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헌법 11조 1항을 향한 첫걸음 -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다.
글 입력 2020.09.2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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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에서 남성 연예인과 여성 연예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은 늘 존재해왔다. 가령 남성 연예인은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도박을 하더라도 ‘더 좋은 모습(음악, 연기 등)으로 보답 드리겠다’라는 사과와 함께 몇 년 뒤 당당하게 TV에 나오는 반면, 여성 연예인은 짝다리를 짚었다거나 표정이 ‘띠꺼워’보인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어 기자회견을 열고도 한참 방송에 나가지 못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외형에 관해서도 이중 잣대는 여전하다. 여성 연예인은 임신 후에도 마르고 아름다운 모습이길 원하고 조금만 살이 쪄도 곳곳에서 비난하는 글을 볼 수 있다. 반면 남성 연예인은 살이 쪘다고 비난하는 일이 적지만 대신 다이어트를 하면 훈남, 경악 등의 단어를 붙인 기사가 올라온다.

 

몇 년 전부터는 꾸준하게 페미니즘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 정확히는 페미니즘 그 자체에 관한 논란이라기보다,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여성’ 연예인에게 일어나는 논란이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성우나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고 적힌 옷을 입거나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는 사진을 올린 아이돌을 향해 거센 비난이 일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옷이더라도 남성 아이돌이 입었을 때는 어떤 논란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절한 조치와 확실한 상황 설명, 때론 핑계 없는 사과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이끌어나가며 신뢰를 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뜬금없는 ‘맏며느릿감’이란 말을 듣고 있다. 한 네티즌은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맏며느릿감이란 우리 나이대에 굉장한 칭찬이다. 묵묵히 뒷바라지하면서 가족을 보살피고 희생하는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남성도 맏사위 감이라거나 하다못해 장남 감이란 말조차 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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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는 비단 연예계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곧 돌아오는 추석 명절 풍경을 생각하면 쉽다. 여성은 연령과 무관하게 모두 전을 굽고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기를 돌린 후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성은 TV를 보고 회포를 풀고 술을 마신다. 술 마신 뒤의 정리는 여성의 몫이다. 오죽하면 명절 우울증이란 단어가 생겨날 정도다.

 

코로나 19로 가게에 출입할 때마다 출입명부를 적어야 하는 요즘, 명부에 적은 전화번호로 연락하는 사람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뒷모습을 보니 취향이어서 연락을 드렸다고 하지만 연락받은 입장에선 원치 않게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일 뿐이다. 배달이나 택배, 현금영수증을 작성할 때에도 여성은 위험에 노출된다. 핸드폰 번호가 드러나는 순간 누군가가 ‘마음에 든다’며 연락할 확률이 높고 실제로 그런 사건을 빈번하게 만난다.

 

상황을 생각해보면 끝도 없다. 대전 MBC에서는 1990년대 이후 정규직 아나운서는 남성으로, 비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으로 뽑아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을 알린 아나운서는 하루 만에 진행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 되었다. 같은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OECD에 따르면 한국 남녀 임금 격차가 2012년도에는 37.4%, 2014년도에는 36.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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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본다.

 

첫 번째. 이 일련의 사건은 공통점이 있는가. 그렇다. 여성 차별적인 사건이다.

 

