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란 빛의 오후로 초대합니다 [사람]

글 입력 2020.09.0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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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your color? I wanna know


 

“What’s your color? I wanna know”

 

가수 스텔라장의 라는 곡에선 다음과 같은 두 문장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에 대답하듯 곡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I could be every color you like”.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 초록색, 분홍색이나 검은색 또는 흰색까지, 여러 개의 색으로 다채로이 표현될 수 있는 나를 노래한 곡.

 

하지만 언젠가 ‘단 한 가지의 색으로써 표현될 수 있는 다채로움’이라는 모순적인 구절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빨간색’, ‘주황색’ 등으로 대개 축약되어 불리는 어떠한 색이 실은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스펙트럼 내 다채로운 이미지들에 관하여.

 

이처럼, 평면적인 방식으로 이름 지어지는 하나의 색이 입체성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다채로움이란 ‘일곱 빛깔 무지개’가 아니어도 성립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어떤 색 좋아하세요?


 

“어떤 색 좋아하세요?”

 

그리하여 진부하고 뻔하지만, 색에 관해 묻는 걸 좋아한다. 언뜻 보면 단순한 정보성을 띠는 질문 같지만, 실은 당신이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보다도 색에 녹아든 당신의 취향이라던가 삶이 궁금해 묻는 질문이다.

 

가령 당신이 애정하는 색 덕에 당신과 엮이게 된 사물이나 자연물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 그 색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변과 그 과정에 놓인 당신의 고민하는 눈동자와 빙빙 돌고 돌아 완성되는 당신만의 묘사나 감상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혹자는 이렇게 물을 테다.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또는 나를 보면 어떤 색이 떠오르는지에 대한 질문이란, 결국 ‘귀여운 노란색’, ‘순수한 흰색’ 등 어릴 적 즐겨 하던 심리테스트처럼 평면적이고 납작한 취향에 관한 것이 아닌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색은 각각의 색에 깃든 관습적인 상징의 이미지로써 소비되는 경우가 대다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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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찬찬히 적어보는 기록은, 낭만에 관한 기록이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라는 뜻의 단어이자, 나아가 ‘물결 랑(浪)’ 자에 ‘흩어질 만(漫)’ 자를 쓰는 단어 ‘낭만’. 색에 대해 기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낭만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생명을 입체적인 시선으로 또 살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렌즈인 거라고 여긴다. 파란색 크레파스로만 쓱쓱 칠해지는 도화지 속 바다의 실체를, 즉 바닷물을 손으로 떠담았을 땐 투명한 색이면서 해심에 따라 또 햇빛의 양에 따라서도 제각각 다른 채도와 명도의 색을 띤다는 어쩌면 당연한 바다의 실체를 인지하게 되는 데까지 필요한 것이 낭만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한 가지의 색을 통해 이끌려 비로소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한 번 더’ 시선과 손길을 주게 되는 것의 의의를 기록해본다. 노란빛이 감돌던 어느 오후에 당신을 초대한다.

 

 

 

금잔화, 나를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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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5. 25. 카페 앞에서

 

 

학교 앞 자주 가던 카페의 자리를 기억한다. 쿠션이 가득한 푹신한 의자 위로 적당한 크기의 창문이 달려있고, 창문을 마주 보고 앉으면 네모난 창에 일렁이는 금잔화 밭을 내다볼 수 있었던 자리.

 

카페는 몇 달 전 포차로 개조되는 바람에 이제는 그 자리에서 커피 대신 술을 홀짝여야 해서인지 더욱 애틋해진 낮의 풍경이기도 하다. 낮에 뜨는 별을 보는 느낌으로, 봄바람에 흔들리는 금잔화와 그 움직임을 따라 테이블에 일렁이던 꽃의 그림자를 응시하는 걸 즐겼다.

 

그래서 나는 카페로 들어가기 전의 길목에서부터 창문 너머의, 그러니까 카페 앞의 금잔화 밭에 매번 발걸음을 빼앗겼다. 카페에 매일 드나들면서도 매번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풍경. 카페 안에서 창문으로 내다본 풍경의 이름이 별이었다면 창문이라는 방해물 없이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곤 했던 그 풍경은 가히 별밭이라 부를 수 있었다. 화사한 5월의 별밭이 내뿜는 명랑함과 반짝임을 좋아했다. 덕분에 사진첩엔 같은 각도로 찍힌 같은 풍경의 사진이 여러 장 줄지어 놓여 있다.

 

그래서인지 너는 소망과 희망을 먹고 자랄 거라는 기대를 품고 금잔화 밭을 바라보던 나는, 언젠가 우연히 그 꽃말을 알게 됐을 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탄과 실망과 비애의 꽃. 다를 것 없이 여전히 노란색의 빛을 띠고 있었지만 묘하게 달라진 채도의 풍경 앞에 나는 이전과는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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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노란색이 통념적으로 갖는 이미지란 에너지와 밝음인 듯하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노란색에 끌리게 된 것, 그리고 타인에게 나를 보면 무슨 색이 떠오르냐고 묻고선 노란색이라는 답변을 내심 기대했던 것 모두 명랑하고 순수한 또 생동감 넘치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또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한편으로는 모순적으로 에너지 넘치고 활동적인 것과는 대조적인 어떤 면모도 함께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도 기억한다.

 

그래서 금잔화라는 꽃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웠던 봄이 있었다. 나 또한 어떠한 틀에 하나의 색을 가두어왔다는 것, 그리고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너를 정의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을 경험했던 날과, 노란색을 비탄과 비애를 품고서도 희망이 될 수 있는 색으로 넓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경험했던 날이었다.

 

너에게도 기쁨과 슬픔이 모두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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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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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이불
    • 글이 알록달록 참 예뻐요. 노란 빛에 눈이 부시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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