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연한 것의 역사 [도서]

EBS '문명과 역사', 현대사회의 본질을 수학에서 찾기
글 입력 2020.09.1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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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 열쇠가 되다


 

어떤 대발견은 때로 하나의 새로운 문명을 여는 시발점이 되곤 한다. 정수의 세계를 연 피타고라스, 좌표평면의 세계를 연 데카르트, 우주를 향한 추론을 책상에서 증명해 낸 푸앵카레와 페렐만. 그들은 대다수가 알지 못했던 문명 너머의 새로운 지평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딛는 선구자이자 개척자들이다.

 

사실, 인도에서 0이 처음 발견되어 비로소 인류가 공허의 존재성을 깨달았다든가, 중세에는 유럽이 아닌 이슬람이 자연과학의 용광로였다든가 하는 것들은 초중고 기초교육과정을 거치며 꽤나 자주 들어 본 수학사 설명의 레퍼토리다. 곧 달나라 여행이 현실이 될 지도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1020 세대들에게, 그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제 5장에서부터 시작하는 미적분부터가 아닐까 싶다.

 

모의고사 21번, 30번에서 미적분을 마주치는 것만큼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은 모의고사 문제의 악몽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청년들에게 미적분이 얼마나 흥미로운 학문인지 일깨워 준다.

 

 

 

수학의 본질과 현대사회


 

공은 제아무리 변형시켜도 절대 컵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컵에는 구멍이 나 있고 공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각각은 컵과 구멍의 본질이기 때문에, 컵을 가지고 제아무리 1000개의 다른 모양을 만든다고 헤도 절대로 공이 되지는 못한다. 푸앵카레의 추론 속 우주는 컵보다 공에 가까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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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없고, 닫힌 3차원의 어떤 우주를 다른 모양으로 변형시킬 수 있을까?” 푸앵카레가 연 새로운 지평은 바로 ‘위상동형’이다.

 

앞서 이야기한 ‘본질’ 논의에 따라 구멍 없이 닫힌 도형들은 정사면체든, 정이십면체든 모든 구와 본질을 같이 한다. 즉, 그가 열어 보인 새로운 세상에서는 겉이 달라 보이더라도 본질만 같으면 하나의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수학계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전반에 ‘본질’에 대해 유의미한 화두를 던진다. 수학에 대한 탐구가 정교해지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인간 사회는 발맞추어 격동하고, 그 격동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어든다. 즉, 수학과 인문학은 정반대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동인으로 작용하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꺠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책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다. 물론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각기 이 문장을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패러다임 개념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에도 손색없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수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수리적 사고를 거쳐 세상을 이해해 왔다. 즉 수리적 사고는 현대인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의 기반이다.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몇 가지 수학적 대발견의 위대함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고자 하는 도전이 얼마나 숭고한 것이며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일인지 보여 주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때때로 개척자들은 진실을 끄집어 낸 대가로 시대에 거부당하곤 한다. 감히 무리수의 영역을 들춰낸 죄로 결국 존재가 지워지는 대가를 치러야 했던 히파수스, 이를 비단 책에서 소개한 고대의 일화 정도로 여기기에는 오늘날에까지 던지는 시사점이 상당히 깊다.

 

“우리는 언젠가 기존의 사고방식을 부정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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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거부를 넘어 새로움으로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수학자들은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겉은 다르더라도 본질만 같다면 하나의 이름 아래 놓인다는 푸앵카레의 말마따나, 주체가 누구든지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그 과정에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그 자체로 유의미한 수리적 사고를 해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수학이란, 본질을 잊지 않게 하는 길잡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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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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