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체리(Cherry)' - 체리 [도서]

글 입력 2020.08.2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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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Cherry)'는 미국에서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작가 니코 워커가 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과 마약중독이 한 젊은이를 어떻게 파멸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자전적 데뷔 소설이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의 어두운 민낯을 과장 없이 그려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헤로인에 찌든 채 파멸해 가는 모습을 진실하게 고백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설득력을 더했다.

 

 

2005년부터 1년 동안 육군 의무병으로서 이라크전에 참전해 250개 이상의 전투 임무를 수행한 바 있는 저자 니코 워커. 그는 전쟁 이후 극심한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으며 우울증과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렸고, 헤로인 중독에 빠져 범죄까지 저질렀던 인물이다.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 강도가 돼야만 했던 니코 워커는, 2011년에 체포되어 11년 형을 선고받아 올해 출소할 예정이다.

 

그런 작가가 쓴 소설의 제목, 즉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체리(Cherry). 책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았고, 새로운 의미를 배운 듯한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한 사람이 실제로 겪은 자전적 소설이기에, 소설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텍스트로 읽혔다. 복역 중 쓴 소설인데도, 그가 써 내려간 자전적인 실제 사건은 방금 막 겪은 양 너무나도 생생하고 선명해서 현실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참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내 앞에 펼쳐졌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저자의 인생은 다사다난하면서도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다단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소설을 완성함으로써 진정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얼지, 어떤 메시지를 끌어내어 나의 삶에 적용해보아야 할지 한편으로는 막막했다.

 

앞서 말한 감정이 내 머릿속을 마구 지배했던 건, 그만큼 <체리>의 내용이 극사실주의를 뛰어넘은 리얼리즘을 문체에서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일말의 희망을 던져줄 만한 영웅의 존재도 없었으며, 보편적으로 떠올리곤 하는 전투의 보편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이미지도 여기엔 자리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대하는 무언의 의미를 하나둘씩 제외하면,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한 전반적인 소설의 모습이 괜한 기대를 하게 한 절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그 순간에 느낀 '절망'이 <체리>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처럼 보인다. 매일 마주하는 죽음의 공포와 위험, 인간미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면, 마약으로 상실된 한 인간의 찬란한 삶. 이런 구조적 서사가 오히려 한 치의 거짓 없이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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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겁에 질려 살다 보면 두려움이 어떻게 왔다가 사라지는지 알게 된다. 두려움이 나를 어떻게 장악할지도. 두려움이 어떻게 누그러지는지까지. 두려움이 내 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도. 그리고 다시 두려움이 다가오기 전까지, 희망이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놓는지도 말이다. 다시 희망이 오고 다시 두려움이 다가온다. 나는 인생에서 오직 한 가지 빼고는 두려울 게 없었다. 바로 헤로인이었다.

 

- 417p

 

 

니코 워커, 즉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은 누군가가 본받고 싶어 할만한 특별함이 보이지 않으며 단지 정상인으로부터 더 추락한 비정상인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닮지 않아야 할 존재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자초한 삶의 전반을 두고 국가 또는 개인의 잘잘못을 세세히 따지거나, 이유 모를 비난만 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진 않을 것이다.

 

주인공은 전쟁으로 인한 국가의 희생양이기도, 본인의 인생을 뒤바꾸려 하지 않았던 한 젊은이가 지닌 태도의 결과로 나타난 입체적인 인물인 듯하다. 너무나 입체적이어서 그를 정의할 그럴싸한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주인공의 모습은 실패작이자 사회의 돌연변이 같다. 나와는 동떨어진 인물 같기도 하고, 나 자신 혹은 주위의 사람들이 될 훗날의 이미지라 생각하면 섬뜩하기도 하다.

