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반려영화 한 편 들여보세요 [영화]

초가을이 되면 나를 찾아오는 것들
글 입력 2020.09.0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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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다. 올해 9월은 교도관 같다. 집 안에 꼼짝없이 갇혀 무수히 흐르는 구름으로 시간을 꼽고 꼽다 고개를 떨굴 때쯤. 미묘하게 변해가는 공기 냄새가 저벅저벅 걸어와 나를 내려다보며 약간은 단호하게 말한다. ‘9월이다.’ 그러니까, 2020년의 4분의 3이 흘러갔다는 소식이 선언처럼 머리를 퍼뜩 때린다.


다시금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뒤죽박죽한 올해를 씻어 내주는 건 아닐까, 나를 꺼내주는 건 아닐까. 매번 좌절되었던 헤픈 희망을 품고선 마음을 실어 가을을 그려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많은 사람도 착잡한 마음으로 ‘9월이네...’ 뇌까리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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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de ya- dancing in September -’ 이제 9월이 되었다고 그 유명한 노래, ‘September’를 라디오에서 하루 만에 네 번이나 들었다.

 

9월마다 이 노래를 듣다 보니 이제는 매해 9월에 이걸 듣던 때의 상황과 그때의 느낌이 좌르르 펼쳐진다. 불과 몇 년간 몇 번의 september를 듣는 동안 나는 항상 바뀌고 변해 있었다.

 

노래 안에 나를 담으면 그 기록을 누구에게 들키진 않을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까먹을 일도 없이 멜로디 하나하나와 결합하여, 마음에 새겨진 가장 확실한 이동식 일기장이 되어준다.

 

 

 

2.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반팔 위 가벼운 겉옷을 벗었다 걸치기를 반복하는 이쯤이 되면 항상 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그러니까, 이때가 되면 늘 김종관 감독의 영화 [최악의 하루]를 본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봤으니까, 올해로 오 년 째다. 오 년 전 이 영화에 한눈에 반해 같이 본 친구에게 나는 이 영화가 5점 만점에 5점이라고 말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영화를 ‘반려영화’라고 부른다.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의 단어 반려를 영화 앞에 붙인 것이다. 끈끈한 반려영화 한 편은 마치 반려동물처럼 나의 추억과 비밀을 알아도 꼭꼭 잘 숨겨준다. 반면, 생물과는 달리 영원히 나와 발맞춰 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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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처음 [최악의 하루]를 봤을 때는 영화에 오롯이 담긴 고즈넉한 서촌 모습이 눈가를 간지럽혔다. ‘나도 서울에 살 수 있을까..’ 서울에 품은 환상이 자작자작 타올랐다.

 

정말 서울에 살게 된 스무 살. 홀로 이리저리 치일 때는 서촌 풍경을 눈으로 좇고 남산을 마음속으로 함께 오르며 외로움을 달랬다.


스무 살, 스물한 살까지는 은희의 태도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여우짓’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인간관계를 맺고 풀기를 거듭하며 보니, 이리저리 거짓말을 하던 은희가 이제 얄밉기보단 안쓰러워졌다. 조금은 이해가 갔다.


스물두 살에는 영화를 보며 신기한 경험을 했다. 늘 은희의 입장에 몰입해서 보던 내가, 소설가 료헤이의 마음속에 서서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잘 팔리지 않는 소설, 현실과 소설의 모호한 경계, 한 명의 독자를 만나도 느끼게 되는 소중함 등... 직접 소설 쓰기를 시작하니 저절로 료헤이의 대사에 공감되었다.


이렇게 몇 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함께 자라나는 영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내 귀와 눈에 스며들다 나간다. 올해의 은희는, 료헤이는 그리고 서촌의 모습은 나에게 어떻게 비칠까 궁금하다. 아니 어쩜 이번에는 현오나 운철의 마음에 더 공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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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반려동물은 없지만, 반려영화가 있다. 애착 인형은 없지만 애착 노래가 있다. 원래 영화를 돌려보고 또 돌려보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유일하게 밥처럼 끌리는 이 영화가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스토리가 훌륭한 영화도 여럿 보았고,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 멜로디가 감미로운 노래 등 많은 콘텐츠를 접해왔고 접하고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음부터 대사까지 좋아하는 영화는 [최악의 하루]가 유일무이하다. 사랑하는 반려영화 하나가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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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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