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 라는 질문에 망설이는 이유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9.1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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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듣는 여성학 수업에서 교수는 첫 강의 전에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에는 당신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나요? 라는 것과 당신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설문지를 제출한 후 며칠 뒤 수업에서 교수는 설문조사 결과가 인상깊었다고 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대다수의 참여자가 ‘예', 즉 관심이 있다고 답변한 반면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절반만이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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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결과를 곱씹어보니 답변의 인과관계가 느슨한게 보였다. ‘대다수의 답변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하였지만, 본인이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에는 절반 정도의 응답자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페미니즘 사상에 관심이 있다면, 페미니즘을 실천할 경향이 있을 것이고, 페미니스트가 될 확률이 높아야 할텐데. 페미니즘에 관심은 있어도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방금 문장에 페미니즘 대신 다른 용어를 넣어보자. 채식을 지향하는 비거니즘을 넣어보면 어떨까. ‘비거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그는 채식주의를 실천할 경향이 있을 것이고, 채식주의자가 될 확률 역시 높다'. 이 문장의 인과관계는 자연스럽게 납득이 된다.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처럼,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도 똑같이 현실에서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실천하고 싶을텐데, 이를 망설이게 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 역시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던 기억도 나면서.

 

 

 

1. 페미니즘의 실천 방법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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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하기 망설여지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나의 경우는 이런 고민 때문에 망설였다. ‘내가 당장 성평등을 주장하면서 할 수 있는 액션이 무엇이 있지?’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품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탈코르셋 운동을 하던데. 나는 머리를 계속 기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걸까?’ 같은.


내가 한번도 페미니즘과 여성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헷갈리던 문제들이었다. 나는 탈코르셋을 해야지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나처럼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을 공유하려고 한다. 고민의 해결을 위해서는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와 실천 방법, 두 가지를 알면 된다.


먼저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성평등이다. 여성 및 성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깨닫고, 이들이 획득해야 하는 권리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일상의 불평등에 대해서 저항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


하나의 목표를 가진 페미니즘은, 실천 방식에서는 모두 차이가 있다. 에코 여성주의 이론, 전 지구적 여성주의 이론, 포스트모던 여성주의 이론, 급진적 여성주의 이론 등 다양한 이론이 있고  본인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냐에 따라서 실천 방법이 달라진다.


한마디로, 페미니스트란 ‘궁극적 목표는 성평등'이지만, ‘실천 방식에 있어서는 상이한'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페미니스트 중에는 ‘탈코르셋을 하는 페미니스트'가 있고, ‘탈코르셋을 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페미니스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 모두는 페미니스트에 해당된다.

 

 


2. 여성 우월주의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상이라는 오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하기 망설여지는 첫 번째 이유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실천 방법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현재 대다수의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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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의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같은 그룹 멤버인 조이가 페미니스트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고 실망하고, 에이핑크의 손나은이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적힌 핸드폰 케이스를 하자 날선 반응들이 많았었다.


페미니스트가 주홍글씨가 되어서 그 사람을 마음대로 괴롭힐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거라면 그건 슬픈 일이었다.


내가 ‘탈코르셋을 해야 페미니스트인가?’라고 생각했던 과거처럼, 페미니즘 역시 ‘여성 우월주의로 인해 역차별을 만들어내는 이기적인 사상'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을 수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오해가 커지고 커져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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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타자화 시키는 사회는 여성뿐만 아닌 남성에게도 힘든 사회다. 남성에게 과도한 힘과 의무를 부여하고 남성의 섬세함은 곧 나약한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남성들도 자신의 섬세함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고, 여성들도 자신의 강인함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곧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의 기조인 '여성 억압 해방'이 잘못 전달되어 '여성만을 위한 이기적인 여성주의 운동'이 된 것 같다.

 

사실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의 딸, ~의 엄마, ~의 아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타자화 되지 말고, 주체로서 당당히 살아가세요!' 라고 주장함과 동시에 남성들에게는 '조금 더 힘을 빼도 된다고, 그렇게 많은 힘과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무거운 짐을 우리 함께 들자고' 말을 하고 있는 학문이다.


새로운 역할 모델을 제시하여 서로 도우면서 살자고, 우리 잘해봅시다. 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한쪽의 편의만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학문인걸까. 나는 페미니즘이 쓴 누명을 벗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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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여도 탈코르셋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난 설문조사 답변자들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하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덜 긴장하게 되었을까?


페미니즘은 한쪽의 이익만을 위한 사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페미니즘이란 우리 모두를 위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 사람의 마음에는 변화가 있었을까?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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