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강신청을 기다리며 [사람]

글 입력 2020.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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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전국적으로 PC방이 문을 닫게 되면서, 대학생들은 PC방에서 2학기 수강신청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 또한 그 불운한 학생들 중 하나이다.

 

본인의 학교는, 전공 특성상 인기 있는 전공수업의 경우 학년별 경쟁률이 기본 4:1을 육박한다. 4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그 경쟁률은 더욱 치열해져 졸업 프로젝트는 순 경쟁률이 10:1 정도이다.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는 PC방에서 수강신청을 해야 반드시 올클을(올 클리어로, 자신이 희망하는 과목들의 수강신청을 모두 성공함을 뜻함) 한다는 미신이 있어, PC방 폐쇄는 우리에게 청천벽력의 소식이었다.

 

순식간에 학교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PC방에서 수강신청을 할 수 없다는 뜻은 곧 집 컴퓨터로 올클을 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각자 집의 인터넷 속도나 컴퓨터의 사양이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은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 커뮤니티에 계속 걱정이나 승산에 관련한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수강신청을 잘 하는 팁을 설명한 글은 순식간에 인기 게시글이 되었다. 그렇게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지인들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컴퓨터를 깊게 공부하진 않은 예술전공생인 동기들과 나는 인터넷의 ping, 다운로드, 업로드 속도, 반응 속도 등을 찾아보며, 집에서 수강신청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고안해내려 애썼다. (덕분에 생전 관심도 없던 mbps나 ms의 개념을 좀 알게 됐다...)
 
좋은 수업에 대한 공급은 한정적이고, 수요는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수강신청을 실패하면 학교를 다니는 의미가 없어지니, 강제로 휴학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오죽하면, 수강신청이 너무 걱정돼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 명은 한 번도 올클을 성공해 본 적이 없어 매일 몇 시간씩 클릭 연습을 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시기인 3학년 2학기에 수강신청을 성공하지 못하면 너무 속상하고 억울할 것 같으니, 주어진 자리에서라도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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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 사이트의 서버시간을 알려주는 네이비즘

 


그렇게 절대적 약자인 우리는 부족하더라도 나름의 준비를 하였다. 시간표를 짜고 친구들에게 부탁을 하며,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시글들을 수시로 확인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차례대로 지쳐 갔다. 그리고 문득 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동시에 수강신청은 우리에게 '별것'이었다. 클릭 하나로 결정되는 개개인의 중요한 한 학기, 4학년에게는 결정적인 졸업전시. 턱없이 부족한 인원의 반들이 개설되고 그 자리들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학생들. 간절히 듣고 싶은 강의가 있어도, 운이 좋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손이 느리면 절대 허용해 주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는 불안하여 수시로 수강신청 서버 시간 사이트가 잘 돌아가나 확인 중이다.
 
마치 아주 무서운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수강신청을 기다리며, 계속 생각을 하였다. 수업을 듣는 것도 이렇게 경쟁률이 높아 진이 다 빠지는데 사회에 나가면 얼마나 더 치열할까? 그리고 코로나19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수강신청과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거시적인 변화 사이의 관계가 엉뚱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바늘구멍'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비슷하였다.
 
지금 고용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기업들의 신입사원을 뽑는 비율은 급격히 줄어들고, 기존 직원들을 재교육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회사들의 방어적 태도이다. 이렇게 청년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커녕, 첫 번째 등용문인 취업 또한 점점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암울한 변화는 내가 몸담고 있는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이것이 치열한 수강신청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PC방은 문을 닫게 되었고, 자영업자 분들, 수강신청을 하는 대학생들 할 것 없이 지나치게 고통받고 있다. 그들 모두에겐 자리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합리적이고 좋은 기회는 얼마나 용이할까? 존재하긴 하는 것인가? 좋은 자리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는 상황에서, 희망이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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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수강신청이 불가하다는 뜻. 이 '불'이 떴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뜻과 같다.

 

 
지금도 우리는 걱정을 하며 수강신청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참으로 사소해 보이지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꽤 치열한 가운데에 우린 각자를 경쟁 사회로부터 지키려 하고 있다. 그렇다. 차라리 '수강신청'이 아닌 '경쟁 사회'라고 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지경이다.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각자의 마땅한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클릭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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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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