두 번째. 편향적인 시선인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성 차별적인 사건만 모아 놓으니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동양인 차별적인 사건을 모아둔다고 왜 종교 차별적인 사건은 다루지 않느냐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남성도 차별을 받는다, 회사에서 정수기 물통은 매번 남자만 갈지 않느냐. 이것 역시 여성 차별적 사건이다. 여성은 힘이 약하다는 편견이 남성만 물을 갈도록 강요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 번째. 이런 사건은 왜 일어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에서 엿볼 수 있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에선 페미니즘과 여성 혐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이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 등 수많은 페미니즘 중 몇 가지를 설명한 후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논제를 살피고, 페미니즘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저자 ‘강남순의 페미니즘'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안드레아 드위킨은 집단으로서의 여자는 다음과 같은 두 모델에 따라 존재 이유와 사회 내 역할이 나뉜다고 분석한다. 첫째, 사창가모델, 둘째, 농장모델이다. (132쪽 참조) 도서에 따라 위 사건을 분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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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모델은 농장에서 여성은 생물학적 기능, 즉 임신과 양육을 담당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충족하는 것으로만 그 존재가치를 지닌다(136쪽 참조). 추석에 여성만 일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가장 적절한 예일 것이다. 도서에 따르면 ‘그래봤자 여자’라는 인식이 질병관리본부장을 향해 ‘맏며느릿감’이라고 말하며 그의 전문적인 지식과 리더십을 격하시키는 원인이다. 심지어 임금 격차에도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역할만이 그 존재가치라는 시선이 들어가 있다.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에서 정유인 수영 선수는 여성 수영 선수는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계약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임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이가 아니더라도 결혼한 여성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거나, 임신을 이유로 퇴사시키는 회사는 흔한 편이다. 결혼하면 임신을 해야 하고, 임신하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사고는 농장모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임신 후 육아는 반드시 여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이러한 차별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남성이 육아 휴직을 내기 힘든 것도 이런 고정관념과 연결되어있다.

 

여성 연예인이 언제나 마르고 아름답기를 강요하고 출입명부에 적힌 여성 전화번호에 문자를 넣는 행위는 사창가모델과 연관 있다. 여성은 언제나 매혹적이고 남성을 유혹하는 요부같은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에, 임신한 연예인도 마르길 바라고 나이가 든 연예인도 젊기를 요구한다. 또 마음에 든 여성에게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한 행위더라도) 서슴없이 문자를 하는 것이다. 여성은 암묵적인 연애 대상이고, 연애 대상을 향해 구애하는 것에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이런 사창가모델로 여성을 바라보게 되기에 데이트 폭력 (연애 중 가스라이팅, 폭력 등을 행사하는 것)이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단 이유로 살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성은 당연히 남성을 위해 존재해서 거절에 과한 반응을 드러낸다. 형제코드와도 연결되어있다. 가능한 많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취하는 남성을 우상인 것처럼 포장하는 형제코드는 자연스레 여성은 남성의 부속품처럼 여기도록 만든다. 혼인한 여성에게 남성의 적극적 구애가 사라지는 원인 대부분이 그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남자의 여자라는 부분이라는 것을 보면 알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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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페미니즘은 무엇을 원하는가. 책에선 다양한 페미니즘이 있고 페미니즘마다 목적과 지향점이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여성중심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확고히 잡고 넘어간다.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뒤바꿔 여성이 가부장제의 특권층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길 바란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다.


 

1. 여성도 인간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살아감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조명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법적, 사회문화적, 생물학적, 제도적 차원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우와 위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한 법이나 제도적 평등과 같이 ‘보이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가치관 같이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도 남성과 동등한 평등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세계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평등, 자유,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2. ‘급진적’이라는 의미는 ‘뿌리로 간다’는 의미다. 페미니즘이 ‘여성도 인간’이라는 주장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와 인식에 이의제기를 하게 된다. 우리가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물음표를 붙이면서 ‘탈자연화’가 시작된다. 근원적인 물음, 즉 ‘뿌리물음’을 하면서 페미니즘은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또는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왜’라는 물음표를 붙여보는 것이 바로 ‘뿌리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뿌리물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탈자연화’다.