 

그 생각이 들 때면, 동시에 하나의 시선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조금만 깊숙이 파고 들어가면, 주인공의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삶에는 인간 그 자체의 여리고 나약한 군상이 투영돼있다. 나 좀 꺼내달라고, 어떻게든 구해달라고 하는 병약하기만 한 하나의 존재가 아우성치며 몸부림치고 있다. 저자는 전쟁에서 겪은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지도 않고 외상 후의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일그러져 버린 삶을 미화하지도 않지만, 문체에 녹아든 담담함이 반대의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듯 말이다.

 

마약과 강도, 전쟁의 참상 등 그가 겪은 모든 건 결코 평범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보다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체리> 속 이야기들은 허황된 사실이자 신비에 둘러싸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름답지 않은 판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다. 나 역시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시선이 점차 바뀌어나감을 느꼈다. 선을 긋고 배제한 뒤 바라보아야 할 존재인 것만 같았던 그는 우리와 한 끗 차이, 얇디얇은 종이 한 장의 간격에 서 있었다.

 

누구나 주인공 '나'와 같은 삶을 한순간에 살아갈 수도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져 파멸해갈 수도 있다. 흡사 기분 나쁜 저주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약함을 지닌 인간이라면 상황에 따라 본능적으로 낭떠러지와 같은 상황 속에서 스스로의 파멸을 자초하기도 한다. 주인공 역시 전쟁 상황에서의 영웅도 아니었고, 평범한 존재로서 해야 할 역할을 끝까지 해내지도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실을 맺었지만 그 과정과 끝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주인공의 불굴의 의지가 긍정적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게끔 설계하진 않았다. 그저 살다 보니, 살아가다 보니 본인의 태도가 더 큰 눈덩이를 굴려 자신을 헤칠 셈이었다. 동료를 살리려는 의지와 전장에서의 희생을 자처하는, 그리 냉정하지도 않았던 성격이었지만 왜인지 그의 삶은 고되고 또 고되기만 했다. 불안함과 격정적인 심리의 파동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꽤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긍정적인 방향이 아닌,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극단에 치닫는 행위를 일삼으며 하나둘씩 꽃피울 수 있었던 것들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한 가지 이론이 있었다. 바로 내가 쓰레기만도 못한 개자식이고, 만약 나쁜 일이 이어진다면 나쁜 짓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 3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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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든지 사람에게는 선택의 갈림길이 주어진다. 그 선택을 어떻게 책임져나갈지는 본인의 행위에 달려있다. 주인공이 겪은 일은 전쟁에서의 일상적인 폭력과 죽음, 결코 흔한 경험은 아니었다. 난이도를 정한다면, 최고난도의 단계에 있는 어려움을 마주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이라크 파병 이후, 비정상에서 파국에 치닫는 비정상인이 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입장바꾸어 생각해보아도 공포심으로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창구가 달리 없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가 비판받는 대상이 된 건, 단지 솟구치는 욕망을 '중독'이라는 강한 물질성에 대입시켜 원활하지 않은 방법으로 해소하려 한 게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주어지고, 그 난이도는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작든지 크든지 간에 그것을 해결해나갈 사람은 바로 나 자신밖에 없다.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그때, 그 해결방안은 논리적이면서도 충분한 근거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방안을 찾지 못했다. 그저 본능대로, 전후 상황에서의 억눌린 감정 상태를 분출해버릴 단편적인 시각을 가진 채 본인의 어려움을 극단적으로 집어삼켜 없애버리려 했다. 영웅, 그리고 평범한 군인으로 전쟁을 견뎌낸 사람도 아닌 '체리'. 아니, 어쩌면 체리의 자격도 아까운 불쌍한 인간으로 세상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본인조차 자기 자신을 저버렸으니, 그 어떤 말이 더 필요하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그는, 사랑을 행해가는 과정과 결과에서도 온전치 못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하나씩 둘씩.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보조이고 허울만 좋은 허수아비였다. 도로를 오가고 바쁜 척을 하면서 돈만 펑펑 쓰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 235p

 

 

