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삶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예술, 루이즈 부르주아

"내 작업은 고통과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투쟁을 위해 존재한다"
글 입력 2020.09.2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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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Christopher Felver.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

 

1911년 12월 25일 프랑스 태생의 여성 예술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작품으로 표출함으로써 그 고통과 감정을 극복, 정화, 치유하는 예술 작업을 평생에 걸쳐 이어왔다. 특정한 사조나 지배적인 미술 흐름에 속하지 않은 채 다양한 변화와 실험으로 삶의 고백을 예술로 펼쳐 온 부르주아는 1982년 70여 세가 되어서야 뉴욕현대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통해 비로소 세계에 알려지며 현대미술계에서 중요한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31일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이곳에 담긴 일련의 글들은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에 관한 여러 기록에 기반한 필자의 개인적인 해석과 이해로 쓰인 허구적 서사,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글은 루이즈 부르주아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연도라고 언급했던,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1932년을 기반으로 하여 쓴 부르주아의 가상의 일기입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인해 불안정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특히 어린 부르주아의 가정 영어 교사 세이디와 불륜을 저지르고, 어머니를 두고도 가정교사를 정부로 삼아 10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게 한 아버지는 부르주아에게 평생 용서할 수 없는 배신감과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불륜도, 자신이 얻은 병도 모두 말하지 않고 숨긴 채 홀로 견뎌냈습니다. 부르주아는 모든 걸 침묵하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학업을 잠시 그만두면서까지 어머니를 정성으로 간호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던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자극으로 인해 극심한 상처와 우울증에 시달린 부르주아는 강에 뛰어드는 극단적인 시도를 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분노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그녀를 구해냅니다.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낸 이후 루이즈 부르주아는 1938년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미국에서 루이즈 부르주아는 남편과 세 아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그리고 동시에 예술가로서 미술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하며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됩니다.


두 번째 글은 “그녀가 매주 일요일에 열었던 선데이 살롱에 내가 직접 찾아가 대화한다면”을 가정하고 상상하며 쓴 것입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매주 일요일에 젊은 예술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선데이 살롱을 열었습니다. 부르주아의 살롱은 주로 젊은 예술가들이 가져온 작품을 두고 그에 대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만큼 아마 실제로는 이 글에 쓰인 만큼의 긴 대화보다는 더 짧고 간단하게 말이 오고 갔을 거라 생각되었지만, 상상인 만큼(?) 조금 더 길게 써보았습니다. 이 글 혹은 대화에는 루이즈 부르주아에 대한 제 생각을 함께 녹여내 보았습니다.


세 번째 글은 다시 루이즈 부르주아의 일기로 돌아옵니다. 선데이 살롱을 마친 일요일 밤을 가정하며 말년에 그린 그녀의 드로잉과 함께 삶을 위한 투쟁과 여정의 끝에서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며 써보았습니다.

 

 


 


1.

1932년 9월 - 그녀의 일기


 

나는 살아있었다. 살아있지만 그다지 기쁘지 않다. 괴롭다. 어제 눈을 다시 뜨니 - 눈이 떠졌다 - 짙은 어둠이 아닌 내 방, 내 침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떠올리고 싶지 않다. 언니는 나를 강에서 건져낸 사람이 아버지였다고 했다. 말도 안 된다. 나를 강으로 몰고 간 건 그 사람이었다. 아, 분노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언니의 말에 나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끔찍한 전제군주. 그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이토록 아프지 않았을까. 조금 더 불행하지 않게, 그럴 수 있었을까.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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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는 너무도 괴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병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이디가 아버지의 정부가 되는 순간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늘 모든 걸 혼자 떠안았던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홀로 버티다가....그렇게. 왜 어머니는 세이디에 대해 아버지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을까? 어머니가 정말 원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어머니는 그토록 모든 걸 침묵해야 했을까?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하나 회상하는 것이 끔찍하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최악이었다. 손이 떨린다. 살아갈 엄두가, 더이상 이 프랑스에 머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제는? 해가 뜨면 봐야 하는 텅 빈 방을, 그런 어머니의 공간을 어떻게 곁에 두고 살아가야 할까. 끔찍하다.


소중한 사람이 없다. 일과 예술의 기쁨을 알려주던 태피스트리 갤러리에도, 결국 갇혀있으면서도 묵묵히 가정을 위해 견뎌내며 살아가던 집에도, 그러니까 어머니가 있던 곳에 이제 어머니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내 곁에 남은 유일한 사람, 내게 필요한 사람이 없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죽음이 너무도 두렵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테이블인데, 혼자 거들먹거리며 앉아 있는 아버지가 주도하는 두렵고 위협적인 가족의 저녁 식탁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어머니와 아이들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침묵하며 앉는다. 물론 어머니는 독재자인 자신의 남편을 만족시키려 하지만, 아이들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남동생과 언니, 나를 포함한 세 명, 그리고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어 우리 부모님이 입양한 다른 두 아이, 우리는 이렇게 다섯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쳐다보면서 신경질을 부려 댔고, 우리에게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설명하곤 했다. 그래서 우린 격분했고 그를 잡아 테이블로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의 사지를 조각조각 해체하였고 계속해서 먹어댔다.”

