 습하던가요. 사실 어느 쪽이든 그리 중요한가요? 애초에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웃음처럼 비가 쏟아지던 날이건 눈물처럼 날카로운 햇빛이 내리쬐던 날이건 그리 중요치 않습니다. 저는 오늘 죽습니다.

 

갑자기 죽는다니! 지금 저를 보는 당신이 날 아는 이인지 오늘 처음 아무 곳에나 와 본 이인지는 알 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디 놀라지는 말아주세요. 당신과 그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설계되었다면 그것이 오늘이건 내일이건 끝끝내 일어나고 말듯이, 나 또한 그러합니다.

 

세상은 점점 알 수 없게 되어갑니다. 나는 말을 빙 두른지 꽤나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말투에 질색하는 이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들이 부러웠다면 뭐라 대답할까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죽음만은 놀랍지 않습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확고하고 명료하게 확신하는, 이런 아름다운 단어들로 설명되어지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아침에 몸을 일으켜 흐르는 물 속에서 잠을 깨웠습니다. 평소보다 거창 할 이유는 없으니 사과 반 개와 계란 한 알을 씹어 삼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어떤 이와 함께해야 할까요. 가장 사랑하는 이를 불러 마지막 몇 초를 눈에 바를 수도 있겠지요. 가장 증오하던 이를 만나 몸소 보여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습니다. 미움도 사랑도 모두 내 안에 자리한 것, 떠안고 감이 진정한 나의 기록일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을 저 용문사의 은행나무로 바꿀 일도, 광막한 파도 물결을 한 방울 눈물로 바꿀 일도 없는…….

 

어제는 문득 책을 펼쳤습니다. 낡아 버렸지만 모습만은 부자연스러운 그런 책이었지요. 그것은 배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배아를 만든 이에게 배아에 대한 모든 권리가 귀속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써내려 가더군요. 이야기가 적극적이었는지 소극적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쩐지 소극적이었다면 하고 바랬습니다만, 저는 그저 ‘권리’라는 글자에 코를 박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권리야 말로 저의 유일한 권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결말을 낼 권리는 저의 권리일까요 아니면 저를 만든 이의 권리일까요. 그도 아니면 무엇의 권리일까요. 그 권리를 진정으로 가진 이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중력이라는 것이 있다 합니다. 그것은 거의 모든 것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 당긴다고 하지요. ‘거의’라고 표현한 것은 저의 어떤 습관의 하나입니다만, 저는 확신하는 것에 어떠한 혐오감을 느낍니다. 앞서 이야기를 나누었듯 영원한 것은 영원하리라 믿는 순간이고 확신한다는 것은 강을 건너는 것의 확장일 뿐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의 처음과 마지막을 떠올린 후 중간을 채워 넣었습니다. 본디 시작과 끝은 명료한 법이지만 그 중간은 희미하고 두서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규칙도 강제도 없습니다. 그저 아무 이야기나 지껄일 뿐입니다. 아무튼 저의 말은 거의 없는 거의 입니다.

 

이제 이만 해야겠습니다. 조금은 거의 확실한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끝은 중요하니까요. 사실 이번만큼은 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다지 특별할 이유는 없겠지요. 다만 이불은 조금 단정했으면 싶습니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선은 제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향수를 뿌립니다. 남은 양이 얼마이든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만큼은 되어야 합니다. 여지가 많은 향일 겁니다. 답은 말하지 않기로 하지요. 음악은 확고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바흐의 The Art of Fugue를 부탁 드립니다. 그 중 어떤 연주인지는 제게 전혀 중요치 않군요. 어차피 까마득한 귀를 가진 사람이라 죽는 마당에 기분 한번 내보려는 것뿐이니까요. 혹여나 이 곡과 바흐의 이야기를 아는 분이라면 웃음만큼은 삼가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니, 어쩌면 크게 한번 웃어 젖히는 것이 더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자유국가이니까요.

 

그 다음을 기대하고 계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허무하시다니 제대로 보았군요. 수준 높은 관객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누워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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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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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dpqb
    • 좋은 글이네요.
      다음에 또 보아요.
    • 0 0
  •  
  • 비의세상
    • '미움도 사랑도 모두 내 안에 자리한 것, 떠안고 감이 진정한 나의 기록일 것입니다.' 문장이 참 좋아요. 다음에 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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