에밀리는 주인공의 삶에 있어 찬란하게 빛났던 존재였고 서로 사랑했지만,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이어나가진 못했다. 버팀목이라기보다는, 일탈을 정당화해줄 중독자 단짝(?)에 더 가까웠다. 세상을 아직 다양하게 겪어보진 않았지만 삶을 살아가며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나의 삶도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아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본인의 의지도 결여된 채 삶을 살아냈지만, 주위의 사람들 역시 본인과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삶에서의 멘토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주인공은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었지만, 그가 바라보았던 세상살이의 이치와 원리는 꽤 협소했으며 편협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인생에 딱 한 명이라도, 쓴소리를 해주고 본보기를 보여줄 구원자가 있었다면 소설의 전개는 또 다른 방향으로 쓰였을 것이다. 우연인지 운명이었을지, 그의 인생은 참으로 기구했다.

 

독자가 보는 주인공은 딱 거기까지의 감정이다. 연민과 비난의 종합적인 시선. 참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또 한 명의 체리가 되지 않기 위해 각성할 것이다. <체리>의 주제를 정답처럼 정의하긴 참으로 어렵지만, 분명한 건 역(逆)의 효과를 불러냄으로써 합당한 태도를 지니게끔 하는 것에 있다. 경험담의 일종으로 쓰여 다사다난했던 세월을 담담히 내뱉기도 했지만, 그 담담함은 독자에게 큰 각성 효과를 건네준다.

 

주인공, 즉 저자인 니코 워커만 '체리'의 운명을 타고난 건 아니었다. 우리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다. 어느 때든지, 견디기 힘들 만큼의 역경을 맞이하면 체리의 진정한 발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종이 한 장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한순간의 선택이 본인을 존경의 대상으로, 혹은 그저 평범한, 혹은 그보다도 못한 멸시의 대상으로 정의하게끔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며 수없이 흔들리는 존재이기에 말이다.

 

니코 워커의 자전적 편지는 커다란 울림을 준다. 처음에는 멀리에 있는, 실패하고 망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이야기는 우리 바로 옆에 와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의 삶을 보고, 나 자신이 꾸려나갈 삶의 척도가 더욱 확실해짐을 인식할 것이다. <체리>가 의도치 않게 꼭꼭 숨겨놓았던 주제는 어쩌면 소설을 읽으며 그라데이션처럼 번지는 우리의 감정과 비슷하고 가까울 듯하다.

 

<체리>의 겉표지는 찬란히 빛나는 별들이 모여 하나의 해괴망측한 해골 형상을 만들었듯, 모든 사람의 인생도 반대되는 이면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갑작스레 별이 될 수도, 해골이 될 수도 있듯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우리네의 인생. 그런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니코 워커는 해골과 같은 삶을 살다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체리>를 통해 극찬받는 '스타'가 되었다. 그런 그를 보며, 우리 역시 갑작스러운 사고와 같은 나날을 살아냈고 살아갈 것이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문득 전해 받게 될 것이다.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체리(Cherry). 체리를 내포한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한 사람의 자전적 편지. 그렇기에, 그 편지는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거부할 수 없는 이면의 세계 그 자체다. 그것을 잊지 않고 사람들은 또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체리의 색으로 물들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해골이 아닌, 생기를 지닌 채 미래를 활발히 그려나가 결국에는 빛나는 '별'로서 말이다.

 

 


 

 

체리
- CHER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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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장 창조적인 인물(MOST CREATIVE PEOPLE 2019)에 선정된 작가 니코 워커의 자전적 데뷔 소설. 2020년 하반기 개봉 예정인 루소 형제 감독 · 톰 홀랜드 주연의 동명 영화 《체리》의 원작 소설이다.

타고난 문학 재능과 신선한 창의력으로 수많은 젊은이의 가슴을 붉게 물들인 전쟁의 어두운 일면을 그리고 있다. 끝도 없고 의미도 없는 전쟁의 실체와 그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마약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잔인한 일상과 진실한 사랑 이야기가 출간 전부터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단숨에 전 세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지은이
니코 워커(Nico Walker)
 
옮긴이 : 정윤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32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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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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