 

- 루이즈 부르주아, 작품 <아버지의 파괴>(1974)에 대하여

 

 



 

  

2.

200X년 어느 일요일 - 나의 기록


 

뉴욕 첼시. 박하향을 머금은 듯 선선한 공기가 감도는 가을. 같은 듯 다른 듯 저마다의 브라운 빛을 띤 건물들을 배경 삼아 나무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워진 길을 따라 걷는 중이다. 여유롭게 나왔지만, 혹시 늦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타박 타박 타박. 간만에 꺼내 신은 워커가 바닥을 경쾌하게 두들긴다. 그 박자가 꼭 내 심장 박동 같았다. 한가한 가을 풍경에 놓인 겉모습과 달리 마음속은 긴장에 설렘까지 떠안고 온갖 걱정이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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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거장. 그러나 그 어떤 미술사적인 흐름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만을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추구한 예술가. 끔찍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마주하고 표현하며 이뤄내는 치유로 현재의 삶을 살고자 한 예술가.


나는 그녀를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었다. 한때 우울증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우연히 마주한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나로서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죽어있던 내 마음을 떨리게 했다. 사진으로 마주한 <마망>은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끼게 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용서할 수 없는 상처와 배신, 혼란스러운 성생활을 목격하며 얻은 트라우마, 어머니의 죽음, 그러한 끔찍한 기억을 예술이라는 것으로 꺼내 놓은 그녀가 끝내 표현한 것은 그녀에게 정말 소중했던 어머니였다. 수십 년의 움직임이 비로소 피워낸 것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이자 친구였던 존재라니. 알 수 없는 감동이 요동쳤다. 사진으로 거대한 <마망>을 보며 작은 사람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감정의 덩어리,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해방이란 것이 무엇인지 아마 처음으로 이해하고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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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 마망, 1999

(wikipedia)

 

 

“나의 절친한 친구는 어머니였고, 어머니는 한 마리의 거미처럼 지적이고 인내심 있고 깨끗하고, 쓸모 있으며, 합리적이며 꼭 필요한 분이었다. 어머니는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분이셨다.”

- 루이즈 부르주아

 

그녀의 살롱에 참석하려면 내가 직접 창작한 작품을 들고 가야 했다. 그래서 오른손에 들린 종이백에는 내가 그린 드로잉과 소책자 형태로 제작한 작가 노트가 들어 있다. 떨린다. 이 보잘것없는 작품으로 그녀와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그녀의 질문에 당황해서 말문이 막히면 어떡하지. 하, 정말 나는 멍청해! 말 좀 잘하고 싶은데. 그리고, 어... 감기도 걸리지 않았으니 살롱 참여 조건은 다 갖추었다. 놓고 온 건 없겠지? 딱히 짐작이 가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별것이 다 신경 쓰였다.


멀찍이서 어느 집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아, 저긴가 보다. 2시 52분. 3시 정각에 문이 열릴 터였다. 얼핏 보면 공통점 하나 없는 작은 군중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한숨 돌리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애매한 시간의 기다림은 느리지만,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윽고 한 남성이 문이 열고 나와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계단을 올라가니 세월이 거칠게 마모한 낡은 흔적 가득한 복도가 나왔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시간이 지나간 공간에 사람의 흔적도 잔뜩 쌓인 거실이 나타났다. 낡은 레몬 빛의 간이 유리문 앞에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테이블 옆에는 4개의 스탠드와 함께 아마 작업에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재료와 자료,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 위로는 뉴스 기사, 그녀의 사진, 드로잉으로 보이는 온갖 종이가 한데 어우러져 제멋대로 벽을 가득 채우며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다른 한쪽 벽에는 그녀의 기록, 자료, 책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칸막이라는 최소한의 규칙 속에서 켜켜이 수직과 수평으로 뒤섞여 쌓여있었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으니 아까 그 남성이 테이블에 여러 음료와 술, 초콜릿, 여러 간식을 준비해두고 나서 레몬 빛 문 너머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즈 부르주아가 남성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아이보리 셔츠 원피스에 네이비색의 카디건을 걸친, 왠지 친근한 작고 아담한 할머니의 인상이 느껴졌다. 겹겹이 생긴 주름 사이에서도 그녀의 눈빛은 형형한 빛을 내고 있었다. 1997년 이후론 건강과 스케줄 상으로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지만, 매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려는 그녀의 노력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씩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대화하기도 하고, 가져온 작품의 크기 때문에 바닥에 작품을 펼쳐놓거나, 아까 나는 누군가의 작품 캔버스를 잠시 함께 들어주고 있었다. 작품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정말 또렷하다. 예술을 향한 그녀의 시선은 90여 년의 시간도 가로채지 못했나 보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어 나는 그녀가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아무도 모르게 심호흡을 내뱉으며.


