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른이 된다는 것: 영화 '프란시스 하'

글 입력 2020.09.2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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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나 정도 즈음은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문화생활의 범주에 드는 여러 카테고리 중에서, 나는 음악을 제일 좋아한다. 가사가 있는 음악도 좋지만, 가사가 없는 음악은 더 좋아한다. 그 느낌 그대로 나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여러 음악의 분야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악기의 소리가 살아있고, 특히나 현장에서 들으면 더욱 풍성하게 내 마음을 채우는 그 음악에 어떻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문화생활로 가장 많이 영위하는 카테고리는 아마 영화가 아닐까 싶다. 신작 영화가 개봉하고, 그것이 흥행하면 사람들은 서로 마주칠 때마다 묻곤 한다. "야 이번에 개봉한 그 영화 봤어?"

 

이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나에게는 영화가 '좋아하는 것'의 우선순위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를 싫어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영화는 감독이 원하는 모든 것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이미 정해져 있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좀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분명 내가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을 보는 행위 자체만을 통해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영화를 보았다. 노아 바움백이 감독하고 그레타 거윅이 주연을 맡았다는 "프란시스 하"가 바로 그 작품이었다. 2012년 작품이고, 이번에 재개봉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때에도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없는 나는 어쩌면 관객들 중에서도 정말 사전 정보 없이, 그리고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갖는 사감 없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소수에 해당할 것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사람이나 연기했던 사람들이나 하나같이 지금은 거물급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의 얼굴과 이름과 필모를 보아도 전혀 와닿지 않으니 말이다.


 



< 시놉시스 >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둘도 없는 친구 소피와 살고 있는 27살 뉴요커 프란시스. 무용수로 성공해 뉴욕을 접수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지만 현실은 몇 년째 평범한 연습생 신세일 뿐이다. 한편 사소한 말다툼 끝에 애인과 헤어지고 믿었던 소피마저 독립을 선언하자 그녀의 일상은 꼬이기 시작한다.

 

직업도, 사랑도, 우정도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프란시스는 과연 당당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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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하를 보는 내내 느꼈던 것은, 주인공 프란시스가 나와 정말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꿈을 좇는 것이야, 현실주의자건 이상주의자건 할 것 없이 동일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슬슬 들이닥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프란시스의 결정들은 굉장히 내 기준에 의아하게 느껴졌다. 룸메이트 소피와 살던 집의 계약을 끝내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 실질적으로 가용자금을 체크하고 감당 가능한 렌트인 부동산 매물들을 찾아보러 다니기는 커녕 소피를 통해 알게 된 레브와 벤지의 아파트에 갑작스럽게 들어가서 살다니. 물론 1200불의 렌트를 크리스마스 전까지 950불만 내고 사는 걸로 합의를 봤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충동적으로 정할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친구 소피의 남자친구인 패치가 마음에 들지 않기로서니, 보드카를 들이키고 소피와 그 애인을 앞에 두고 패치가 탐탁치 않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단 말인가. 나였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의 애인이 친구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친구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나눴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그것도 애인이 있는 앞에서 둘을 당황스럽게 만들어가며 이야기를 한다? 프란시스의 대책없는 행동에 너무 놀랐다.


어디 그 뿐만인가. 같은 무용단 소속이면서 잘 나가는 레이첼을 통해 간 저녁 식사 자리에서, 프란시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맥락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기 일쑤였다. 물론 그 식사 자리에서, 술 취한 프란시스가 말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관객에게만 인상적인 이야기이지, 그 상황에 실제로 놓여 있었던 각 인물들의 입장에선 프란시스 혼자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젊은 부부가 파리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어서 여행을 가게 되거든 그 아파트를 써도 좋다는 얘기를, 프란시스는 덥석 물어서 파리로 이틀 간 여행을 떠나버린다. 미리 계획된 여행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금사정이 타이트했던 본인의 상황에선 절대 내리지 말아야 할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것이다.


계획적이기보다는 충동적인 사람, 대화할 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반응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더 우선인 사람. 그것이 내가 본 프란시스의 모습이었다. 다만 프란시스에게 공감이 갔던 것은, 레이첼을 통해 갔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관계'에 대해 말한 부분이었다. 프란시스는 어떤 성애적인 감정이나 특정한 목적 없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다른 상황에 처해 있어도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둘만 아는 세계가 펼쳐지며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That's my person)' 라고 할 수 있는 관계를 찾는다고 말했다. 프란시스에겐 그것이 소피였을 것이다. 프란시스는 소피를 그렇게 생각했으나 소피는 그것이 프란시스가 아니라 자신의 남자친구인 패치로 여겼겠지만 말이다. 프란시스가 말하는 저 관계를 나 역시도 바랐기에 약간의 술김에 횡설수설하는 말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원해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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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너무도 달라서 소소한 행동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프란시스를, 나는 그럼 영화를 보는 내내 싫어했을까. 아니, 오히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프란시스를 응원하고 있었다. 스물 일곱이라고 말하면서 그 나이가 나이 들었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에 쌓여 스스로도 나이 들었다고도 느꼈던 프란시스. 그게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프란시스를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스물 일곱이라면, 한국 나이로는 스물 여덟에서 아홉이라는 소리다. 빼도 박도 못하는 이십대 후반인데,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안정한 직업이라 하더라도 고수익이면 그나마 나을 텐데 불안정한 데다 박봉인 일을 하는 프란시스가 얼마나 힘들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새크라멘토에 있는 부모님과 달리 홀로 뉴욕에서 자취를 하고 있으니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클까. 스무 살 때부터 부모님을 떠나 자취생활을 해 온 입장에서 프란시스의 그 일상과 생활이 밉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그저 있는 힘껏 열심히 매일을 살아내려고 하는 청춘일 뿐인데.