 

(65쪽 참조)

 

 

가령 ‘부모’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왜 아버지가 먼저 오고 어머니는 나중에 오는지, ‘근엄한 아버지와 인자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는 보편적인 (물론 실사용은 하지 않지만) 자기소개서 구절에서 왜 아버지는 근엄하고 어머니는 인자하다고 묘사하는지, 드라마와 책에서 왜 부부 중 여성은 남성에게 존댓말을 하고 남성은 여성에게 하대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모두 ‘탈자연화’다. 그냥 원래 그랬기 때문에, 관습적으로라는 말은 이의제기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질문을 제기하면서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차별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차별은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종교, 나이, 학력, 직업, 장애인 등 다양한 곳에서 나타난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다. 이를 확대하면 어린아이도, 흑인도, 이슬람교도도, 초등학교 졸업자도, 장애인도, 성적 소수자도 모두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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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헌법 제 11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이 헌법 조항을 현실로 옮겨놓기 위한 사상이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서술한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평등하라 말하며 여성도 남성과 같이 생각한 예수 역시 페미니스트란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

헌법 11조 1항이 참 무색하다. 항상 그랬다.

 

기독교가 절을 불태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힌두교도에게 소고기를, 이슬람교도에게 돼지고기를 먹이려는 행위도 종종 논란거리가 된다. ‘동성애자에 대해 별생각은 없는데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어’ 따위의 말에 트렌스젠더와 동성애자 같은 성 소수자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다. 노키즈존이 늘어나는데 노인을 상대로 한 사기와 폭행은 줄지 않는다. 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기란 어려운데 수화를 농담으로 소비하는 경우는 꽤 많다.

 

버닝썬 게이트와 N번 방 사건이 터졌고, 어떤 이는 생활고에 음식을 훔친 자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받았다. 세계적으로 그렇다. 홍콩 시위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인권 유린이 난무하고 코로나 19가 퍼진 뒤 서양에서 동양인 차별이 심해졌다. 이 역시 상황을 말하자면 끝도 없다.

 

인류 역사는 차별과 탄압으로 이루어졌다. 외면하고 싶고 무시하고 싶은 일이 가득하다. 그러나 외면하면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차별이 더욱 심해질 뿐이다. 인류 역사는 탄압에 대한 저항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에서는 다섯 가지 과제를 내어준다.

 

 

1. 침묵하지 말고 문제를 제기 하자.
2. 혐오와 차별의 문제는 피해 당사자만이 아닌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자.
3. 다양한 양태의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운동에 연대하자.
4. 나 자신의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보는 성찰적 용기를 키우자.
5. 혐오를 조장하고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것들에 ‘페미니스트 보이콧’을 하자.

 

(295쪽 참조)

 

 

2번 문항을 살펴보자. 여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당장은 다른 문제 (환경, 통일, 전쟁 등)이 더 시급하다.’, ‘옛날에야 그랬지만 지금은 평등하다.’, ‘다들 힘들다. 여자만 그런 게 아니라 원래 다 그렇다.’ ‘원래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는 역할도 다르다.’일 것이다. 도서에서는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네 가지 방식으로 사소화의 방식, 특수화의 방식, 보편화의 방식, 영성화의 방식을 말한다. 얼마나 익숙한지 보자마자 이미 들어본 말이 줄줄이 생각날 정도다. 이는 나와 남을 구분 짓기 때문에,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중요한 점은 언제나 가해자인 사람도, 언제나 피해자인 사람도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있을 수도 있겠으나, 자신을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직장에선 노동자로 억압받던 남성도 집에선 가부장제의 특권층이 될 수 있고, 집에선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일하던 여성도 인종적으론 백인이란 특권층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언제나 나의 인식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나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그 노력의 첫걸음으로 잘 어울리는 도서다.

 

평상시에 페미니즘에 대해 궁금했다면, 혹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면 이 도서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페미니즘 이해의 시작으로 읽기 적합하다. 에필로그에 적혀있든 이 도서의 모든 것이 옳다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강남순의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쳐내면서 다른 책을 읽고 생각하다 보면 조금씩 ‘나의 페미니즘’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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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
 

지은이 : 강남순

출판사 : 한길사

분야
여성학

규격
136*205

쪽 수 : 324쪽

발행일
2020년 02월 20일

정가 : 17,000원

ISBN
978-89-356-6337-8 (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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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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