(LB = 루이즈 부르주아 / YC = 예찬)


LB: 이름이 무엇이죠?


YC: 예찬이라고 합니다. 혹시 어려우시다면 영어 이름인 캐서린이라 불러주세요.


LB: 좋아요 캐시, 작품을 보여주겠어요?


YC: (드로잉북을 꺼내 옆에 남성에게 건네며) 몇 개의 펜 드로잉을 가져왔어요.

 

 

수백, 아마 수천 개의 선이 그려진 장면을 그녀는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습관적으로 입술을 안으로 오므리고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루이즈 부르주아가 내 그림을 보다니. 이 얼마나 부끄럽고 신기한 일인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다른 페이지로 넘겨도 괜찮냐는 남성의 질문에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잠자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그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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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LB: (계속 그림을 보면서) 이것이 무엇이죠?


YC: 제 내면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종종 마음이라는 덩어리가 있으면 그것이 한 꺼풀 벗겨져 그 안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장면이 눈에 펼쳐질 거란 상상을 했어요.


LB: 왜 이것을 그린거죠?


YC: (잠시 고민하더니) 꺼내놓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제 상태를 그대로 견디고 버티기에는 너무 답답했고,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혀보려고 선을 긋기 시작했어요. 정리되지 않은 채로, 저처럼 우글거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제 내면의 상태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그리게 되었어요. 일종의 수행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헤아릴 수 없는 선을 그리며 저 자신을 홀로 마주하려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으니까요.

 


늘 그랬듯 긴장해서 말이 아무렇게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제는 질문도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나는 긴장했고 조금 당황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계속 그림을 살펴봤다. 내 대답이 이상했던가. 이윽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연다.

 

 

LB: 그렇군요. 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이죠?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했나요?


YC: 어...사실 잘 모르겠어요. 분명 그 그림은 당시의 제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쌓였던 상처, 트라우마, 불안에 휩싸인 기분이었어요. 너무 벅차지만 살고 싶어서 속으로는 온갖 발버둥을 친 것 같아요. 나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결국 나온 게 이 드로잉이고, 이 장면은 한편으론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곤 했어요. 그러니까, (망설이더니) 결국 다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LB: 상처와 트라우마. 그것이 무엇이죠? 그것을 싫어하나요?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LB: 당신은 그것을 마주해야 해요. 제 생각에는 당신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어요.


YC: 사실 그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희미한 기억처럼 남아있는데 잔뜩 쌓인 것만 같고. 그것을 싫어한다고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결국 제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처럼 느껴져요.


LB: 왜냐하면 당신을 아직 그것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으니까요. 아니,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당신은 싫어하고, 분노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대상도 찾지 못한 것 같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당신의 선은 끔찍할 정도로 제 규칙 안에 갇혀있으려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YC: 왠지 그런 것 같아요. 당신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LB: 제 말이 아닌,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이 선들이 아니라면, 꽃들이 아니라면, 당신은 무엇을 말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당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이 정말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요. 당신이 스스로를 제대로 마주하길 바라요.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의 그 공포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신의 삶이 온전하지 못할 테니까요.


YC: 당신의 말을 듣다 보니 기억나는 게 있어요. 제 어렸을 적의 기억은 항상 남을 위해 저를 그들에게 맞춰야 했던,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순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활발한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좋은 척해보려 했고, 저는 노력하는데 여전히 어른들은 낯을 많이 가린다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제 기분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만 하게 되었고, 그것이 당연하지 못한 제 자신이 잘못된 존재처럼 느껴지곤 했어요. 그리고 여전히…. 그런 순간을 꿈으로 꾸곤 해요. 너무도 구체적인 사건으로 너무도 선명하게. 당신 말대로라면, 지금까지 그것을 직시하거나 분노하지 못하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그런 제 자신에 시달리는 것 같기도 해요.

 

 

정신없이 이야기를 늘어놓고 어느 순간 갈 길 잃은 시선을 다시 앞으로 두자 루이즈 부르주아는 어딘가 미소를 띠는 것 같으면서도 무표정인 표정으로 시선을 살짝 올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내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순간 지나치게 나만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스러워졌다. 습관적으로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마음이 일었다.