절친인 소피와의 관계, 극 초반에만 나온 남자친구 댄과의 관계, 직업의 문제까지 그 어느 것 하나 프란시스에게 쉬운 것이 없다. 그런데 서글프게도 그게 인생이라는 걸 이제는 실감한다. 새옹지마라는 말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하나 겪어가면서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 인생의 여정 중에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내 내가 쟁취할 수 있는 것, 예컨대 프란시스가 어색해졌던 소피와의 관계를 끝내 회복하는 것 같은 경우들이 있기도 하고 결코 회복할 수 없는, 댄과의 관계 같은 것이 있기도 하다. 그 거대한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파도 앞에서 결국 작아지고 겸허해지고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이 서글프게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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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놀랍게도, "프란시스 하"는 나에게 어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짚어 주었다. 사실은 영화의 말미에 이르기까지도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가 확실히 와닿지 않았다. 프란시스에 대한 연민과 청춘에 대한 응원만을 안고 그냥 엔딩 크레딧을 넘기면 되는 건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지만, 정말, 그게 다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 순간, 엔딩 크레딧 직전의 장면이 나왔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온 프란시스가 자신의 이름을 우편함에 넣는 장면이었다. 바로 이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영화 속에 프란시스의 성이 나온 적이 있는가? 이 마지막 장면 외에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특이하지만 "Ha" 라는 게 정말 성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프란시스가 우편함에 넣을 자기 이름을 적는 장면에서, 그는 "Frances Halladay"라고 적는다. 즉 그녀의 성은 Ha가 아니라 Halladay였던 것이다. 그런데 풀네임을 적은 종이를 우편함에 끼워보니, 우편함이 작아서 이름을 적은 종이가 비져나왔다. 그래서 프란시스는 종이를 접었다. 그리고 접힌 종이를 우편함에 끼웠다. 그 명판에 딱 맞게 들어간 이름은, 바로 "Frances Ha"였다.


무용단에서 견습 무용수로서의 자리를 잃고 도심을 떠나 자신의 모교에 일을 찾아 떠나기도 했던 프란시스가, 다시금 뉴욕으로 돌아와서 찾은 일은 바로 무용단의 사무직 일이었다. 무용단의 무용수 출신이지만 지금은 사무직을 하는 인물로부터, 견습 무용수로서는 잘리게 되었으니 사무직 일을 맡아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프란시스는 다른 곳에서 무용 일을 하게 됐다는 거짓말까지 쳐가며 자존심 상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갔던 그가 느꼈던 것은, 결국 자신이 이후의 삶을 홀로 온전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뜻밖에 만난 소피가 자신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다음날 술이 깬 소피는 전날밤 했던 말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 채 프란시스의 곁을 떠난다. 소피가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맨발로 뒤쫓아가던 프란시스가 문득 멈춰서 자신의 맨발을 내려다보던 순간, 그 어떤 내레이션도 없었지만 그 속에 어떤 생각들이 떠올랐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 후 뉴욕으로 다시 돌아와 사무직으로 일하고, 동시에 자신이 직접 무용을 하지는 않아도 안무가로서 무대를 꾸민 프란시스는 이전과 달리 화려한 부활을 한다. 사무직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되었고, 차선의 선택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무용 일을 안무가로서도 이어나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피와의 관계도 회복되었다는 것을, 두 사람만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관객들이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결과는 프란시스가 자신의 이상만을 좇지 않고 평범하고 현실적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충동적이고 즉흥적이고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었던 프란시스가, 드디어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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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빛나는 무언가를 좇고 좇아 끝내 쟁취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길도 있지만, 내가 그 길의 끝에 도달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보인다면 결국 평범한 길로 방향을 선회하여 평범한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 프란시스 할러데이라는 이름을 그 틀에 맞게 프란시스 하로 맞춰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에 영화가 끝나버리다니. 왜 이 작품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는지 그리고 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재개봉을 할 정도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가장 보통의 뉴욕에서 만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라고 말하는 소개글이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은 이 영화를 보는 모두의 이야기다. 청춘의 끝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프란시스 하

Frances Ha

 

감독 : 노아 바움백

 

출연 : 그레타 거윅(프란시스)

믹키 섬너(소피), 아담 드라이버(레브)


장르 : 청춘 무비


개봉 : 2014년 07월 17일

재개봉 : 2020년 09월 24일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86분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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