 

 

YC: 아, 제 말이 너무 길었던 것 같네요. 죄ㅅ...


LB: 아니에요, 좋아요.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런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이죠?


YC: 예술이요? 어... 결국 저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LB: 흥미롭군요. 왜 당신에게 예술이 그런 것이 된 거죠?


YC: 적어도, 제가 하는 예술은, 제가 예술이라는 것으로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순간은 이해할 수 없는 제 자신을 마주하고 견뎌내려는 것이었어요. 자기혐오로 뒤덮이기 전에, 무너지기 전에 지금 당장의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그것이었거든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다시금 내 드로잉 북 서너 장을 넘기며 바라보았다. 내가 봐도 징그러운 그림. 유일하게 그려낼 수 있던 것. 그런 것이 그려진 종이 위를.

 

 

LB: 같이 가져온 글을 읽어보죠.


YC: 아, 네!


LB: 이런 얘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듣다 보니 내 어릴 적이 떠오르는군요. 당신의 그런 어린 시절은 정말 괴로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그녀는 아무 페이지를 넘기며 글을 읽었다. 그리 오래 읽지는 않았다.



LB: 작업 노트라고 하지만 꼭 일기 같네요. (웃으며) 그리고 엄청 길어요. 책을 내도 되겠어요.


YC: (한 층 들뜬 목소리로) 그렇죠? 항상 무엇인가를 쓰면 엄청나게 길어지는 사람인 것 같아요. 굳이 길게 쓸 필요 없고 다 쓸 필요 없는데, 사람들은 다 읽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냥 계속 제가 원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웃으며) 이것도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생각에 많이 줄인 거예요.


LB: 그렇군요. 그림보다는 어쩌면 글로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해명하려 하는군요. 만약 그런 목적으로 계속 예술을 할 거라면 글에서 드러나는 표출에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아니, 글을 써도 되겠어요.


YC: 그런가요? 저는 그런 노트가 작품이 담지 못한 실제적인 이야기를 담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LB: 혹시 글을 쓸 생각은 없나요?


YC: (불쑥 던져진 질문에 잠시 당황하다) 그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글도 쉽지 않지만 꽤나 즐겁거든요.


LB: 그것이 당신을 지금의 당신의 감정을 치유한다면 계속하세요.


YC: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LB: 드로잉 중에 붉은 색으로 그려진 살 덩어리 같은 것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YC: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너무 영광이어요.


LB: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마워요. 무엇보다, 아까 당신이 한 말. 그러니까 당신에게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 그걸 기억했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당신이 저를 찾아온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아닐 수도 있지만요. 크게 좋은 말을 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YC: 아니에요. 이미 너무 충분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대화를 잊지 못할 거에요.


LB: 좋아요. (미소 지으며) 이제 돌아가보세요.

 

 


 

 

3.

그날, 일요일 밤 - 그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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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살롱이 막 마무리됐다. 일주일이 그렇게 마무리되고 시작된다. 오늘도 많은 젊은 학생 그리고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그들의 눈빛은 늘 열정으로,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가끔은 그런 눈빛이 부담스럽다. 나는 그들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의 말을, 어떤 거창한 말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목적이 있는 호기심을 가지고 나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도 있지만, 가끔 그것 역시 부담스럽다. 나는 내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삶, 트라우마,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무엇이 그들을 예술을 하게 했는지. 그렇게 표출하고 말하게 했는지. 나는 그들이 계속해서 표현하고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요즘은 꽃을 그린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냥 내가 좋아하는 붉은 색으로. 누구를 향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프랑스에 두고 온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 남편과 미국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해방감이 무색하게 프랑스에 두고 온 그들을 향해 느꼈던 죄책감도 기억난다. 여전히 끔찍한 아버지의 부정, 모든 것을 홀로 떠안다가 나를 떠나버린 어머니. 나의 첫 가족. 평생 그들을 작품으로 표출했다. 분노하고 떨었다. 지금의 삶을 살기 위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버텨내어 지금의 삶을 살기 위해서. 어쩌면 나는 필연적으로 예술가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삶의 끝을 향해가며 이 꽃들을 그리는 것은 곧 이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임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냥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순간까지 기꺼이 마주하여 그들을 스스로 용서할 것이다. 그렇게 나의 삶을 온전히 끌어안을 것이다.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와도 같다. 이는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해 주고, 어머니가 날 버린 것을 용서해 준다. 또한 아버지를 향한 나의 적개심도 사그라지게 한다. 꽃은 나에게 있어 사과의 편지이고 부활과 보상을 이야기한다.”

 

- 루이즈 부르주아, 꽃 드로잉 작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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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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